장국으로 유명한 청진동 골목에서 10여 년 밥벌이를 했다. 술꾼 친구들은 내 밥벌이 장소를 마냥 부러워했다. “야, 거기 해장국 죽이잖아. 매일 술 마셔도 해장할 음식 있으니, 넌 좋겠다.”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10여 년 동안 청진동 해장국을 먹은 것은 열 손가락 꼽는다. 물론 매일 술을 마시다시피 했는데 그렇다.

 소의 선지와 각종 내장에 우거지를 넣고 끓여 내는 청진동 해장국은 내 입에 너무 무겁고 거칠다. 이 음식이 객관적으로 해장에 좋고 맛이 있는지는 난 모르겠다. 하여간 술 마시고 난 다음날 청진동 해장국을 먹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큰 고역이다. 육중한 고기국물과 잘 씹히지도 않는 우거지는 술에 찌든 내 위장을 더 불편하게 할 뿐이다.

 해장 음식에 대한 개인별 기호 차이는 생각 밖으로 크다. 피자에 콜라를 마셔야 해장이 된다는 이들도 있고, 느끼한 크림 범벅의 스파게티로 속을 푸는 사람도 있다. 맛 칼럼니스트 10년차라지만 이런 개개인의 기호에 다 맞춘 해장 음식을 선정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순전히 내 입맛, 아니 술에 찌든 내 위장에 맞는 해장 음식을 몇 가지 추천한다.

 해장 음식으로 난 냉면을 최고로 친다. 메밀국수에 신 김치, 편육을 올려 한입 가득 집어넣고 씹어 돌리다가 시원하고 개운한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면 아무리 술독 잔뜩 오른 위장이라 해도 스르르 녹아내리기 마련이다. 이 글은 읽는 많은 분들 중에 특히 북녘 출신 어르신네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감할 것이다. “암암, 냉면이 해장에 최고지. 냉면 먹기 전에 메밀국수 삶은 물을 쭉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속이 풀리지.” 그렇다고 모든 냉면이 해장용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 육수는 최대한 가벼워야 하고 약간의 찝찌름한 맛이 받아야 한다. 이때 곁들이는 김치는 물이 질척질척한 북녘식이 어울린다. 이런 조건을 두루두루 갖춘 집으로는 충무로의 ‘필동면옥’(02-2266-2611)을 들 수 있겠다. 전날 밤 울화 치미는 술자리로 인해 속이 아무리 뒤틀려도 편육 반 접시에 냉면 한 그릇이면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이 집 문을 나서게 된다. 최근 자료를 보니 메밀에 루틴인가 하는 물질이 있어 이게 술독 푸는 데는 그만인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냉면이 해장 음식이라는 데 과학적인 사실까지 들이밀 수가 있겠다.

 해장 음식, 그 두 번째는 다슬기국이다. 다슬기는 민물고둥을 말하는데, 올갱이, 고디 등의 사투리로도 불린다. 다슬기는 전국 어느 개천에서나 잡히며 따라서 각 지방마다 이를 가지고 다양하게 국을 끓여 먹었다. 그러니까 경상도식, 전라도식, 충청도식 등으로 다슬기국을 끓이는 스타일이 다 다르다는 말이다. 다슬기국이 술꾼들의 해장국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되는데, 다슬기를 된장 푼 물에 푹 삶아낸 다음 우거지나 부추 따위의 채소를 넣고 끓이는 충청도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볍고 시원해서 속 풀기 그만이다. 충청도가 석권하고 있는 이 다슬기국 시장에 ‘무뚝뚝한’ 경상도 다슬기국으로 술꾼들의 위장을 달래 주고 있는, 서울에서는 드문 식당이 있다. 인사동 좁은 골목 끝에 붙어 있는 ‘풍류사랑’(02-730-6431)이란 곳이다. 술맛, 음식 맛에 주인장의 입심까지 좋아 이 집에는 문화계 인사들이 항상 바글바글한다. 나는 이 집 10여 년 단골인데, 솔직히 말하면 이 집 다슬기국은 그다지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들깨와 고추, 쌀 등을 갈아 넣고 걸쭉하게 끓여 내어 내 입에는 너무 둔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 ‘풍류사랑’의 다슬기국을 추천하는 이유는 인사동의 수많은 술꾼들이 인정하는 해장국임과 동시에, 10여 년 단골이 해장 음식 소개하는 이 자리에 ‘풍류사랑’을 추천해 놓지 않으면 주인 볼 낯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 맛은 결국 인정 맛이 아니겠는가.

해장 음식, 그 세 번째는 묵밥이다. 멸치나 사골로 우려낸 육수에 메밀묵이나 도토리묵을 채 쳐서 넣고는 쫑쫑 썬 신 김치와 김을 올려 내는 음식이다. 여기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 이 음식의 가장 큰 장점은 음식을 전혀 입에 댈 수 없을 정도로 숙취가 심해도 눈 딱 감고 후루룩 입안에 밀어 넣기 시작하면 어느새 한 그릇 다 비워지고 속이 확 풀린다는 것이다. 미끌미끌한 묵이 큰 부담감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거칠고 둔탁한 묵밥을 즐기려면 정릉 아리랑고개 인근에 있는 ‘봉화묵칼국수’(02-918-1688)가 낫고, 가볍고 때깔 있는 음식을 찾자면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의 ‘미진’(02-730-6198)이 좋다. 두 집 다 메밀묵밥인데 아쉽게도 서울에서는 도토리묵밥을 제대로 하는 집이 없다.

 네 번째 해장 음식으로 대구뽈테기탕을 소개했으면 좋겠는데, 내 오랜 단골인 청진동 ‘부산뽈테기’가 몇 달 전 재개발 바람에 폐업을 해 아쉬움이 크다. 사라진 음식점이지만 사진이나마 올려 그 시원한 국물 맛을 눈으로 즐겨 볼까 싶다. 대구머리와 무, 파, 마늘만으로 그렇게 시원한 국물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신의 솜씨’라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아쉬움 탓에 나는 집에서 가끔 대구지리를 끓인다. 커다란 대구머리를 구하면 금상첨화이겠건만 서울에서는 이를 구할 방도가 없다. 중치의 대구를 구해 가볍게 낸 멸치 육수에 대파, 무, 마늘, 소금만으로 맛을 낸다. 대구는 양념을 최소화하는 것이 맛을 내는 비법이다. 대구가 제 맛을 내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벌써 즐겁다.

 마지막으로 맛만이 아니라 음식 내는 스타일이 꽤 마음에 드는 식당 한 곳을 추천할까 한다. 바삐 살아서 그럴까. 우리나라 음식점들은 대체로 음식 차려 내는 데 격식이라고는 없다. 종업원이 플라스틱 찬그릇에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대충 집어던지듯이 내려놓고 가 버리는 식당들이 대부분이다. 해장국집은 더하다. 5000원 내외의 싸구려 음식이니 격식과 품격을 갖춘 대접 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인가. 나는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마구잡이였다고는 믿지 않는다. 구한 말 주막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갓을 쓴 손님이 밥과 국, 반찬 몇 가지가 단정하게 차려진 개다리소반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우리 조상들, 우리 ‘양반님네들’은 결코 먹는 것 앞에서 격식과 품격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 세기의 전쟁과 가난 탓이지!

 신사동 제일생명 사거리의 ‘평창장국밥’(02-549-7292)은 ‘장터의 국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격식과 품격 있는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다. 다리 없는 상에 밥과 장국, 반찬이 가지런히 차려져 나왔다. (사진 왼쪽) 단지 이뿐인데도 주인장을 불러 긴 이야기를 나누고플 정도로 감동을 준다. 해장 음식인 설렁탕, 해장국, 순대국 등을 파는 식당 주인들은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