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소문난식당
영업 시간  평일 11:30~20:00, 토요일 11:30~16:00, 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밥도둑’ 묵은지 고등어 조림

경유1│올드 문래
영업 시간  평일 12:00~24:00, 금·토요일 12:00~02:00, 일요일 13:00~22:00
대표 메뉴  일제 목조건물을 개조한 맥주 펍

경유2│양키스버거
영업 시간  매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5:30~17:00
대표 메뉴   두툼한 쇠고기 패티, 볶은 버섯이 듬뿍 들어가는 문래버거 

도착│신흥상회
영업 시간  사장님 마음, 보통 오전 10:00~22:00
대표 메뉴  얼큰한 콩나물 라면

토요일 오후, 낮고 허름한 철강 공장과 철제상 사잇길을 걷는다. 고요한 골목에 쇠망치 소리가 메아리처럼 텅텅 울리다 멀어지고, 용접 불꽃은 발갛게 솟구치다 사라진다. 쇠사슬 끝에 매달린 굵은 자석이 거대한 철근을 들어올린다. 연마제를 바른 전동휠은 빠르게 회전하며 쇳덩이에 광택을 낸다. 둔탁하고 날카로운 소음이 바쁘게 교차하다 멈추고 잇기를 반복한다. 벌어진 알루미늄 문틈 사이로 라디오 소리가 새어 나온다. 엘리 굴딩의 ‘빈센트(Vincent)’. 육중한 기계음에 그녀의 노랫소리가 오롯이, 유유히 울려 퍼진다. 걸음을 옮긴다. 목공소 앞, 흘러 나오는 TV뉴스에 대패질하던 남편과 톱밥을 쓸어 담던 아내는 투닥거리다 고단한 삶의 넋두리를 풀어 놓는다. 

문래동,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철공단지로 전성기를 누리던 곳이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와 철강 산업의 침체로 문래동 철공단지는 힘을 잃고 빈자리만 늘어 갔다. 2010년대를 전후해 관광 상권이 된 홍대와 상수동 등지에서 예술인들이 띄엄띄엄 몰려들어 ‘문래예술(창작)촌’이 형성됐다. 검은 기름때와 녹슨 철의 동네에 누가 그렸는지 모르는 색색의 벽화가 펼쳐지고, 잡초만 무성하던 야성의 들판에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꽃씨가 움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이곳은 여전히 쇠를 깎던 이들의 삶의 터전이다. 골목을 걸으며 삶의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저절로 밥벌이의 숭고함을 깨닫는다. 예술인들이 그 골목에 얌전히 자리 잡은 건 단지 저렴한 임대료 때문만은 아니리라. 삶이라는 가치를 바로 곁에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나의 발자국 소리를 덮는 요란한 기계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아침부터 시작되는 고된 노동의 시간은 끼니라는 휴식 또는 충전의 과정이 없으면 지속될 수 없다. 허름하고 저렴하지만 그들의 노동과 함께해 온 식당들이 있다. ‘소문난 식당’도 그중 하나다. 

소문난식당의 칼칼한 묵은지 고등어 조림. 사진 김하늘
소문난식당의 칼칼한 묵은지 고등어 조림. 사진 김하늘

노후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삶아 빤 듯 깨끗한 행주들이 빨랫줄에 걸려 있다. 커다란 LPG가스통과 고무대야들, 그리고 창문에 빨갛게 쓰인 ‘묵은지 고등어 조림’. 왠지 고무대야 안에서 폭 익은 김치와 고등어가 강한 화력의 가스불로 푹푹 졸여 나올 것만 같다. 상상만 해도 침샘이 폭발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에 주방이 차려진 주택이 한 채 나온다. 문래동은 제2차세계대전 때, 군수 물자 생산 기지였으며 일제가 방직 공장 노동자들을 살게 한 영단(營團)주택을 지었던 곳이다. 

이 식당은 본래 관사였다. 음식점으로 용도를 바꾼 것은 40년 전이다. 26년 전, 지금 여주인의 시어머니가 전 주인을 이어 장사를 시작했다. 상호와 메뉴는 그때와 같지만 식당을 전수받는 과정에서 생선과 무의 단출한 조합에 묵은지가 추가됐다. 매년 겨울, 2000포기의 김장을 한다. 김장김치가 모두 떨어지면 2주에 한 번씩 100포기씩 담그고 숙성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일일이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양념을 버무리고 속을 넣는 일이 고돼 김치를 사다가 써보기도 했다. 께름칙한 군내가 진동했다. 이후 편리를 거두고 숙명처럼 김치를 담근다.

일제시대 목조건물을 개조한 올드문래. 사진 김하늘
일제시대 목조건물을 개조한 올드문래. 사진 김하늘

시어머니의 가르침이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시어머니의 고향에서 고춧가루를 구하고 미나리와 도라지 등 채소 농사를 직접 지어 반찬을 만든다. 매일 아침 6시 반부터 100마리의 고등어를 손질하고, 갖가지 채소를 씻고 다듬고 무치고 볶는다. 밥은 영업시간에 맞춰 하루 두어 번 짓는다. 일부러 밥은 눌린다. 식사 마무리에 대접할 숭늉을 만들기 위함이다.

자리에 앉으니 곧바로 차가운 보리차 한 주전자가 올라오고 상이 채워진다. 깊은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밥이 수북, 걸쭉하고 은은한 청국장엔 푹 퍼진 메주콩과 두부가 듬뿍 그리고 일곱 가지 반찬이 놓인다. 상 한가운데, 붉은 윤기가 도는 고등어 조림 한 그릇이 놓인다. 손바닥만큼 넓은 배추 잎에 팔뚝만한 고등어 반 토막이 쌓여 있다. 


뒤통수 얼얼한, 흔치 않은 빨간 맛

뜨끈한 흰 쌀밥 위에 김치를 결대로 죽 찢어 올리고 큼직한 고등어살을 그 위에 얹어 입에 넣는다. 뜨겁고 빨간 감칠맛이 입천장에 닿았다가 고막을 건드리고, 후두엽에서 골든벨을 울린다. 이토록 흔치 않은 빨간 맛에 뒤통수까지 얼얼한 것이다. 은은한 단맛이 도는 매콤한 조림 양념을 밥에 비벼 또 한 입을 먹고, 순하고 담백한 반찬을 순회한다. 몇 번 더 반복한다. 그릇이 비워질 무렵, 숭늉 한 그릇이 나온다. 모든 접시를 비웠다. 보리찻물로 입을 헹구고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나선다.

국화아파트와 우정아파트를 지나 사거리를 건너면 또 다른 문래동을 만난다. 바둑판처럼 촘촘하게 구획이 나뉜 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 겸 크래프트비어(수제맥주) 펍 ‘올드문래’는 여러 이웃 가게들 중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사로잡는 곳이다. 외벽에 철로 만든 공구들이 걸려 있고, 내부는 크고 작은 톱니바퀴로 장식됐다. 문래동의 존재를 재정비했다.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고 길을 건너니 미국 브루클린에 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양키스 버거’ ‘양키스 그릴’ ‘웨이브’가 밝히는 네온 불빛은 외국인들까지 줄을 세운다. 목적 없이 걷다가 전봇대 아래 작은 수퍼마켓과 마주쳤다. ‘신흥상회’. 가게 앞 야외 테이블에서 라면과 막걸리를 먹는 사람들 덕에 덜컥 안으로 들어가 콩나물 라면과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음주와 해장을 번갈아 하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행색이 예술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들어와 어색한 우리말로 담배 한 보루를 산다. 주인은 정겨운 말투로 술 한잔을 제안한다. 내일 지방에서 공연이 있다며 거절하는 그, 진작 이 동네에 터를 잡은 일본인이다. 문래동은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메트로폴리스가 돼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멀리 시선을 보낸다. 저 너머 고층 빌딩들이 동산처럼 작고 낮은 이곳을 둘러 싸고 있다. 외딴 섬으로 유랑온 듯하다. 매캐한 공기에 섞인 쇳가루가 어느새 별이 돼 반짝이고 있다. Starry, Starry Night, 문래의 밤이 빛나고 있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