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상은 언제나 새롭다.
어디로 가게 될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상은 언제나 새롭다.

요새 이곳 로스앤젤레스(LA) 날씨가 심상치 않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비와 바람, 낮은 기온 등으로 이곳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나도 이국을 여행 중인 기분마저 든다. 오늘은 작년 봄까지만 해도 내 곁을 떠날 줄 모르다가 여름부터 나를 매몰차게 밀어내기 시작한 열네 살 둘째 딸과 함께 쇼핑을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딸이 찬찬히 옷을 살피고 직접 입어 보는 걸 끈기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카드까지 살포시 긋고 나왔다.

점심만 먹으러 나가는 줄 알고 얇게 입고 왔던 탓에 추위에 두 시간을 부들부들 떨었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차라리 사이 나쁘게 지내는 게 더 편할까 싶기도 하고, 따라다녀도 무뚝뚝함이 금세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무작정의 사랑과 관심, 기다림으로 일관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평소 습관이 나와서 투덜거리고야 말았다.

“아, 좀 빨리 고르면 안 돼?”

“내가 엄마 쇼핑할 때 기다리던 심정을 엄마도 이해할 차례야.”

부들부들. 내가 뭘 그리 쇼핑을 많이 했다고. 오히려 지네들 물건 사는 데 더 시간을 썼건만. 몇 차례 눈 뒤집혀서 백화점 안을 머리 풀어헤치고 다닌 적은 있긴 했다. 그래도 그에 따른 보상을 한다거나 감사의 마음을 간곡히 표시하는 등 나름의 성의를 다했다. 그랬건만, 그런 건 왜 그리 쉽게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건지.

겨우 집에 돌아와서 잠시 한숨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아이들 주려고 정원에서 찬바람 무릅쓰고 잘 익은 오렌지를 장대 들고 딴 뒤 직접 짜서 바쳤다), 일요일에는 자신의 절친 L을 데리고 해변에 놀러갈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몸이 피곤하니 짜증부터 밀려왔지만, 몰래 방귀 뀌는 심정으로 살살 흘려보내면서 그러겠다고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딸과의 관계

기꺼이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여전히 비자발적 노예의 심정으로 착한 엄마 노릇을 수행 중인 듯하다. 어쨌든 내게 다시 다가와 주는 둘째 딸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심정으로, 당분간은 즐거운 노예 생활에 임하겠다고 생각했다.

일과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마주친 아기의 아빠가 떠올랐다.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생후 6개월이 지났을까 싶은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먹다 남은 젖병이 뒹구는 테이블 위에 놓인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한 손으로 어렵사리 먹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 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갔지만, 그 지나감 속에는 내 속절없이 가 버린 젊음과 눈부신 기억과 아이들의 성장이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그리고 또 다른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마음속 응원을 보냈다.

요새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딸들에게, “하늘을 봐” “저 빛을 봐” “세상에, 어쩌면 저 색들은 함께 어울려 저토록 아름다울까”를 반복하는데, 이런 나를 두고 딸이 말했다.

“어제랑 똑같은 하늘과 풍경인데, 뭘 그래?”

내가 대답했다. “아니, 매일 다른 하늘이고 또 다른 하루야.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 일인지 나이가 들어 비로소 실감해. 젊은 시절, 아득하게 이어질 것 같은 무수한 날들 속 뭉개진 듯 흘러가는 하루가 아니라, 바로 오늘, 언제 부서질지 모를 삶 속 단 하루야. 이제는 알겠어. 먼저 사라져버린 사람들이 어쩌면 아쉬워했을 축복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느끼고 상상할 수 있어.”

마흔을 전후로 낯설고 막막한 불안이 나를 삼킬 듯 찾아왔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눈앞에 버티는 것 같았다. 조급한 마음에 마지막 한판승이 될지 모를 무언가를 찾고, 헤매고, 종종거렸다. 혼돈이 쓸어가고 난 뒤엔 허탈감과 무력감이 중력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얼마 전부터는 인정과 수용,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경이가 부표처럼 둥실둥실 나를 잡아 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게 될까, 아직 알 수 없으나 몸과 마음이 낯설게 깨어나고 있다. 눈이 밝아졌고 심장이 말랑해졌다. 몸은 더 내게 가까워져 존재로 말을 건다. 그와 함께 세상과 내가 더 가까워졌다.

토요일 늦은 오전, 나의 작은 고양이 같은 둘째 딸이 내 곁에 누워서 유튜브 채널을 보고 있다. 그녀가 다시 내 곁을 맴돌기 시작한다. 조금은 어색해하면서도 말을 걸고 부탁을 하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좀 전에는 갑자기 오이 넣은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나갔다 왔다. 오래간만에 구름이 걷히고 맑고 푸르른 하늘이 쨍하니 펼쳐져 있는데, 물기와 한기를 머금은 바람에도 마음까지 화창해졌다. 딸에게 엄마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멀어진 친구로 인해 상처받은 이야기, 그렇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게 된 사정,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는 엄마의 어리숙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 그렇지만 덧붙였다. 지난 인연을 후회하지 않고 그들의 떠남을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우정이라고 영원하리라 믿었다면 그 또한 내 오만이자 아집이었다고. 그래도 인연을 잘 살아내고 헤어진 거라 믿어서 여전히 엄마는 희망차다고.


소중한 하루하루의 일상

나이가 들어가니 삶도 인연도 모두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고맙다는 마음이 우선 들고야 만다. 며칠을 내리는 비가 고맙고(그 비 덕분에 집 천장이 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도관도 터져서 물난리도 났지만 그럭저럭 해결하고 넘어가서 고맙고) 여기저기 손해 보는 일이 많지만 손해를 보고도 큰 근심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사정이라 감사하다. 맑고 푸른 하늘을 즐길 수 있어 기쁘고 하루하루가 소중하니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새록새록 새로워져서 경이롭다.

“이런 날들에, 너에게 엄마가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다정하지 못했다니 참 미안해. 너도 네 나이를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엄마도 겪어서 아는 그 시절을 더 잘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차를 세우고 내리며 그제야 바라본 아이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더 뭐라고 말을 이어가진 못했다. 아이는 늦은 아침을 먹었고 나는 그냥 느슨히 그녀 곁을 맴돌다 우리는 잠시 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침대 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심심해.” 나의 심심한 아이가, 나와 함께 심심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