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모든 경제 행위의 매개체다. 있던 돈을 휴지로 만드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나라도 있다.
돈은 모든 경제 행위의 매개체다. 있던 돈을 휴지로 만드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없던 돈을 만들어내는 나라도 있다.

돈의 정석
찰스 윌런|김희정 옮김|부키|1만8000원
552쪽|1월 10일 발행

북한은 2009년 모든 지폐에서 ‘0’을 두 개씩 떼어낸 새 화폐를 발행했다.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하되, 가구당 교환 가능 액수를 10만원으로 제한하는 화폐개혁을 실시한 것이다. 당시 기존 화폐를 많이 보유하고 있던 부자들은 재산이 100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암시장 상인들이 불법으로 축적한 부를 공산당이 몰수하려는 조치였다. 문제는 평범한 주민들도 피해를 봤다는 점이다. 공산당이 구권과 신권 교환 시간을 24시간밖에 주지 않았던 탓이다. 기한 내 교환하지 못한 구권은 한순간에 종잇조각이 됐다. 기이한 정권의 기이한 화폐개혁이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6년간 3조달러(약 3530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 정책에 따라 있던 돈이 휴지가 되기도 하고 없던 돈이 만들어지기도 한 사례다.

서태평양 섬나라 미크로네시아 연방공화국의 야프섬 주민은 큰 석회암 원반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만든 ‘라이’라는 화폐를 사용했다. 라이는 400㎞ 떨어진 팔라우섬에서 카누나 뗏목으로 야프섬까지 공급된다. 100여 년 전 어느 날, 거대한 라이 하나가 운반 도중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닷속 라이는 야프섬에서 화폐로 통용됐다.

이 이야기에는 화폐의 미래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라이가 태평양 바다에 가라앉았을 때 이미 그 가치와 소유권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던 것처럼, 실물이 없는 비트코인 역시 라이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돈은 누군가의 생산행위와 소비행위를 기억하고 그 정보를 주고받는 수단이다.

책은 이 같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돈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돈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됐는지, 돈과 물건을 맞바꾸는 관습이 어떻게 현대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가 됐는지를 설명한다. 금융 시스템의 작동 원리뿐 아니라 신용거래, 물가, 금리, 환율 등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보여 준다.

특히 물가와 통화정책, 신용대출과 금융위기, 중앙은행의 업무와 역할, 환율과 세계금융 시스템 등 전문적인 분야도 돈을 매개로 해서 다룬다.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를 생략하고 일상의 언어로 설명하는 덕에 대학 화폐금융론 강의보다 훨씬 흥미롭다.

저자는 미국 다트머스대 록펠러센터 선임연구원이다. ‘벌거벗은 경제학’ ‘벌거벗은 통계학’ 등 베스트셀러를 썼다.


인생 철학자 17명의 말
자존가들
김지수|어떤책|1만6000원
352쪽|1월 20일 발행

책은 문화전문기자가 진행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저자가 베스트셀러인 전작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에 평균 나이 72세,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말을 담았다면, 신간에는 불안의 시대, 자존의 마음을 지켜 낸 인생 철학자 17명의 말을 담았다.

책에는 김혜자, 이근후, 리아킴, 이승엽, 알렉산드로 멘디니, 이적, 이어령 등 자기다움을 지키며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피워 낸 인물의 인터뷰가 실렸다.

저자는 “책 제목은 자기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며 “그렇게 ‘나다움’의 위엄이 서린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처럼 자기만의 결연하고 우아한 목소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삶과 죽음, 일과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다정하게 격려한다.

저자는 25년 차 기자다. 패션지 ‘마리끌레르’와 ‘보그’ 에디터를 거쳐 현재는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5년부터 조선비즈에 인터뷰 시리즈 ‘인터스텔라’를 연재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생각의힘|1만7000원
311쪽|1월 20일 발행

책은 일반적인 세대 담론이 아닌 20대 내부의 불평등 문제에 집중한다. 저자는 현재의 20대는 ‘초격차’를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위 90%가 상위 10%를 개인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부 성공한 중산층 부모의 교육 투자로 만들어진 상위 10%의 20대를 세습 중산층 세대라고 칭한다. 성공한 중산층 부모는 ‘대졸자 부모-번듯한 직장-서울 강남권 거주’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회의 평등’이 근본적인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입시제도의 공정함이 아니라 근본적인 수준의 교육 기회와 능력 배양의 기회에서 하위 계층도 상위 계층 수준의 기회를 얻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강점은 다양한 논문과 통계를 통해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11년 차 직장인이다. 현재 서강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기업 활동이 노동 시장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인적 자본 투자의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40년에 걸친 중동 갈등
검은 파도(BLACK WAVE)
킴 카타스|헨리 홀트 앤드 코|29.49달러
400쪽|1월 28일 발행

책은 미국 정책에 의해 부채질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태어난 저자는 관련 역사, 지정학, 문화를 매끄럽게 엮었다. 이 지역에서 미국 전략의 두 축인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이란이 어떻게 치명적인 적이 됐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는 “그들이 지정학을 훨씬 넘어선 경쟁에서 어떻게 종교를 사용하고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이들은 문화적 표현을 억압했으며 종파 간 폭력을 조장했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지식인 암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같은 광기 어린 집단의 탄생, 미국 9·11 테러 등으로 이어졌다. 책은 40여 년간에 걸친 지정학적 드라마에 의해 삶을 지탱해 온 여러 인물을 조망한다.

독재자에게 반항한 파키스탄의 텔레비전 앵커부터 터키 이스탄불에서 저널리스트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힌 이집트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저자는 영국 BBC 방송국 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