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원 마일 웨어’ 패션의 배우 박서준, 배정남, 류준열, 이동휘. 사진 각 배우의 인스타그램
왼쪽부터 ‘원 마일 웨어’ 패션의 배우 박서준, 배정남, 류준열, 이동휘. 사진 각 배우의 인스타그램

코로나19 시대에 인기 있는 표현 중 하나는 ‘슬기로운 집콕’이다. ‘슬기로운 집콕 취미’ ‘슬기로운 집콕 휴가’ ‘슬기로운 집콕 운동’ 등, 인기 TV 드라마의 제목을 본뜬 ‘슬기로운 집콕 생활’의 지혜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집콕족이 된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앞장서서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다. 스타일 멋쟁이들의 코로나19 시대 패션은 ‘슬기로운 집콕 패션’이라기보다 ‘슬기로운 집 앞 패션’이란 표현이 더 잘 맞는다. 집에서 편안하게 홈웨어로 입고 있다가, 집 앞에 산책하러 나가거나 테이크 아웃과 장보기를 위해 잠시 외출할 때 그대로 입고 나가도 손색없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슬기로운 집 앞 패션’은 ‘원 마일 웨어(one mile wear)’가 시대에 맞게 변화된 것이다. 패션 사전에서 ‘원 마일 웨어’는 집에서 1마일(1.6㎞) 내에서 착용하는 의복을 의미한다. 집에서 편하게 입는 홈웨어 요소와 간단한 쇼핑이나 산책을 위해서도 입을 수 있는 패션성을 겸한 의복의 총칭이다.

주로 느슨한 실루엣이나 니트, 스웨트셔츠 등 착용감 좋은 소재의 옷이 많다. 흔히 패션 사이트나 소셜미디어(SNS)에서 인기를 끄는 셀러브리티들의 ‘장보기 패션’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국내 패션계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룩은 ‘애슬레저 룩(athleisure look)’이다. ‘애슬레틱(athletic)’과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일상복처럼 입는 운동복을 뜻한다. 일상생활과 스포츠를 즐기면서도 스타일까지 연출할 수 있는 패션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며 국내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애슬레저 룩이 20~50대 남성 사이에서 연령에 관계없이 폭넓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큰 변화다. 남성 애슬레저 룩이라고 해서 ‘아저씨 추리닝 룩’을 먼저 떠올려선 안 된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전문 브랜드에서도 ‘원 마일 웨어’로 멋지게 연출할 수 있는 애슬레저 아이템이 신상품으로 계속 발표되고 있다.

남성 애슬레저 룩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하면서 여성의 요가와 필라테스 전문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맨즈 라인’을 신규 론칭하고 있다.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요가와 필라테스 전문 브랜드답게 뮬라웨어, 젝시믹스, 스컬피그 등의 맨즈 라인은 기존 스포츠 브랜드들보다 간결한 디자인의 심플한 애슬레저 룩을 제안하고 있다. 일상복으로 입으면 운동복임을 눈치챌 수 없는 스트리트 캐주얼에 가까운 디자인이 많다. 또한 편안한 착용감과 통기성을 극대화한 기능성 소재를 사용해 소재와 착용감에 예민한 남성 성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애슬레저 룩에서 연령에 관계없이 가장 인기 끄는 대표적인 스타일은 라운드 네크라인의 티셔츠와 조거 팬츠다. 특히 발목 부분에 밴딩을 달아 아랫단으로 갈수록 바지폭이 좁아지는 조거 팬츠는 유행에 관계없이 인기를 끄는 일상복이 됐다. 집에서는 티셔츠와 조거 팬츠를 홈웨어로 입고 있다가 외출할 때는 그 위에 후디(hoodie·모자가 달린 상의), 편안한 재킷이나 카디건을 걸쳐주면 또 심플하면서도 멋진 ‘원 마일 웨어’가 된다.

애슬레저 룩과 함께 인기를 끄는 원 마일 웨어는 ‘라운지 웨어(Lounge Wear)’다. 라운지 웨어는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때 입는 의복을 의미하는데, 잠옷도 라운지 웨어 속한다. 잠옷으로도 입을 수 있고 홈웨어도 되며 간단하게 외출할 때도 입을 수 있는, 잠옷 같지만 잠옷이 아닌 ‘라운지 웨어’ 스타일이 집 앞 패션으로 제안되고 있다.

대표적인 라운지 웨어는 잠옷 바지 같은 통이 넉넉하고 허리를 스트링으로 묶는 팬츠와 품이 넓은 티셔츠나 파자마 셔츠(파자마 스타일의 셔츠)다. 집에서 홈웨어로 입다가, 잠깐 외출할 때는 바지 밑단을 몇 번 접어 올린 후 스니커즈나 편안한 단화를 신고 카디건, 점퍼나 재킷을 걸쳐 입으면 백화점이나 쇼핑몰 외출복으로도 손색없다.

원 마일 웨어의 유행은 백 스타일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남성들 사이에서도 미니 백이나 가벼운 천 소재의 에코백이 보편화하고 있다. 잠시 외출하는데 커다란 백팩을 들고 나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여성들처럼 끈이 달려 가방처럼 멜 수 있는 휴대전화 겸 신용카드 홀더 케이스를 어깨에 메기에는 민망하다. 그래서 휴대전화와 간단한 소지품을 넣을 수 있고 실용성과 패션 감각까지 동시에 갖춘 젠더리스(generless·남성 여성 구분이 없는) 미니 백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미니 백은 남성용·여성용을 따로 구분 짓지 않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디자인과 컬러를 선택할 수 있게 나온다. 대부분의 남성은 각진 직사각형에 검정, 회색과 같은 무채색을 선택하는 편이다.


제시믹스가 선보인 애슬레저 룩. 사진 제시믹스
제시믹스가 선보인 애슬레저 룩. 사진 제시믹스

트렌드 좇기보다 기본 아이템 장착한 스타일링 뜬다

포스트 코로나 패션은 현재와 미래의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동시에 ‘비대면 시대’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실용성과 멀티 기능성이 있는 원 마일 웨어를 평범한 일상복으로 등극시켰다. 운동복, 업무복, 외출복 등 TPO(시간·장소·경우)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되는 스타일보다 TPO에 따라 쉽게 호환할 수 있는 멀티 기능성이나 하이브리드 패션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포멀한 스타일부터 세미 포멀, 캐주얼 스타일까지 원하는 대로 스타일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아이템이 더욱 남성 패션의 에센스가 될 거라는 전망이다. 이런저런 유행 타는 트렌디한 아이템을 시즌마다 쇼핑하기보다 소재가 좋고 핏이 좋은 기본적인 아이템만 딱 적당하게 갖춘 스마트한 스타일링 전략을 짜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스타일링 전략은 ‘지속 가능한 패션’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지속 가능한 패션’은 의상과 액세서리를 제작하는 데 환경 오염과 비용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패션으로 인해 발생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데도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제 패션에서도 거리 두기와 쉼표가 필요하다. 지나치게 유행을 좇던 트렌드 지향의 패션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 기본 아이템이 무엇인지 구분해내야 한다. 이 아이템을 세련되게 섞어서 언제 어디서나 호환이 쉬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생각과 정리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