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둘러싼 ‘유감’ 이야기가 샤토의 남발, 리저브(숙성)와 관련된 교묘한 상술에 이어 3회째가 된다. 필자가 유독 이런 ‘유감’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어냐는 질문도 받곤 하는데, 억하심정이 있어서는 절대 아니다. 순전히 소비자를 속이기 위해 ‘골몰’하는 와인 무뢰배들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싶은 선의에서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종종 빈티지(와인의 수확 연도)의 노예가 된다. 스스로 중급자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 사이에 더 흔한데, 비로소 빈티지를 ‘가려’ 마시게 됨으로써 와인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00년산 생테밀리옹이 어떠니, 토스카나가 어떠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때쯤이다. 솔직히 말해 금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2000년산 보르도 그랑크뤼들이 그토록 열광과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군림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필자는 적지 않은 냉소를 가지고 있다. 어지간한 해의 최소한 두 배의 가격, 그나마 물건이 없다는 이른바 ‘수퍼 빈티지’에는 거품이 없는 것일까. 과연 두세 배의 값어치를 하는 것일까.

 이런 놀라운 빈티지들에 끼어 있는 거품은 다분히 와인 중개업자들과 그들에게 결탁한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농간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빈티지이길래 매년 같은 포도밭에서 똑같은 보살핌을 받고 자란 와인 값이 두 배 내지 세 배의 값을 보이느냐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당장 보르도 2000년산 그랑크뤼들이 꿀맛이어서라기보다 향후 값이 무섭게 뛸 가치가 있다는, 다시 말해 와인을 마시기 위해 구하는 사람이 아닌 일종의 파이낸스로 대접하는 사람들에 의해 엄청난 값 상승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와인을 수십 병, 수백 병씩 쟁여 두고 20년이나 30년 후에 되팔려는 야심가가 아니라면 당신이 2000년산 보르도 와인을 두세 배의 값을 주고 구해 마실 필요는 없는 셈이다.

 샤토 라투르나, 샤토 오브리옹 같은 어마어마한 값의 그랑크뤼 한 종류를 1999년, 2000년, 2001년산을 두루 갖춰 놓고 버티컬 테이스팅을 해서 2000년산을 꼭 집어낼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미 이런 최고급 와인들은 설사  최악의 빈티지라고 말하는 1997년산조차도 매우 뛰어난 맛이니까 말이다. 필자는 최근 1997년산 샤토 마르고와 샤토 오브리옹을 마셨는데 왜 이 빈티지가 천대받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시중 가격이 50만원을 넘기는 와인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빈티지를 따지는 태도는 와인이 생활의 일부가 된 서양에서는 다분히 의미 있기도 하다. 집에 와인 저장고를 갖추어 두고, 수십 년 후에 마실 와인까지 고려하는 서양 사람들(물론 그들조차도 어지간한 부자들에게나 해당되지만)에게는 오래 묵혀도 힘을 잃지 않고, 때로는 더 빛나는 가치를 발할 빈티지 와인을 찾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변변한 와인 셀러도 없고, 그나마 사들인 와인을 제 맛이 나기도 전에 마시기 일쑤인 우리네에게 빈티지가 주는 가치와 의미는 다른 쪽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역시나 ‘속지’ 않기 위함이다. 앞서 말했듯이, 보르도, 부르고뉴 같은 프랑스 와인과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토스카나의 와인들은 빈티지에 따른 품질과 가격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소위 가격 반영의 첫 번째 기준이 되는 소비자들의 빈티지 차트는 지역별로 기록되어 있지만, 생산자나 소생산 지역별로 세분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모든 보르도 2000년산이 다른 빈티지보다 비쌀 이유는 없다.

 “이 와인은 보르도 2000년산입니다. 당연히 비싼 값을 치르셔야 합니다.”

위 문장은 모호하다. 그러나 와인숍이나 식당에서는 절대 명제로 둔갑하기도 한다. 필자가 들른 어떤 엉터리 식당에서는 시중가보다 훨씬 비싸게 매긴(바가지를 씌운) 2000년산의 대중적인 보르도 와인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와인 잘 아시니까(척 보니 당신 와인을 모르는 것 같군) 드리는 말씀인데, 보르도 2000년 수퍼 빈티지 와인입니다(알아서 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수입량이 적어 희귀합니다(지금 마시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걸?).”

 보르도 2000년산 와인이 농사가 대부분 잘 된 것은 맞지만, 모든 와인의 값이 비싼 것은 아니다. 오래 묵힐 수 있을 만큼 힘이 있고, 묵혀서 맛이 더 좋아지며, 또한 나중에 되팔더라도 값이 많이 오를 가능성이 있는 와인에만 해당된다. 정리하면, 고가의 그랑크뤼 와인들에만 들어맞는다. 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모든 선수가 데릭 지터나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아니라는 말이다.



 Plus 이 달의 …



 Wine Bar

 라 사브어  La Saveur



 고급 식당의 와인 리스트들을 보면, 대개 음식과의 연관성을 잘 따져서 만든 것이 드물다. 그저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구세계, 미국과 칠레를 비롯한 신세계 와인의 지역별 안배, 레드와 화이트, 스파클링의 배치가 일반적이다. 숙련된 소믈리에가 있다면 와인을 추천받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 라 사브어는 오너 셰프가 직접 와인을 고른다. 주변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받기도 하지만, 리스트에 올리는 모든 와인은 셰프의 테이스팅을 거쳐야 비로소 판매된다. 프랑스 와인 중에는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보르도 크뤼 부르주아급 와인이 여러 종 있다. 샤토 레 오르메 데 페즈, 샤토 포텅삭, 샤토 시랑 등 그랑크뤼와 맞먹는 훌륭한 와인들이다. 라 사브어의 리스트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탈리아 와인의 구성이 좋다는 점이다. 특히 그곳에서 내는 스테이크와 매우 뛰어나게 매치되는 피에몬테의 질 좋은 바르베라 다스티가 3종이나 되고, 토스카나와 캄파냐의 엑셀런트 와인도 준비되어 있다. 반포 서래마을 중심에 있다.

문의 02-591-6713



 Wine

 비에티 바롤로 카스틸리오네 1999

 Vietti Barolo Castiglione 1999





 바롤로는 두 말이 필요 없는 ‘와인의 왕’King of Wines)이다. 토스카나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다. 네비올로 단일 품종과 바롤로만의 테루아에서 비롯하는 강렬한 향과 묵직한 힘, 강한 구조, 빼어난 피니시 등 고급 와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두루 지녔다.

 한국에도 바롤로가 여러 종 들어와 있는데, 최근에는 주목할 만한 바롤로의 등장이 눈에 띈다. 비에티 바롤로 카스틸리오네는 바롤로가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적인 포도 생산법에 현대적 양조법이 접목되어 개성 강한 또 다른 바롤로의 세계를 보여준다. 혀를 감아들이는 강한 타닌이 아직 이 와인이 두어 해 정도 더 병입 숙성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바로 마셔도 바롤로의 기상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바롤로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피에몬테 중심에 위치하는 작은 소읍이다. 바롤로라는 통제명칭은 주변의 알바, 랑게 등을 포괄하는데 이 비에티 바롤로 카스틸리오네는 전설적인 랑게 지역에 위치한다.

 뛰어난 화가들과 함께 라벨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바롤로뿐만 아니라 바르베라 달바, 돌체토 달바 등의 라인업에 모두 적용된다. 한국에는 (주)루벵코리아에 의해 수입되고 있다. 섬세한 꽃향기가 일품인 비교적 가벼운 와인인 돌체토 달바 트레 비니에와 바르베라 달바 트레 비니에도 주목할 와인들.

 문의 (주)루벵코리아(02-824-6606), 소비자가 14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