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중국을 감동시켰다. 자금성에서 열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를 통해 백건우는 클래식 분야에서도 한류의 꽃을 피웠다. 그 현장을 간다.
 영웅탄생(英雄誕生)! 11월13일 토요일,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양양이 지휘하는 차이나 필과 치열한 난타전 끝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폭발적으로 끝내자 베이징 종산공원 음악당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중국에서 처음 열린 이틀에 걸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감격의 물결. 청중은 기립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지르고 지휘자 양양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중국 음악사상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곡 연주라는 마라톤을 완주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바로 자금성 (쯔진청)에서 투란도트 공주의 사랑을 역경 끝에 쟁취해 낸 칼라프 왕자의 모습, 바로 중국인들이 기다리던 영웅의 모습이었다. 자금성의 종산공원 음악당(영어명: Forbidden city concert hall)에서 열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는 러시아인들에 의해 ‘한국의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라고 불리는 백건우의 거장적 풍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음악회였다. 거대한 스케일의 베이징에 음악 거인 백건우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12일의 1번, 2번, 13일의 4번, 3번 연주로 이어진 콘서트에서 백건우의 강력하고도 명징한 타건과 꿈결 같은 서정성이 양양이 지휘한 차이나 필의 열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연주와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

 특히 피아니스트 출신인 중국의 신성 지휘자 양양과 백건우와의 호흡은 진지하고도 뜨거웠다. 마치 이들은 필살기의 중국 무사들처럼 1합, 2합, 3합, 4합…합이 더해질 때마다 열기를 뿜어냈다. 양양은 피아노와의 교감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고, 특히 2번 2악장의 비단결 같은 서정성과 3악장에서의 박력의 교차는 청중을 숨죽이게 했다. 백건우의 첫 날 앙코르는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32-12번, 둘째 날 앙코르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중 가장 유명하고 서정적인 18번이었다. 특히 둘째 날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해 빼어난 서정성으로 중국 청중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수없이 이어진 커튼콜에다가 백건우의 깊이 있는 음악에 감동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아무도 객석을 떠나려 하지 않자 백건우가 직접 단원들을 데리고 공연장을 빠져나갔을 정도였다.

이번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도쿄에서 베이징으로 건너온 일본의 저명 음악평론가 사토루 타카쿠는 “세계 피아노사에 기록될 기념비적인 콘서트다. 역시 백건우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현존 최고 명연 중의 하나”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지난해 백건우가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지휘한 KBS교향악단과 베이징 음악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고 이번 연주회를 기획한 차이나 필의 예술감독 겸 지휘자인 중국 음악계의 실력자 롱유는 “이런 음악회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오직 백건우뿐”이라면서 매년 중국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 등에서 프로코피예프, 바르토크 등으로 이어지는 백건우 리사이틀과 2006년 4월 차이나 필 동유럽 순회 공연을 제안했다.

 베이징에서의 대장정을 마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유럽처럼 몇 백년 동안 들어온 음악이 아니라 서양음악을 새로운 시각으로 듣기 때문에 아시아에서의 클래식 연주들은 특별히 중요하다. 클래식에 대한 대단한 지식과 애착심을 가진 중국 청중과의 새로운 만남이 매우 의미 있었다”며 연주 후 소감을 밝혔다.

 199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이끄는 모스크바 방송교향악단과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으로 백건우의 온 몸에 스며든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혼은 베이징에서 찬란한 꽃을 피웠다. 이제 클래식 음악에도 한류(韓流)가 탄생하려나! 그렇다면 그 선봉장은 백건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