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봉산장
영업 시간 10:00~22:00(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양갈비, 수육, 전골

사이공리
영업 시간 10:00~21:00(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쌀국수, 비빔쌀국수, 반미

해물꼴통포차
영업 시간 18:00~03:00 (일요일은 18:00~01:00))
대표 메뉴 모듬회, 매운탕, 회무침


육중한 간판을 이마에 매단 키 작은 건물이 즐비하다.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작은 유리벽 너머로 새하얀 약사복을 걸친 백발의 약사가 홀로 조제실을 들락이며 부지런히 손님을 받고, 그 옆 미용실에는 아지매들이 모여 앉아 사이좋게 옥수수를 뜯고 있다. 문틈 사이로 깔깔거리는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걷는다. 거죽이 있고 새끼를 낳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 것 같은 ‘축산물백화점’, 배냇저고리와 딸랑이는커녕 무, 배추, 복숭아 등 채소와 과일만 가득한 ‘꼬까방’, 볍씨라도 물어다 주고픈 ‘박리김밥’ 등 간판을 일일이 호명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노량진역과 장승배기역 사이, 노량진동과 상도동을 잇는 장승배기로에 왔다. 친구와 함께. 녀석과는 불알친구다. 내게 비록 불알이라는 것도 달리지 않았고 녀석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서로 각별하다. 녀석이나 나나 사업한답시고 민폐를 끼치며 살기에, 남한테 내색 못 하는 일희일비하는 마음을 가차 없이 나눈다. 사업가는 안 될 때엔 잘된다 말하고, 잘될 때엔 힘들다 말한다던데 우리는 안 될 때엔 위로주를 마시고 잘될 때엔 축하주를 마셨다. 오늘 또 무슨 엄살인지, 녀석은 대뜸 일을 접고 고향인 통영으로 내려갈까 고민 중이라고 폼을 잡는다. 허구한 날 하던 말이다. 폐업이든 귀향이든 식후경, 밥이나 먹으러 가자.


잡내가 없는 운봉산장의 양갈비 수육. 사진 김하늘
잡내가 없는 운봉산장의 양갈비 수육. 사진 김하늘

1│운봉산장

1차는 운봉산장. 운봉산장은 강원도 춘천과 경기도 가평 사이 화악산 밑에 위치한 산장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5년간 일하다 양고기에 맛들린 산장 주인이 구워준 숄더랙(양 어깨 갈비)을 먹고 반한 것이 서울에서 운봉산장을 열게 된 계기가 됐다. 통나무 산장에서 산기슭을 따라 내려오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먹는 그 맛은 과연 잊히지 않으리라. 이 집 주인장은 가게 자리가 생기자 망설임 없이 운봉산장의 양고기를 사다 팔았다. 올해로 14년째 성업 중이다.

“내 양고기 냄새 싫다. 안 먹는다!” 여름이라 보신이라도 시켜주려고 했는데 양고기가 싫다니.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고 서울에서 먹는 세상 진미에 코웃음을 치는 것도 볼 때마다 눈꼴시고, 더군다나 홍어 근처에 못 오는 것도 가뜩이나 마뜩잖은데 투정이라니. 하지만 네 아무리 양고기를 아니 먹는다 하여도, 분명 아니 먹지 못하리라. 아니 먹는다면 내가 다 먹는 호사를 누릴 수밖에.

“수육 두 개 주세요.” 양고기는 영어로 램(lamb) 또는 머튼(mutton)으로 표기한다. 이는 양의 생후 1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어린 것은 램, 나이든 것은 머튼. 램이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적어서 어릴수록 비싸게 팔린다. 머튼은 비교적 냄새가 진하고 육질이 푸석해 주로 숙성을 거친다. 이곳은 8개월 미만의 호주산 램만 쓴다. 육질이 연하며 냄새가 덜 난다. 양고기의 고릿한 냄새는 대부분 근막이나 지방에서 나오는데, 이를 제거하기 위한 밑작업이 만만치 않다. 이 집 수육도 그렇다. 지방 등을 꼼꼼히 제거한 후 깨끗하게 씻고 끓는 물에 튀기듯 여러 번 담금질을 하고, 잡내 제거를 위해 생강, 마늘, 통후추 등을 넣고 푹 삶는다. 보양의 계절 여름에는 한 번에 40㎏씩 작업한다.

“입에서 녹네!” 녀석은 혀가 열렸는지 기쁘지만 슬프게도 잘 먹는다. 육질이 염소나 개와 비슷하다고 거들며 말이다. 뼈에 가까울수록 특유의 누릿한 냄새는 진해진다. 그리고 빠져든다. 어느새 마음도 열렸는지 제 얘기를 시시콜콜 늘어놓는다. 소주를 연거푸 들이켠다. 잔을 부딪친다. 수육은 게 눈 감추듯 사라진 지 오래다. 다음은 구이. 양갈비 2인분을 시킨다. 갈비 한 쪽에는 다진 오레가노와 로즈메리 그리고 바질이, 한쪽에는 핑크소금과 후추가 뿌려졌다. 공들여 굽는다. 금갈색 표면에 기름이 여물면, 젓가락질이 입과 불판을 빠르게 왕래한다. 살코기를 씹으니 기름과 향이 팍하고 터진다. 이건 아마도 양이 아닌 양을 먹고 자란 열매인가 보다. 전골까지 시켜 싹싹 먹고 나오니 녀석의 얼굴엔 번드르르 기름기가 돈다.


사이공리의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사진 김하늘
사이공리의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 사진 김하늘

2│사이공리

다행히 저녁 8시 47분, 9시 전 세이프다.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베트남보다 더 후덥지근하고 습한 날씨에 베트남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면,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Bahn Mi)라도 먹어줘야 한다. 반미는 바게트빵 안에 채소와 새우나 고기, 소스를 넣어 먹는 음식인데, 사이공리의 음식은 모두 베트남에서 온 사장이 직접 요리한다. 쌀가루가 첨가된 이곳의 바게트는 겉은 파스스 부서지고 속은 부드럽고 연하게 잘린다. 기다란 빵이 무와 당근 피클, 베트남 햄,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소스, 고추와 고수 등을 가득 품고 있는 모습에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입꼬리가 당겨지고 아랫배는 지퍼와 단추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전진에 또 전진이다. 빵까지 사이좋게 나눠 먹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여기까지 1.5차, 자 이제 2차를 가자.


3│해물꼴통포차

녀석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나의 유언을 미리 보는 것 같다며, 벽에 쓰인 시 한 구절을 읊으며 낄낄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펼친다. 왜 가게 이름이 해물꼴통포차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숙성모듬회’ 소자 1만2000원, 대자 2만2000원. 강 건너 동네에 견주면, 40가지에 달하는 메뉴 모두 평균 1만5000원 정도가 싸다.

뭘 더 바라는가. 식기류는 모두 셀프. 수저를 챙겨와 기본으로 미역국 한사발을 앞에 두고 소주병의 모가지를 조른다. 금세 모듬회 작은 접시가 나왔다. 광어, 농어, 도미 등 서른여 점의 회가 접시에 가득 담겼다. 그날 경매가에 따라 생선의 종류는 달라진다. 계절 생선은 없지만 값에 비해 양도 질도 좋아 실망할 일이 없다. 물고기를 먹을 때마다 통영을 앞세우던 녀석도 군말 않고 잘도 집어 먹는다. 소주병이 쌓였다. 엎어진 녀석의 등 너머로 나의 유언 같다던 시가 보인다.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줘. 운이 좋으면 밑동이 샐지 몰라’ 

“가자, 꼴통. 술통 밑으로.”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