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의 컨버터블 모델 ‘던’은 문의 힌지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 문이 열리는 모습이 특이하다. 사진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의 컨버터블 모델 ‘던’은 문의 힌지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다. 문이 열리는 모습이 특이하다. 사진 롤스로이스

지난달 남편과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가 한 카페를 찾았다. 평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카페 안은 한산했다. 카페 옆에 차를 세우고 입구를 찾아 문을 밀었다. 그런데 어라? 아무리 밀어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겨도 봤지만 소용없었다. 불이 켜져 있고, 안에 사람도 있으니 분명 잠긴 건 아니었다.

안에 있던 사람과 마침 눈이 마주쳤고, 난 열어달란 표시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가 ‘씩’ 웃으며 문을 밀었다. 앞으로가 아니라 옆으로. 그랬다. 그 문은 미닫이문이었다. 모든 문이 같은 방식으로 열리는 건 아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자동차는 손잡이를 당기면 내 쪽으로 문이 열리지만 위로 번쩍 열리거나 반 바퀴 몸을 비튼 다음 열리는 문도 있다. 국내에도 이런 독특한 문이 달린 자동차가 있냐고? 물론이다.

BMW i8 로드스터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로드스터다. 뒤쪽에 3기통 휘발유 엔진을 얹고 앞에 전기모터를 단 i8의 지붕을 벗겨냈다. 얼핏 보기에도 존재감이 상당한데, 문 여는 방식도 독특하다. 옆구리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슬쩍 밀면 팔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처럼 문이 열린다. 이 문에는 버터플라이 도어란 이름이 붙었다. 양쪽 문을 모두 열었을 때 그 모습이 나비가 날개를 펼친 것과 비슷하다고 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시트가 바닥에 붙은 것처럼 낮게 깔린 편이라 타고 내릴 때 허리를 잔뜩 숙여야 하지만 i8과 i8 로드스터의 ‘하차감’은 정말 끝내준다. 문을 열 때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참고로 국내에서 팔리는 맥라렌의 세 가지 모델 570S와 600LT, 720S에도 버터플라이 도어가 달렸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도 i8과 비슷하게 위로 문이 열리지만 버터플라이 도어 대신 시저 도어란 이름이 붙었다. 버터플라이 도어는 문이 살짝 벌어지면서 위로 열리는데 시저 도어는 위쪽에 힌지가 있어 가윗날이 서로 교차하는 것처럼 수직으로 위로 올라간다.

시저 도어를 처음 단 양산차는 람보르기니 쿤타치였다. 람보르기니는 1974년 출시된 쿤타치에 위로 곧게 열리는 시저 도어를 하사했다. 이후 무르시엘라고와 아벤타도르가 이 도어를 물려받았다. 현재 람보르기니 모델 가운데 시저 도어를 단 모델은 아벤타도르가 유일하다. 우루스와 우라칸은 쏘나타처럼 평범하게 문이 열린다.


가윗날이 교차하는 모양으로 열리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문. 사진 람보르기니
가윗날이 교차하는 모양으로 열리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의 문. 사진 람보르기니
매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테슬라 ‘모델 X’의 뒷문. 사진 테슬라
매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테슬라 ‘모델 X’의 뒷문. 사진 테슬라
코닉세그 ‘레제라’의 문은 90도로 꺾여 열린다. 사진 코닉세그
코닉세그 ‘레제라’의 문은 90도로 꺾여 열린다. 사진 코닉세그

날개 펼친 매로 변신하는 테슬라

테슬라 ‘모델 X’는 앞문과 뒷문이 열리는 방식이 다르다. 앞문은 보통의 자동차처럼 평범하게 열리는데 뒷문은 메르세데스-벤츠 300SL의 걸윙 도어처럼 위로 열린다. 테슬라는 이 독특한 문에 팰컨 윙 도어란 이름을 붙였다. 팰컨을 우리말로 풀면 매다. 그러니까 매의 날개처럼 열리는 도어란 뜻이다. 실제로 도어를 모두 열면 매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 된다.

이 독특한 도어는 옆에 벽이나 차가 있어 문을 활짝 열기가 좁다고 판단되면 팔을 오므린 채로 위로 올리는 것처럼 문을 들어 올린다. 옆이나 위로 30㎝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열 수 있다는 게 테슬라의 설명이다. 만약 문을 열다가 사람이나 장애물을 감지하면 알아서 작동을 멈춘다. 모델 X의 팰컨 윙 도어는 재미있는 재주도 품었다.

센터패시아에 달린 커다란 디스플레이에서 ‘X-마스 쇼’를 선택하고 차에서 내리면 잠시 후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팰컨 윙이 음악에 맞춰 춤추듯 펄럭인다. 음악이 천천히 흐를 땐 천천히 문을 들어 올리는데 그 모습이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롤스로이스는 뒷문 손잡이가 뒤가 아닌 앞쪽에 있다. 문이 네 개인 컬리넌은 손잡이 두 개가 가운데 나란히 붙어 있다. 그리고 양문형 냉장고처럼 양쪽으로 문이 열린다. 롤스로이스는 이 문에 코치 도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코치에는 마차라는 뜻이 있다. 옛날 마차 역시 양문형 냉장고처럼 문이 열렸다. 재미있는 건 문이 두 개인 컨버터블 모델 던의 문 여는 방식이다. 보통의 2도어 모델은 힌지가 앞쪽에 있어 뒤쪽이 열리지만 던은 코치 도어의 전통을 살려 힌지를 뒤에 달았다. 그래서 컬리넌의 뒷문처럼 앞이 열린다. BMW i3도 롤스로이스처럼 양쪽으로 문이 열린다. 하지만 롤스로이스처럼 두 개의 문을 한 번에 열 순 없다. 뒷문 위로 앞문이 덮이는 방식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뒤에 탄 사람은 앞문을 연 다음 뒷문을 열어야 차에서 내릴 수 있다.

요즘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온다는 소문이 솔솔 나고 있는 스웨덴 수퍼카 브랜드 코닉세그는 모든 모델이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어려운 문을 달고 있다. 다이히드럴 싱크로 헬릭스 도어란 이름인데, 숨어 있는 손잡이를 누르면 문이 뒤쪽으로 물러나면서 90도로 꺾여 열린다. 2000년대 초반 휴대전화 업계를 들썩이게 한 삼성전자 애니콜 가로본능폰이 열릴 때와 비슷하다. 보고 또 봐도 신기하다.

코닉세그는 2002년에 선보인 CC8S에 처음 이 문을 달았는데 이후 출시한 CCR과 CCX, 아제라, 제스코에 모두 이 문을 물려줬다. 다른 문은 모두 열어봤는데 코닉세그의 문은 아직 열어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이 문의 하차감이 가장 끝내줄 것 같다. 그런데 내릴 때 문에 다리가 걸리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