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는다면 영국을 다 가질 수도 있었던 옥스퍼드 백작은 대체 왜 글을 썼던 것일까. 자기 이름으로 발표할 수도 없고, 세상의 박수를 받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백작은 대답한다. “목소리들이 내게 와. 그 말들, 그 목소리를 옮겨 적어야 그들이 사라지고 난 해방되지. 그걸 받아 적지 않으면 난 미쳐버릴 거야.” 사진 IMDB
마음만 먹는다면 영국을 다 가질 수도 있었던 옥스퍼드 백작은 대체 왜 글을 썼던 것일까. 자기 이름으로 발표할 수도 없고, 세상의 박수를 받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백작은 대답한다. “목소리들이 내게 와. 그 말들, 그 목소리를 옮겨 적어야 그들이 사라지고 난 해방되지. 그걸 받아 적지 않으면 난 미쳐버릴 거야.” 사진 IMDB

셰익스피어는 정말 셰익스피어일까? 그의 대머리 초상은 진짜 작가의 모습일까?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과 ‘맥베스’ 등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 두 편의 장편 시를 남긴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년에 가죽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616년, 52세의 나이에 죽었다는 세계적 문호. 그의 고향과 생가로 알려진 곳이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진짜라는 증거는 없다.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셰익스피어란 이름의 극작가가 1590년부터 1613년까지, 24년간 활동했다는 것뿐이다.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16세기 영국, 당대에도 큰 인기를 누린 작가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게 가능할까. 학문을 제대로 배운 적 없고 부모와 처자식 모두 문맹이었다는데 그는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평민으로서는 접하기 힘들었다는 200여 권의 책은 언제 다 읽고 그 내용을 작품 속에 인용할 수 있었을까. 영국은 물론 이탈리아, 덴마크 등의 역사와 왕실의 관습과 인간 심리에 어쩌면 그토록 정통할 수 있었을까. 작가라면 목숨보다 소중했을 작품 대신 돈에 관해서만 유언을 남겼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28세 이후 혜성같이 나타나 전무후무한 걸작들을 쏟아내기 전, 1585년부터 1592년까지의 기간은 아예 ‘잃어버린 시절’이라고 불린다. 공인된 두 점의 초상화도 그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해로부터 7년 뒤에 그려진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자필 원고는 단 한 줄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수많은 학설과 연구가 있지만 전부 추론일 뿐, 일부러 지운 게 아니라면 그 시대에도 사랑받았던 작가의 흔적이 어떻게 이토록 깨끗이 사라질 수 있을까.

정체를 감추고 책을 출간한 작가들은 드물지 않다. 세계대전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세간의 비난 때문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헤르만 헤세는 에밀 싱클레어란 이름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저 작가는 이미 끝났어’라는 비평가들의 편견을 벗어나 작품으로 승부하고 싶었던 로맹 가리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출판했다. 만약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수밖에 없던 익명의 작가가 있었다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위대한 비밀’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익명이란 뜻의 ‘어노니머스(Anonymous)’는 그러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크리스토퍼 말로, 프랜시스 베이컨 등 여러 인물이 진짜 셰익스피어가 아닐까, 오랫동안 거론되어 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영국 최고 귀족 가문의 에드워드 드 비어, 옥스퍼드 백작이다. 영화는 그가 셰익스피어의 실체라고 전제한 뒤 엘리자베스 1세 주변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와 유력한 왕위계승권을 가졌으면서도 작가로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숙명, 그리고 영원히 감춰야만 했던 비밀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나간다.

어느 날 옥스퍼드 백작은 연극판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던 벤 존슨을 은밀히 부른다. 자신이 쓴 원고를 내주며 존슨의 이름으로 작품을 상연하라고 말한다. 원고를 읽어본 존슨은 남의 글을 내 것인 양 발표할 수 없다는 작가적 자존심과 함께 백작이 가진 천부적 재능에 대한 시기심으로 갈등한다. 그의 고민을 눈치챈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가진 극단의 단원이 멋대로 원고를 가져가 자신의 이름으로 무대에 올린다. 존슨은 분노하고 백작도 당황하지만 연극은 대중을 크게 매혹시킨다. 셰익스피어는 아예 옥스퍼드 백작을 찾아가 비밀 폭로를 빌미로 돈까지 뜯어낸다. 읽을 줄만 알았지 자기 이름조차 겨우 그리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백작의 작품들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된다.

옥스퍼드 백작의 장인, 세실 경은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으로서 왕권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 실질적인 힘을 보탠 권력의 실세였다. 그는 늙은 여왕의 후계자로 사위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집안이 대대손손 왕권을 잇게 하리라, 일찍부터 계획한 참이었다. 그런데 영지를 관리하고 정치야욕을 품어야 할 사위가 글만 쓰고 앉아 있으니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더구나 작가를 후원할 수는 있을지언정, 귀족이 직접 시를 쓰고 희곡을 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영국을 다 가질 수도 있었던 백작은 대체 왜 글을 썼던 것일까. 자기 이름으로 발표할 수도 없고, 세상의 박수를 받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궁금해 묻는 존슨에게 백작이 대답한다. “목소리들이 내게 와. 그 말들, 그 목소리를 옮겨 적어야 그들이 사라지고 난 해방되지. 그걸 받아 적지 않으면 난 미쳐버릴 거야.”

이러한 가운데 왕위를 노리는 또 다른 세력들의 음모가 자란다. 옥스퍼드 백작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젊은 백작, 사우샘프턴을 걱정하지만 기어이 반란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관련자들은 처형을 당하고 사우샘프턴도 죽음의 위기. 옥스퍼드 백작은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여왕을 찾아가 젊은 백작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탄원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크나큰 비밀들.

영화는 진짜 셰익스피어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더해 또 하나의 불경하고도 발칙한 의문을 제기한다. 영국과 결혼한 처녀 왕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1세가 사실은 숱한 연애 사건을 일으켰고 사생아도 여럿 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사실이라고 가정한다 해도 여왕의 권위나 셰익스피어 작품의 가치는 손상되지 않는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상상을 불허하는 고통과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어둠을 가르고 세상을 비추는 등대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백작이 남긴 문체와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와 셰익스피어란 이름으로 알려진 작품 사이에 허구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많은 유사점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스타게이트’ ‘인디펜던스데이’를 연출했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 셰익스피어의 진실을 품위 있게 추적한다. 미국에서는 2012년에 개봉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극장 상영 없이 DVD와 다운로드로 공개되었다.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의 친구로 나오며 착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리스 이판이 익명의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고뇌를 깊이 있게 표현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연극 대사와 장면을 보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구별해낼 수 있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으나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남자, 아무것도 갖지 못했으나 시대를 초월하여 불멸의 이름을 얻은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것,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감춰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지만 그 때문에 향기로운 꽃이 피고 뒤따르는 누군가에게는 길이 되고 빛이 된다는 것을 곱씹어보게 될 때, 남몰래 품고 있는 당신의 비밀과 아픔도 애틋한 의미를 갖게 될 테니까.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