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날개를 부르짖으며 끝맺는 이 소설은 공간이 의미를 전달하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발아래 움직이는 조그마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나’는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골방에 누워 이불 생활을 하던 룸펜이었다. 제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구는 것이 가장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는 ‘나’는 소설 대부분을 방 안에, 그것도 바닥에 붙어 지낸다. 그랬던 주인공이 옥상으로 올라가 날고 싶은 마음을 피력하는 순간은 바닥에 붙어 있던 시간과 대조를 이루며 한층 더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바닥은 몽롱한 박제의 공간이고 옥상은 예민한 이성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엔 사이렌 소리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 잊을 만하면 들려왔던 종소리처럼. ‘날개’는 가장 낮은 인식과 가장 높은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렌 같은 소설이다.

20년 만에 다시 이상의 ‘날개’를 읽는다. 이상이라고 하면 무기력하고 왜소한 지식인의 외형을 떠올리는 것은 대체로 이 ‘날개’라는 소설 때문일 것이다. 박제가 돼 버린 천재를 아느냐고, 애초에 돌아오는 대답을 기대한다기보다는 앞으로 읽게 될 것이 박제돼 버린 천재의 창백한 일상에 대한 것임을 암시하는 구절이라 봐야 할 이 소설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처한 심리적 현실을 핍진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를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드러난 내용만 보자면 이 소설은 매춘하는 아내의 집에 기거하며 아내가 주는 돈을 받고 아내가 주는 약(?)을 먹으며 점점 퇴화하고 무생물처럼 말라 가는 내용이다. 박제가 된 천재를 본 적 있을 리 만무한 우리를 위해 이상은 기꺼이 박제가 돼 버린 천재의 일상을 보여 준다.

박제의 일상은 언제나 게으름과 함께한다. “그냥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 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게으름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는 정말이지 쓸모없는 무생물 같다. 그의 쓸모없음은 다음과 같이 생각을 중단하는 방식을 통해 구체화한다. 박제 인간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꼭 이와 같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자. 달리 추측이란 것을 하지 않더라도 매춘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아내. 그런 아내에 대한 ‘나’의 판단은 그야말로 판단 중지의 상태다. 아내의 손님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심리와 아내가 자신에게 돈을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알아낸 것 같은 ‘나’는 어깨춤이 절로 날 정도로 즐겁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손님에게 돈을 받는 아내의 마음과 아내에게 돈을 받는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는 질문하지 못한다. 질문하는 대신 어깨춤이나 춘다.

“이렇게도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고 싶은 ‘나’에게 충격적인 사건은 아내의 방에서 아달린(최면제)을 발견한 것이다. 계속 자고 싶고 처진 기분이 들었던 것이 모조리 아달린 때문이었다면 아내는 왜 내게 아달린을 먹인 걸까. 그러나 이는 믿을 수 없는 서술을 이어 가는 ‘나’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 자신이 먹은 것이 아달린이라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다.

아달린을 먹고 아내는 무엇을 했을까. 역시 박제가 돼 버린 천재는 질문하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스스로 답하며 질문과 타협한다. 아달린이 아닐 수 있다고, 정말로 아스피린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처럼 그는 찢긴 채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어디로도 이어지지 못하는 불구의 책을 닮았다.

그에게 날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공간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은 질문이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다.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한 번만 다시 질문해 보자꾸나.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이상

1910년에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학창 시절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를 꿈꾸다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 수석으로 졸업한다. 학교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사로 발령받아 근무한다. 1930년, 잡지 ‘조선’에 데뷔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 ‘십이월 십이일’을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한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상’이 입선했고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 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한다. 폐결핵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사를 그만두고 1933년 서울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한다. 1934년 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등의 도움으로 연작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고 구인회 회원이 된다.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발간하고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는다. 1936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7년 2월에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던 중 폐결핵이 악화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같은 해 4월, 2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그의 작품들은 한국 문학의 모더니즘을 대표한다고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