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XC90 T8 엑셀런스에는 2개의 샴페인 잔이 갖춰져 있다.

어떤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10년도 더 지난 까마득한 신입 시절, 사장님과 우리 팀이 점심을 먹으러 간 일이 있었다. 방이 따로 있는 중국집이었는데 네모난 탁자 대신 둥근 테이블이 있었다. 방에 들어간 우리는 서성대며 선뜻 자리에 앉질 못했다. ‘과연 어디에 앉아야 할까?’ 막내인 내가 가장 마지막에 앉았다. 그것도 사장님과 마주보는 자리에. 그날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자장면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양념까지 싹싹 비운 그릇을 보고 사장님이 던진 말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넌 참 잘 먹는구나.”

회의실에서, 회식 자리에서, 심지어 점심시간에 간 김치찌개집에서까지 신입 사원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질문이 있다. ‘어디에 앉지?’ 보통 이럴 때 눈치 있는 신입이라면 모두가 앉은 다음 빈자리에 앉는다. 눈치가 ‘1’도 없는 신입이라면 그냥 아무 자리에 덥석 앉는다. 후자의 신입이 좀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상사의 호통을 듣게 될 건 안 봐도 ‘비디오’다.

모든 자리에는 상석이 존재한다. 예(禮)를 무척 숭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사를 상석에 앉히는 걸 몹시 중요하게 생각한다(사실 난 이런 게 왜 중요한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일반적으로 회의실에서는 출입구에서 먼 쪽이 상석이다. 하지만 발표가 있는 자리라면 발표자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자리가 상석이다. 그렇다면 자동차에도 상석이 있을까. 물론이다. 상사가 직접 운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조수석 뒷자리가 상석이다. 타고 내리기가 편해서다. 그런데 이쯤에서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다. 럭셔리카의 상석은 얼마나 근사할까. 아니, 정말 근사할까.

최근에 타본 자동차 가운데 뒷자리가 가장 으리으리한 차는 볼보의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XC90 T8 엑셀런스다. 오직 두 명만 탈 수 있도록 뒷자리 시트가 분리돼 있는데 시트를 가로지르는 콘솔박스에는 크리스털로 둘레를 두른 컵홀더가 있다. 뒤쪽에는 냉장고도 있고, 전용 샴페인 잔도 두 개나 있다. 그냥 샴페인 잔이 아니라 스웨덴에서 이름난 유리 공방 오레포스에서 만든 크리스털 샴페인 잔이다. 암레스트에서 테이블을 꺼내 샴페인 잔을 올려놓고 샴페인을 마시며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이 차 뒷자리에 앉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사장님이라고 꼭 대형 세단을 타야 돼?

가장 으리으리한 뒷자리가 XC90 T8 엑셀런스였다면 가장 푸근한 뒷자리는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다. 일단 헤드레스트가 무척 폭신하다.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한데 머리를 대는 순간 숙면에 빠질 것 같다. 시트도 우리 집 거실 소파보다 푸근하다. 쿠션 두께가 두껍지 않아(BMW 7시리즈는 S클래스보다 조금 더 두껍다) 키가 크지 않은 나도(160cm다) 허벅지가 불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승차감이 황홀하다. 자잘한 요철이 있는 도로도 다리미로 확 펴주듯 매끈하게 달린다. 무릎공간도 넉넉해 다리를 꼬고 앉을 수도 있다.

특히 조수석 뒷자리는 등받이 각도를 최대 37°까지 젖힐 수 있어 사장님 포즈를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이그제큐티브 시트는 등받이 각도를 최대 43.5°까지 젖힐 수 있고, 버튼을 누르면 다리받침이 스르륵 나타난다. 항공기 1등석 같은 최고의 상석이 아닐 수 없다.

렉서스의 신형 LS 500h 역시 뒷자리가 푸근하고 고급스럽다. 장인이 정성스레 만든 가죽 시트는 온도나 습도 때문에 우그러지는 걸 막기 위해 봉제하기 직전 한 번 더 재단하고, 매끈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3.5㎜ 간격으로 촘촘히 박았다. 그래서 가죽이 매끄럽고 탄탄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종류가 일곱 가지나 되는 뒷자리 마사지 기능이다. 센터콘솔에 있는 모니터에서 종류와 압력을 선택할 수 있는데 상체는 물론 하체를 따로 받을 수 있고, 허리만 집중적으로 받을 수도 있다. 단계는 5단계인데 압력이 제법 세다. 지금까지 경험한 자동차 마사지 시트 가운데 가장 시원했다. 스폿 히터를 켜면 등이 후끈해진다. 플래티넘 모델은 시트를 뒤로 젖히고 다리받침을 내미는 오토만 시트를 달았다. 이 자세로 30분 남짓 마사지를 받고 나면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 들 거다. 신형 LS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자잘한 감동을 준다. S클래스나 7시리즈 모두 뒷자리 옆 창에 햇빛을 가려주는 선셰이드가 달렸는데 LS는 C 필러 뒤쪽에 있는 작은 창까지 선셰이드가 올라온다. 하지만 승차감은 S클래스처럼 매끈하지 않다. 자잘한 요철 반동이 엉덩이로 느껴진다.


렉서스의 신형 LS 500h 뒷자리에는 7가지의 마사지 기능이 탑재돼 있다.

다리 꼬고 앉을 수 있어야 사장님 자리

올 4월 국내에 출시된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이전 모델보다 고급스럽고 편한 뒷자리를 챙겼다. 가장 윗급인 오토바이오그래피 모델은 이그제큐티브 시트를 달았는데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시트가 더 넓고 쿠션도 푹신하다. 버튼을 눌러 등받이를 40°까지 젖힐 수도, 다리받침을 올릴 수도 있다. 뒷자리 사이에 있는 센터콘솔을 버튼으로 내리고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시트도 모자라 암레스트에도 뜨끈한 열선을 깔았다. 랜드로버는 이 시트에 핫스톤(hot stone) 마사지 기능을 넣었다고 자랑했다. 눌러주는 부분이 후끈해져 핫스톤 마사지를 받는 기분을 주는 기능이다. 시승차에는 이 기능이 없어서 체험해보지 못한 게 아쉽다. LS만큼 시원할까. 새로운 레인지로버는 레인지로버 벨라나 디스커버리처럼 인텔리전트 시트폴딩 기능도 적용됐다. 차 안에서 버튼을 누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시트를 접거나 펼 수 있다. 롱휠베이스 모델은 뒷자리 무릎공간이 기본 모델보다 185㎜ 넓다. 앞좌석을 앞으로 당기지 않아도 다리를 꼬고 앉을 수 있다. 사장님 자리라면 응당 ‘다리 꼬기’ 정도는 가능해야 하는 것 아닌가.

4대의 상석을 떠올리고 나니 이 차 중 하나를 내 차로 만들어 뒷자리에 앉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뒷자리는 S클래스다. 이보다 푸근하고 조용하며 승차감까지 매끈한 뒷자리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초호화 실내를 자랑하는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논외다). 그래서 S클래스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잘 팔리는 걸까. 참고로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S클래스는 AMG 모델을 빼고도 5793대다. BMW 7시리즈는 3193대가 팔렸다.


▒ 서인수
모터트렌드 코리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