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갈매기
영업 시간 09:00~23:00
대표 메뉴 갈매기살, 소금구이

외백
영업 시간 11:00~22:00
대표 메뉴 볶음밥, 짜장면, 짬뽕

코끼리분식
영업 시간 09:30~21:30
대표 메뉴 떡볶이, 쫄면, 튀김


빳빳하게 다린 셔츠 깃도 지쳐 내려앉는 평일 저녁, 숨 막히는 ‘먹고사니즘’의 격전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데이고 들들 볶인 심신의 회복을 위해 마포로 흘러왔다. 장마철 무너진 댐처럼 막걸리를 콸콸콸 들이키고 싶게 만드는 전 골목, 돼지들의 탱글탱글한 구릿빛 피부에 치아 끝이 안달 나는 족발 골목, 숯불에 그슬린 캐러멜 연기가 피어나는 갈매기 골목 등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동네다.

당장이라도 폭신한 침대에 쓰러져 위로와 안식을 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보드라운 살결과 포근하게 감싸는 볼륨감에 파묻혀 누리는 완전한 안식은 결코 침대 위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리라. 벌써부터 발걸음은 갈매기 골목을 향한다. 갈매기 골목에는 갈매기만 있는 게 아니다. 지지고 볶고 튀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부터 내장까지의 평온함 즉, 이너피스(inner peace·마음의 평화)를 충족시키는 그것이 있다. 달걀이다.


마포갈매기의 고기구이. 사진 김하늘
마포갈매기의 고기구이. 사진 김하늘

마포갈매기와 달걀 크러스트

마포갈매기 골목의 역사는 마포 굴다리 아래에서 가난한 일꾼들과 함께 시작됐다. 마포 공사장 노동자들이 목구멍의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굴다리 아래의 갈매기 고깃집들을 자주 찾았는데, 재개발로 굴다리가 철거되고 식당들이 지금의 마포나루로 옮겨졌다. 이 식당들은 고깃집의 존재를 모르던 사람들의 눈에 띄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갈매기 골목에는 다양한 갈매기들이 있다. 어딜 가나 상차림은 같다. 그렇다면 그중 운치가 따르는 곳을 찾아야 한다. 지붕이 낮은 한옥집에 노란색 간판을 달고 있는 ‘마포갈매기’. 30년이 넘은 가게다. 그만큼 주름이 깊고 등이 굽은 할아버지가 가게 앞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호객을 한다. 할아버지의 뒤꽁무니를 쫄쫄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잔치라도 벌어진 듯 두런두런 모여 바지런히 고기를 굽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드럼통 테이블이 다닥다닥 놓인 기역 자 홀은 주방과 이어지며, 앉은뱅이 식탁이 놓인 마루 벽창 너머로 옆 ‘부산갈매기’의 네모난 풍경이 이어진다. 오래된 나무 기둥과 가지런히 뻗은 서까래는 농익은 운치를 더한다.

할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아 갈매기살을 주문하니, 종업원 이모는 목이나 축이셔 하는 말투로 묵사발 한 그릇을 슬쩍 권한다. 따로 찌개나 밥이 없으니, 까짓것 호쾌하게 5000원짜리 묵사발 한 그릇을 시킨다. 곧바로 한가운데에 검고 발간 숯이 들어차고, 그 위로 두꺼운 은색 불판이 얹힌다. 그리고 간장, 설탕, 마늘, 후추로 양념한 갈매기살 주물럭과 파무침, 마늘, 김치, 배추된장국 등이 상에 놓인다.

불판이 달아오르면 가운데는 고기를 얹고, 움푹 팬 가장자리에는 참기름을 두른다. 참기름엔 마늘과 파무침을 더하고, 기름이 끓으면 김치를 익히고, 노란 달걀 물을 채운다. 달걀을 기름에 지지듯 익혀 달걀 크러스트를 만들기 위함이다. 달걀 크러스트는 불판을 둥글게 둘러싼 모습이 피자 도 가장자리와 닮아 붙은 이름이다. 갈매기살은 양념이 눌어 붙어 타지 않도록 작게 잘라 자주 뒤집어 가며 굽는다.

다 익으면 양파 장아찌에 적셔 먹고, 상추쌈을 싸서 먹는다.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말 것. 아무리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을지라도, 살얼음 낀 새콤한 묵사발이 마른 속을 시원하게 적셔줄지라도, 달걀 크러스트를 입에 넣기 전까지 정신을 헤프게 쓰면 안 된다. 그 기다림을 지루하다 여기면 또한 안 된다. 뜨거운 파기름에 달걀이 보글보글 살지며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예의주시해야 한다. 빵처럼 말라버린 달걀찜을 상상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인간이라면, 달걀 크러스트가 85% 정도 익었을 때, 숟가락을 돌려 판에서 떼어내라. 그리고 젓가락이든 숟가락이든 그 무엇으로든 입에 넣어, 이 뜨겁고 고소한 감칠맛을 느끼는 순간을 즐겨라. 그러면 곧 알게 될 것이다. 달걀 크러스트는 노랗게 부풀어 오른 기다림에 화답하는 벅찬 포옹의 맛이라는 것을.

갈매기 골목을 빠져나와 서울가든호텔 뒷골목에 이너피스 맛집이 두 군데 더 있다. 볶음밥이 몹시 훌륭한 중식집 ‘외백’과 즉석떡볶이로 줄을 세우는 ‘코끼리분식’이다.


볶음밥과 달걀국

‘외백’, 기개가 느껴지는 상호를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읽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30년 세월이 역력하게 배어 있는 중후함에 압도당한다. 얼른 자리를 찾아 등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는다.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달걀 볶음밥을 주문한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여느 집보다 다소 긴 인내가 필요하지만, 역시 그 기다림의 가치는 충분하니 주문이 들어간 게 맞냐는 둥 조급해하지 않는다. 드디어 볶음밥이 눈앞에 놓인다. 후 불면 흩어질 것처럼 나풀나풀한 밥알, 그 위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얹어진 달걀 프라이가 눈에 들어온다. 숟가락으로 밥알을 쓸어 담아 한 입 먹고 심심한 달걀국을 한 모금 삼키니 실크처럼 풀어진 달걀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온다. 젓가락 끝으로 봉긋한 노른자를 터뜨려 가르면, 꿀처럼 녹진한 노른자가 밥 위로 흘러내린다. 오무린 입이 열린다. 뜨거웠던 기름 위에서 노른자를 감싸며 포위했던 흰자가 사뭇 고마워진다.


코끼리분식의 즉석떡볶이. 사진 김하늘
코끼리분식의 즉석떡볶이. 사진 김하늘

즉석떡볶이와 삶은 달걀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 둘이 두 분식집 앞에서 고민을 하더니, ‘떡볶이는 사리’라는 ‘띵언(명언)’을 남기고 즉석떡볶이를 파는 ‘코끼리분식’ 앞에 줄을 선다. 떡볶이 2인분 2000원, 라면 및 쫄면 사리 1500원, 달걀 두 알 1000원 등 근래에 만날 수 없는 가격이다. 맛 또한 익숙하지만 이마저도 흔치 않다. 중국의 부호가 된 양, 모든 사리를 다 추가해 먹는다. 얕은 양은 냄비에 빨간 국물의 떡볶이가 바글바글 끓으면, 속이 실하지 않아도 존재감을 인정받는 야끼만두와 당구공처럼 ‘맨지르르한’ 삶은 달걀을 투하해 간이 충분히 배도록 끓인다.

달고 얼큰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으니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야 할 것만 같다. 멜라민 앞접시에 삶은 달걀을 건져 숟가락으로 쪼갠 후 반은 빨간 국물을 흠뻑 끼얹어 먹고, 반은 국물에 노른자를 으깨 먹으며 떡볶이 냄비를 장렬히 비운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