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내 대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를 꼭 껴안으며, “난 엄마의 대답이 정말 좋아. 엄마는 나를 정말 잘 아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이는 내 대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를 꼭 껴안으며, “난 엄마의 대답이 정말 좋아. 엄마는 나를 정말 잘 아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12년 전 가을이었다. 첫째를 태우고 신호등이 듬성듬성 있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속도를 좀 내기는 했지만, 좌회전 금지 표지가 있는 길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튀어나올 줄은 예상 못 했다. 상대는 한국 여성 운전자였고 직진으로 달려가는 내 차를 보지 못하고 달려오다가 그대로 충돌. 상대편 과실 100%의 사고였다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상대 차는 전복됐고 내 차는 앞면이 그대로 찌그러졌다.

당시 막 세 살을 넘긴 딸아이는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머리를 앞 좌석에 부딪혀서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무 당황한 나는 그저 “어떡해”만 연발하며 아이를 안고 어쩔 줄을 몰랐다. 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다행히 아이는 이마에 난 상처 말고 큰 외상은 없었지만, 위기 대처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 나는 넋이 나간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아이가 이마에 피를 흘린 채 내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차분한 어조로 내 눈을 응시하며 답했다.

“엄마, 나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이는 그 뒤로도 급작스러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놀랄 만큼 침착했고 의연했고 나를 먼저 달랬다. 길눈이 지독히도 어두운 나와는 달리, 한 번 간 곳은 잊어버리지 않는 아이는 내가 낯선 길에서 어리둥절할 때마다 내 손을 잡고 갈 곳으로 이끌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른 아이들이 모두 놀러 나간 뒤 자리에 남아 교실을 정리하고 선생님을 돕고 그다음에야 뛰어나가는 아이여서 선생님들로부터 신기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3학년에 오르면서 성적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나아지긴 했지만, 그의 수업 태도는 어릴 때부터 문제가 됐다. 고집이 세고 자신이 빠져 있는 문제를 스스로 마무리 지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기질 때문에 그룹 활동에서 가끔 차질을 빚었다. 관심 없는 주제에 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는 대신 금세 흥미를 잃어버려 주의가 산만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다른 아이들이 중요시하는 테스트에 진지하게 임하기는커녕 흥미 가는 대로 들쑥날쑥 반응하니 결과도 일관적이지 않았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성적은 물론 자신의 결과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나도 별문제 삼지 않았다. 평소대로 내버려 두듯이 아이를 키웠고 몇 차례 선생님들의 연락을 받고도 딱히 아이를 다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수하기도 했다. 학교에 불려가서 선생님들에게 아이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만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제일 큰 실수는 그의 단짝과 비교했던 일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누구보다 잘 반응하고 주위에 누를 끼치지 않는 그 친구에 관해 말을 꺼내자 아이가 대답했다.

“내 친구 이야기를 여기서 왜 해야 해요, 엄마?”

부끄러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때로는 훈련조차 받지 못한 채 덜컥 엄마가 돼버리는 일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참으로 잔인한 일처럼 느껴진다. 나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편견으로 똘똘 뭉쳐 아이 앞에 서 있는지. 그런데도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용서받을 것을 미리 알고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는지. 곧바로 사과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담을 수는 없다는 심정에 참담해졌다. 나는 여전히 자주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구하곤 한다.

나를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그에게 모자란 내 모습을 강요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의 아이에게도 거리감이, 예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그 이상의 사랑과 존중을 줘야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든 책임과 의무에 압사될 듯 숨이 막힌다.

돌이켜보면 삼십대는 온통 아이를 키우며 사는 기간이었다. 이를 두고 며칠 전 딸아이에게 말했다.

“행복한 노예 생활이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지만 후회하지 않고, 어쩌면 몰라서 시작해서 감사하는.”

아이는 까르르 웃어대며 그 말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고, 너희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엄마는 떠돌며 살 계획이라고 하니 이제 고등학생이 된 딸이 말했다.

“나는 엄마가 그 말을 할 수 있는 게 왜 이렇게 후련하지?”

아이는 세상의 숱한 행복 속에서 내 행복이 길을 잃을까 전전긍긍한다. 아이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면 또다시 미안해진다. 내가 그들을 염려하는 것보다 그들이 나를 더 염려한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나의 무심함은 그들에게 축복이었을까? 아이의 성적표가 나와도 확인조차 안 하는 나를 뒤늦게 깨닫고 찾아봐야 하나 망설이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엄마가 나한테 말했지?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난 그에 관해서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지금이 행복하고 미래가 두렵지 않아. 무얼 하든 나는 나대로 잘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래서 남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아. 그건 엄마랑 아빠 덕분이라고 생각해. 요새 친구들 보면서 느낀 건데, 난 존재의 불안 같은 걸 그다지 느끼지 않아. 다만 내가 친구들에게 좀 더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는 채무감이 드는데 가끔은 그게 너무 버거워. 피곤할 때도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나는 그걸 고독감으로 설명했다.


너의 고독을 먼저 이해해야 해

“해야 할 일을 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만큼은 다하는 것이 네 마음의 빚을 털어내는 데 좋을 거야. 하지만 네 존재를 그들 혹은 그들과 관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유독 외로운 사람이 있고, 그건 네 잘못도 아니고 그들의 잘못도 아니야. 어쩌면 그들도 스스로 외로운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을 테고. 희망이 있다면, 자신의 고독을 잘 알고 파악하고 다룰 줄 알게 되면 비슷한 고독을 지닌 사람을 더욱더 잘 알아볼 수 있게 돼. 사람은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고독을 가진 사람을 만나려고 삶의 숱한 퀘스트를 수행하며 사는지도 몰라. 비록 완수하지 못해도 자신의 고독을 파악하게 되면 말이야,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 덜 버겁게 느껴져. 네가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서 더 많은 경험을 하길 엄마가 원하는 건 오직 그 이유 때문이야. 고독을 나눌 수 있는 관계만큼 매혹적인 건 없거든. 아니, 자신의 고독이 어떤 성질인지 알게 되는 것만큼 막강한 건 없거든. 공부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하지만 통로를 마련해 둬. 네가 좀 더 만나고 싶고 넓히고 싶은 세상을 향해서.”

아이는 내 대답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나를 꼭 껴안으며, “난 엄마의 대답이 정말 좋아. 엄마는 나를 정말 잘 아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이런 엉뚱한 대답을 해도, 내 대답을 좋아해 주는 너를 만난 건 내 노예 생활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야. 고마워. 엄마의 존재를 다해서 네게 고마워하고 있어.”

우리는 새벽 3시가 넘도록 손을 잡고 있었다.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데도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손을 그때 경험했고 나는 절대 외롭지 않았다. 아이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