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박물관 전경. 사진 김문관 차장
쇼팽박물관 전경. 사진 김문관 차장

동유럽 폴란드와 헝가리는 특별한 이름의 국제공항을 가지고 있다. 바르샤바 쇼팽 공항, 부다페스트 리스트 공항이 바로 그것이다. 양국은 이처럼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나라다.

프레데리크 쇼팽(1810~49)은 피아노로 한정하자면 서양 고전음악 역사상 최대의 거장이다.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프란츠 리스트(1811~86)가 파워풀한 작품과 뛰어난 기교로 여성 관객을 홀렸다면 쇼팽은 섬세하고 병약했으며 결국 요절했다. 쇼팽의 연인은 동시대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상드가 사실상 유일했다(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의 소재로 사용됐다).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활동한 유명 음악 평론가 쇤베르크는 저작 ‘위대한 피아니스트들(The great pianists)’에서 쇼팽을 ‘결핵, 낭만주의, 시(詩)’라고 정의했다. 쇼팽은 낭만적인 ‘녹턴(Nocturn·야상곡)’이나 새침한 ‘왈츠(Waltz)’의 선율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실 덜 알려진 작품 중에는 현대음악을 방불케 하는 난해한 곡(무조성(無調性)에 가까운 A단조 전주곡 등)도 있다. 이처럼 쇼팽은 시대를 뛰어넘은 예술가다. 그리고 18세기 작곡가 베토벤, 모차르트와 20세기 작곡가 드뷔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니즘을 잇는 최고의 음악가다. 쇼팽은 두 곡의 피아노협주곡을 포함한 주요 작품들을 20세 이전에 완성한 천재이기도 하다.

물론 리스트도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쇼맨,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그러나 리스트조차 쇼팽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쇼팽은 어린 시절 당대 유럽 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를 동경했다. 이후 그곳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본인의 유언에 따라 사후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의 한 성당에 묻혔다. 폴란드 민속 음악을 뼈대로 한 ‘마주르카(Mazurka)’는 그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위해 6월 13일 폴란드 바르샤바 중심가에 있는 쇼팽박물관을 방문했다.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왼쪽). 사진 위키피디아박물관 내부의 디지털 음악 감상 시설들. 사진 김문관 차장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쇼팽의 초상화(왼쪽). 사진 위키피디아
박물관 내부의 디지털 음악 감상 시설들. 사진 김문관 차장

독특한 디지털 박물관

유명 음악가들의 생가와 박물관은 흔히 그들이 사용하던 악기, 작곡하던 방 등을 그 시절에 맞게 재현해둔다. 반면 쇼팽박물관은 독특했다. 대부분의 전시물이 디지털화 돼 있다. 내부 공간도 매우 현대적이다. 쇼팽의 자필 저작(악보와 편지 등)을 터치스크린에 손을 대고 넘겨가며 볼 수 있는 식이다. 음악 감상도 최신 디지털 기기들로 이뤄진다. 지하에 있는,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공간은 차분히 책상에 앉아 전자악보를 넘겨가며 그의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다. 작은 공연장도 붙어 있어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이날도 인근 바르샤바 음악원 학생으로 짐작되는 젊은 남녀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슈베르트의 가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박물관은 전반적으로 관광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본격적인 음악 감상을 위한 장소로 보였다. 물론 쇼팽의 연대기와 제자 소개 등 흥미로운 사료도 적지 않게 전시돼 있다. 박물관은 매주 월요일 문을 닫는다.


쇼팽 예술의 정수 ‘루바토’

쇼팽 예술의 정수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독일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97)가 녹음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쇼팽이 직접 연주한 곡은 들을 수 없다. 녹음 기술이 그의 사후 수십 년 만에 등장한 탓이다. 평론가들이 인정하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쇼팽 예술의 핵심은 ‘루바토(Rubato·자유로운 박자를 뜻하는 음악 용어)’로 압축된다는 점이다.

폴란드 출신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 ‘피아니스트(2002)’의 공식 트레일러 등 관련 유튜브 영상은 대부분 쇼팽의 유작(遺作·창작자의 사후 출판된 작품)인 ‘야상곡 19번’ 연주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상에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따라 애처로운 선율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청자의 감성을 뒤흔드는 그 무언가가 바로 ‘루바토’다.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프랑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나 스페인 태생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오늘날에도 찾는 이유는 이들이 ‘루바토’를 그지없이 아름답게 구사했기 때문이다.

다만 쇼팽의 ‘루바토’는 무절제와는 다른 의미다. “저 나무들이 보입니까? 바람은 잎을 스치며 지나가고 인생은 그 밑에서 펼쳐지고 전개됩니다. 그렇지만 나무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있죠. 그것이 바로 쇼팽의 ‘루바토’입니다.” 리스트가 남긴 말이다. 쇼팽의 ‘루바토’는 박자를 필요한 만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절대로 기본 박자가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만큼 세심하고 정교한 변화를 뜻한다.

자로 잰 듯 똑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루바토’, 그러면서도 악보에 충실한 곡. 그것이 바로 쇼팽의 예술이다. 그리고 어쩌면 감성과 이성의 절묘한 경계점, 그곳이 바로 예술과 사이비를 구분하는 지점일 것이다.


여행수첩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5년 쇼팽 콩쿠르 경연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2015년 쇼팽 콩쿠르 경연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한국인 3명 입상한 ‘쇼팽 콩쿠르’ 쇼팽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아시아 국가 중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한 연주자가 가장 많은 곳이 한국이다. 쇼팽 콩쿠르는 5년에 한 번씩 바르샤바에서 열린다. 이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이 대회는 1927년에 시작됐다. 위대한 러시아 바이올린 연주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반주자로 유명한 동향의 레프 오보린이 1회(1927) 우승자다. 가장 최근 열린 2015년 대회에서는 한국의 조성진이 우승했다.

역대 동양인 우승자는 3명뿐이다. ‘베트남의 영웅’ 당 타이손(1980), 중국의 윤디리(2000)에 이어 조성진이 영광을 차지했다. 일본의 경우 1970년 미츠코 우치다가 2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3위까지로 넓히면 한국이 2005년 임동민·동혁 형제(2위 없는 공동 3위)까지 포함해 3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다. 중국은 푸총(1955년 3위)을 포함해서 2명이다.

이 콩쿠르 출신은 세계 피아노 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다. 1950~70년대 쇼팽 콩쿠르에서 입상한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러시아), 마르타 아르헤리치(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폴란드) 등은 생존한 세계 최정상급 연주가다.

대부분의 우승자는 독일의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하고, 5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 등을 한다. 경연 실황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일본 만화 ‘피아노의 숲’은 쇼팽 콩쿠르를 소재로 삼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다음 콩쿠르는 2020년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