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대 수입 세단 가운데 네 가지 모델을 꼽아봤다. 왼쪽부터 BMW 320d, 렉서스 ES 300h, 메르세데스 벤츠 C 220d, 폴크스바겐 아테온. 사진 각사
5000만원대 수입 세단 가운데 네 가지 모델을 꼽아봤다. 왼쪽부터 BMW 320d, 렉서스 ES 300h, 메르세데스 벤츠 C 220d, 폴크스바겐 아테온. 사진 각사

난 국산 중형 세단을 탄다. 결혼을 앞둔 8년 전, 한참 타던 국산 소형 세단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지금 차로 갈아탔다. 8년 넘은 내 차는 아직 잘 달려준다. 아니, 잘 달려줬다. 지난해까진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문제는 올해부터였다. 올 초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정비소에 갔다가 점화플러그와 점화코일을 갈아야 한단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두 가지를 갈고 나니 이번엔 에어컨이 말썽을 부렸다. 찬 바람이 나오지 않아 정비소에 갔다가 에어컨 컴프레서를 교환해야 한단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차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정비소 갈 일이 자꾸 생기니 생각이 달라진다. 차를 바꿀 때가 된 건가? 바꿔야 한다면 어떤 차가 좋을까?

집에서 사무실까지 40㎞ 넘는 출퇴근 거리를 생각하면 일단 연비 좋은 차가 우선이다. SUV와 큰 차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취향을 적극 반영해 차종은 중형 세단이 좋겠다. 그런데 국산 중형 세단에서 다시 또 국산 중형 세단으로 갈아타는 건 좀 그렇다. 고를 수 있는 차도 많지 않다. 이참에 수입 세단으로 눈을 돌려볼까?

‘모터트렌드’ 뒤쪽엔 국내에서 정식으로 팔리는 모든 차의 가격과 스펙을 정리한 ‘바이어스 가이드’가 있다. 여기에서 6000만원 안쪽의 수입 세단을 훑어보기로 하자.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탓에 BMW의 신형 3시리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디젤 엔진을 얹은 320d는 찻값이 5320만원부터다. 복합 연비는 뒷바퀴굴림이 리터당 14.3㎞, 네바퀴굴림이 리터당 13.5㎞다. 신형 3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최신 모델인 만큼 편의 장비와 첨단 장비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앞차 흐름에 따라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멈췄다 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액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스스로 운전대를 돌려 후진하는 후진 어시스턴트 시스템이 모든 모델에 기본으로 달렸다. 미래적인 디지털 계기반과 터치스크린 모니터도 챙겼다. 시트도 푸근하다. 뒷자리는 엉덩이 쿠션이 짧지 않아 어른이 앉기에도 적당하다. 이 정도면 부모님을 뒷자리에 태우기도 괜찮다. 5620만원짜리 럭셔리 모델을 고르면 열선 스티어링휠을 얹을 수 있다.

3시리즈보다 조금 더 큰 렉서스 ES 300h는 엔트리급 슈프림이 5710만원이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패드와 헤드업 디스플레이, 마크레빈슨 오디오 등 편의 장비가 윗급 모델에 비해 부족하지만 안전 장비는 똑같이 챙겼다.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과 오토매틱 하이빔, 차선 추적 어시스트,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으로 이뤄진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 플러스를 기본으로 얹고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답게 연비도 훌륭하다. 복합연비가 리터당 17.0㎞에 달한다. 이 은혜로운 연비를 덜덜거리는 진동과 갸릉갸릉 하는 디젤 엔진 소리를 겪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무엇보다 흡족한 건 3시리즈에 비해 좀 더 여유롭고 안락한 실내를 누릴 수 있다는 부분이다. 렉서스 시트는 지금까지 내가 앉아본 시트 가운데 ‘가장 푸근한 시트 베스트 3’에 든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여전히 터치가 되지 않는 디스플레이다.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려면 변속기 레버 오른쪽에 있는 터치 패드나 그 아래 있는 레버를 움직여 목적지를 찾아야 하는데, 이게 참 번거롭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열선과 통풍 시트, 열선 스티어링, 오디오와 온도 조절 버튼을 밖으로 빼놨다는 것이다. LS는 열선 시트를 켜려면 디스플레이에서 시트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데 ES는 대시보드에 있는 버튼만 누르면 된다.

디젤 엔진을 얹은 메르세데스-벤츠 C 220d도 사정권이다. 가장 아랫급의 아방가르드(뒷바퀴굴림)가 5530만원, 그 윗급의 4매틱 AMG 라인(네바퀴굴림)이 6060만원이다. 실내는 벤츠 모델답게 가장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우드그레인으로 감싼 센터패시아와 그 위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둥근 송풍구에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는데도 실내 구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 아날로그 계기반과 터치가 되지 않는 디스플레이가 여전하다. 액티브 브레이크와 프리 세이프 같은 안전 장비는 챙겼지만 어댑티브 하이빔과 차선 유지 어시스트 등 첨단 장비가 부족하다. 뒷자리도 엉덩이 쿠션이 짧아 어른이 앉기엔 조금 불편하다. 복합연비는 아방가르드가 리터당 14.4㎞, 4매틱 AMG 라인이 리터당 14.2㎞로 준수하다.

마지막 후보는 폴크스바겐 아테온이다. 아테온은 ES보다 길이가 짧지만 휠베이스가 거의 비슷해 ES처럼 여유로운 실내공간을 누릴 수 있다. 옵션을 가득 챙긴 윗급 모델이 5700만원을 조금 넘어 ES의 가장 아랫급 모델과 비슷하다. 편의 장비를 따졌을 때 같은 값이면 아테온이 낫다는 말이다.

앞자리에 열선과 통풍 시트가 달렸고, 운전석에는 마사지 시트도 달렸다. 무선 충전패드가 없는 건 아쉽지만 열선 스티어링휠과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뒷자리 열선 시트를 챙겼다. 2.0 TDI 모델은 2.0ℓ 디젤 엔진을 얹었는데 복합연비가 리터당 15.0㎞로 320d와 C 220d보다 좋다.

네 모델 모두 장단점이 뚜렷하다. 320d는 다 좋은데 찻값이 비싸다. 특히나 지난해 구형 모델 밀어내기를 위해 1000만원 남짓 파격 프로모션을 진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제 돈 주고 사는 게 억울한 기분이 든다(신형 320d는 아직 프로모션 소식이 없다). ES는 다 좋은데 터치가 되지 않는 디스플레이가 자꾸 맘에 걸린다.

C 220d는 옛날 차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뒷자리도 조금 불편하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넷 중에선 아테온이 ‘가격 대비 구성’이 가장 낫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아테온은 음, 재미가 없다. 이러다 올해도 새 차를 사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