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장에 이르면 나는 어김없이 상상한다. 고백을 듣고 있는 여자의 표정은 어떨까. 사실을 말하자면 소설을 읽지 않을 때조차 문득 궁금해진다. 이토록 흘러넘치는, 주체하지 못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애절한 고백을 듣고 있을 때, 모르긴 해도 그다지 감동한 얼굴은 아닐 것 같다. 놀라거나 쑥스러워하는 표정도 어울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읽어 낼 수 없는 모호하고 무심한, 멀고 아득한 표정이라면 모를까. 멀고 아득하며 모호하고 무심한 표정은 그녀에게 운명처럼 드리운 그늘이었다.

그러나 그늘이 어두울 거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녀에게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빛을 잃은 어둠의 시절인 동시에 생애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욕망의 빛을 좇았던 시절이었고, 퇴폐적으로 자신을 방치했던 시기였지만 평생 변하지 않는 사랑이 시작된 시절이기도 했던 것이다. ‘연인’은 열다섯 살 프랑스 소녀가 스물일곱 살 중국인 부호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을 나누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녀는 증오와 경멸, 혐오와 애증 같은, 자신이 삼켜 버리지 않으면 자신을 삼켜 버릴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했다. 광기 어린 엄마와 그런 엄마가 무조건 사랑을 쏟아붓는 큰오빠,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보란 듯이 배반하며 마약에 찌들어 사는 큰오빠와 언제나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 유약한 작은오빠. 그들 사이에서 ‘나’는 작은오빠와 한편이 되어 엄마와 큰오빠를 증오하는가 하면 사랑하는 엄마를 죽여 버리고 싶은 불가해한 충동에 빠지기도 한다.

중국인 남자는 모호하기만 한 그녀의 인생에 나타난 유일하게 명쾌한 세계다. 그는 그녀를 원한다. 강렬하게 그녀를 원한다. 남들 눈에는 석연치 않아 보이는 부적절한 관계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불안정하고 불가피한 불행으로부터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대피소인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독하게 탐닉한다.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없는 고목 같은 삶이지만 타인의 살결과 타인의 반응 속에 있을 때만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말이다. 습관처럼 “내 생(生)에는 역사가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은 그 시절을 마치 남의 이야기하듯 거리감 있게 서술하지만 그와 나눈 감각을 기억하고 묘사할 때만큼은 좀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정말 그와 그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호한 인생에 나타난 명쾌한 세계

사랑은 상대방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서로를 붙잡고 붙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가족 안에서 뿌리 뽑히기 직전의 상태로 불안하게 겉돌기만 하던 ‘나’에게 중국인 남성과의 관계는 유일하게 겉돌지 않는 세계와 의 조우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각각 프랑스인과 중국인이고, 이들이 지금 베트남에 살고 있다는 배경을 떠올리면 이들의 부유하는 감각은 조금 더 설득력을 지닌다.

소설의 배경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일 때, ‘나’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성장한 프랑스인이다. 아버지는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프랑스로 송환되었고 그곳에서 몇 주일 묵고 나서 1년도 못 채운 채 죽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 가는 것을 거부하고 살고 있던 곳에 눌러 앉았다. 메콩강변에 있는 호화로운 저택이 네 식구의 호화로운 삶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뿌리내려 본 적 없는 나무는 끝내 완전한 결합을 거부한다. 그녀는 남자에게 자신을 특별하게 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관계는 계속되지 못한다.

거친 얼굴 피부, 깊숙이 팬 주름살, 윤곽은 남아 있으나 윤곽을 이루는 물질은 모두 망가져 버린 얼굴…. 늙어 가는 몸에 대한 여자의 진술로 시작된 이야기는 늙지 않은 사랑에 대한 남자의 고백으로 끝난다. 남자는 자신의 사랑이 그녀가 열다섯 살이던 시절의 사랑과 동일하다고, 내 사랑엔 변함이 없다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라고 말한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사랑은 상대방에게 종속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종속됨으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는 것. 그러니까 사랑은 무엇보다 안전한 것이다. 생의 감각을 느끼게 해 주는 단단하고 확실한 세계를 향해 자발적으로 ‘타락’한 ‘나’의 일탈은 ‘부적절한 로맨스’를 어떤 성장담보다 더 용기 있는 모험담으로 읽게 한다. 그러나 어린 그녀는 안전함이 사랑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나디외. 뒤라스는 필명이다. 1914년 베트남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191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프랑스어 교사인 어머니의 인사이동에 따라 베트남 곳곳으로 이사를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1933년 프랑스로 영구 귀국해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식민지청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1941년 퇴직, 1943년 플롱 출판사에서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첫 소설 ‘철면피들’을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온종일 숲속에서’ ‘모데라토 칸타빌레’ ‘롤 V. 스탱의 황홀’ 등 다수의 작품에서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사용해 ‘누보로망(신소설)’ 작가로 평가받기도 했다. 일찍부터 연극과 영화의 매력에 눈을 떠 여러 가지 형태로 이 예술 장르와 특별한 인연을 맺는데, 그녀가 시나리오를 쓴 알랭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이 성공을 거두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뿐만 아니라 영화 ‘라 뮤지카’ ‘인디아 송’ 등에서는 제작 및 연출에 직접 참여하는 등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노년에 찾아온 알코올중독과 간경화의 고통을 이겨 내고 1984년 ‘연인’을 발표해 공쿠르 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고통’ ‘북중국의 연인’ ‘얀 앙드레아 스테네르’ ‘글쓰기’ 등을 발표, 1995년에 마지막 작품 ‘이게 다예요’를 집필했다. 1996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