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오브 마스크’의 한 장면. 사진 IMDB
영화 ‘맨 오브 마스크’의 한 장면. 사진 IMDB

‘범죄로 이득을 보는 사람, 그자가 범인’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단 한 발의 불의한 총격 때문에 국가와 국가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국경을 무너뜨릴까? 더 큰 이익을 바라는 자들이 교묘하게 획책한 사태는 아닐까? 돈벌이 사업인 줄 모르는 사람들만 평화를 구한다며 뛰어들어 인생을 놓치는 건 아닐까?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이틀 전, 모든 공격을 멈추고 대기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프랑스 진영에 떨어진다. 전쟁이 끝날 거라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았다. 병사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귀향의 꿈에 부풀어 남은 시간이 무사히 흐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몰락한 귀족이었던 프라델 중위에게 전쟁은 성공의 기회였다. 어떻게든 세간의 이목을 끌 더 큰 전공이 필요했다. 그는 두 명의 병사에게 적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고 명한다. 벌건 대낮에 적군을 도발할 수 있는 정찰이라니. 하지만 ‘적군보다 더 무서운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병사는 없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귀를 찢는 총성이 들린다. 정찰병이 당했다! 교전 수칙에 따라 아군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고 독일군과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다.

알베르는 수없이 터지는 폭탄에 귀가 먹먹하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도 안 되는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온다. 전우들의 피와 살이 튀고 비명이 이어지는 지옥, 사신의 눈을 피해 기어가던 알베르는 쓰러져 있던 정찰병들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상하다. 그들은 왜 가슴이 아니라 등에 총을 맞은 것일까. 설마 프라델이? 알아선 안 되는 걸 알아버린 알베르를 향해 프라델이 총을 겨누며 다가온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근처에 폭탄이 떨어진다. 프라델은 총 쏠 기회를 놓친다. 알베르는 흙 너울에 휩쓸려 생매장될 위기에 처한다. 마침 상황을 알아챈 에두와르가 뛰어와 구덩이에서 알베르를 끄집어낸다. 멈추었던 숨을 겨우 돌려놓고 안심하는 찰나, 날아온 파편이 에두와르의 턱을 날려버린다. 

전쟁이 끝나자 세상은 축제 분위기다.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린다며 법석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능한 정부라는 걸 홍보하기 위해서다. 살아 돌아온 초췌한 군인들과 팔다리가 잘린 부상병들이 사회의 음지로 내몰리는 이유다. 죽은 자는 영웅이 되지만 산 자는 외면받는 현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싸웠으나 귀환병들을 기다리는 것은 냉대와 혐오, 부상의 고통과 가난과 전쟁이다.

에두와르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사랑받고 싶었으나 한 번도 인정해 준 적 없는 아버지, 반항하듯 입대했지만 남은 건 반쪽짜리 얼굴이다. 집으로 돌아가 이 꼴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그를 위해 알베르는 서류를 조작, 전사자로 만들어 준다. 

은행원으로 복직할 수 없어 하루 벌이 노동자가 된 알베르가 에두와르를 보살핀다. 차라리 죽여달라며 몸부림치는 그의 고통을 덜어줄 모르핀도 구해야 한다. 일당을 벌지 못한 날에는 먹고살기 위해 국가에서 지급해준 모르핀을 팔아야만 하는 상이용사에게서 훔치고 빼앗는다. 전쟁이 끝나자 아군이 적이 되어 싸우는 슬픈 아이러니.


전쟁은 성공의 기회?

세상은 악인의 편인 걸까. 프라델은 성공했다. 전사 통지서를 받고 시신을 찾으러 왔던 에두와르의 누나, 정치와 경제를 한 손에 거머쥔 엄청난 거물의 딸, 마들렌과 결혼한 것이다. 그런 뒷배로 프라델은 대규모 군사 묘지 국책 사업을 맡는다. 멀끔하게 잘생긴 그는 한껏 멋을 내고, 마음껏 돈을 쓰고, 아내의 친구든 부하의 약혼자든 가리지 않고 신나게 바람도 피운다. 그야말로 프라델의 전성시대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전사자 수를 부풀리고 저질 목재에 인체가 들어갈 수도 없는 소형 관을 제작하지만 양심의 가책은 없다. 관 크기에 맞춰 전사자들의 팔다리를 잘라 넣는 것도 모자라 부실 관리로 장병들의 이름과 묘지와 시신이 마구 뒤섞인다. 유가족이 땅을 파서 관 뚜껑을 열어 볼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프라델에겐 죽은 병사들조차 성공의 발판일 뿐이다. 

어디까지가 사업이고 어디부터가 사기일까. 모르핀에 중독되어 가면서도 주워온 신문지와 잡동사니로 가면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옅은 미소를 되찾아가던 에두와르는 참전 용사 추모비 공모전이 있다는 걸 알고 눈이 반짝 빛난다. 에두와르라고 전쟁을 이용해 돈 벌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전쟁을 시작한 죄, 전쟁을 멈추지 않은 죄, 전쟁을 즐긴 죄, 전쟁으로 사익을 취한 죄’를 지은 세상을 벌하리라. 전쟁을 일으켜 목숨을 빼앗고 인생을 강탈한 사회를 크게 한판 뒤집어놓으리라. 에두와르는 즐겁다. 그런데 거액의 상금만 받고 튀겠다고? 알베르는 반대했지만 달리 살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국가를 상대로 한 에두와르와 알베르의 대사기극이 시작된다. 

그즈음, 에두와르의 아버지는 심장발작을 일으켰다.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온 그는 비로소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사업을 물려받을 든든한 아들을 바랐지만 에두와르는 천재적인 화가의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다. 하지만 대체 그림을 뭐에 써먹는단 말인가. 한 번도 따뜻하게 품어준 적 없었다. 왜 진작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아버지는 뒤늦게 가슴을 친다.

그는 전쟁 기념 사업에 참여, 자기 지역에 세워질 참전용사탑 건립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한다. 비석에 아들의 이름이라도 새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떠나보낸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와 죽음보다 더 슬픈 삶을 죽지 못해 살아가던 아들의 천륜이 사기 행각 속에서 이어지려 하고 있었다.

2017년에 개봉된 프랑스 영화 ‘맨 오브 마스크’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소설 ‘오르브아르’를 원작으로 한다. 워낙 잘 짜인 소설인데다 극 중 알베르를 연기한 알베르 뒤퐁텔이 각색과 감독을 맡아 좋은 작품을 완성했다. 

매혹적인 가면들과 슬픔이 빚어내는 위트, 원작에서는 이루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는 속 깊은 위로를 담은 감독의 선물이다. 악인이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 모두가 죄의 그물을 빠져나갈지라도 주인공이라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서글픈 책임도 외면하지 않는다. 어둡고 소란하고 텅 빈 영화들 속에서 또렷이 빛나는 작품이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