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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책
강현석 외 14│돛과닻│2만2000원│260쪽│4월 8일 발행

기원전 300년쯤 바빌로니아 사람은 계산판의 칸 위에 돌을 놓아가면서 계산하고 마지막에 돌의 위치를 옮겼다. 빈자리를 그대로 둘 수 없던 이들은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숫자 ‘0(제로)’을 만들어냈다. ‘없다’는 개념이 역설적으로 빈자리를 세기 위한 표식이 된 셈이다. ‘제로’는 어쩌면 현재 상황을 드러내는 과정 자체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로의 책’은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여러 모습에 대해 각계 전문가인 저자들이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의 생각을 가감 없이 풀어낸 책이다. 기후 위기, 인공지능(AI), 건축, 젠더, 환경, IT, 교육, 디자인 등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을 창작가, 건축가, 교육가, 안무가 등 여러 저자가 각자의 상황에서 현재의 문제점과 미래를 고민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지구상 여러 영역에서 벌어지는 과잉 생산과 소비, 우리 내면의 혐오와 차별, 그 앞에서 예술이 갖는 한계와 가능성 등 문제를 근본적 토대에서부터 돌아보고, ‘제로’ 이후에 새롭게 대면할 내일을 상상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때로는 합쳐지기도 한다. 책을 디자인한 어라운드랩은 오늘날 생산과 소비의 매개자인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광고 디자이너로 일할 때 엄청난 양의 광고 홍보물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면서 누구를 위해 디자인하는 것인지 고민했던 적 있다는 그들은 환경에 대해 생각하고,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들은 어떤 소재가 더 나은 선택인지 고민하기보다 소비 형태를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건축가 강현석은 ‘구축 없는 건축의 구축’이라는 주제로 현실에 지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그래서 물리적 한계와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건축적 접근의 사례를 소개한다. 구축되지 않은 건축은 모든 형식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된다. 드로잉, 모형, 영상, 설치, 텍스트 등 형식의 자유를 통해 건축은 세계 곳곳을 배회할 수 있다. 구축되지 않은 건축은 때로는 시대에 대한 선언과 대안을 제시하는 등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현재의 여러 사회 갈등과 위기로부터 해방에 대한 메시지 수단으로서 건축을 소개한다. 

미디어아티스트 최승준은 기술 교육에 내재한 쟁점을 논한다. 최근 IT 분야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능력이 유능한 인재 조건으로 꼽히는데, 그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만날 땐 작은 성공 사례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 기술은 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논란을 야기하는 동시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안무가 윤상은은 오랜 시간 자신을 붙들어온 전통 발레 교육의 틀을 넘어 다양한 연령과 신체를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친 경험에 대해 논한다. 그는 작업과 삶을 분리할 수 없다면, 지금의 삶은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발레라는 예술이 가진 위상과 명예를 내려놓고 ‘제로’의 상태에서 시작될 무언가를 기다린다.

송수연은 AI의 놀라운 발달이 야기한 윤리적 딜레마가 편견을 축적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이를 해체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면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저자는 해킹, 디커링, DIY, 디버깅 등의 제작 방법을 통해 기술을 이해하고 관점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좋은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로의 책’은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예술사업 선정 프로젝트인 ‘제로의 예술’에서 비롯됐다. 인공지능 윤리 문제, 미술 재료, 기후 위기, 건축의 현실 등 다양한 주제로 총 46회 워크숍과 14회의 강연을 열고 웹진과 페스티벌 등 온·오프라인을 무대로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1개월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뒤 남겨진 고민에 대한 논의가 담겼다. 더 긴 호흡의 대화, 더 많은 상상과 실천을 마련하기 위해 각기 다른 문제의식을 지닌 언어를 모아 ‘제로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엮었다. 책의 외양이 일반적인 책과 다르다는 점도 흥미를 끌 만하다. 앞표지에는 목차를, 뒤표지에는 판권지를 앉혀 책의 정보를 외부에 노출했고, 표지와 내지 모두 재생 펄프 함유율이 100%인 종이에 콩기름으로 인쇄했다.


winner의 조건
반도체 전쟁
최낙섭| 한올출판사│1만3800원│220쪽│5월 15일 발행

IT 혁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반도체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 책은 미·중 갈등 전문가인 저자가 인류의 문명을 바꿀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상세하게 풀어쓴 책이다. 디지털 혁신 속 새로운 100년 기업을 소개하며 반도체 코리아의 위상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담았다. 반도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하게 읽어볼 수 있다.


거센 도전에 직면한 생태계
사라져 가는 존재들
팀 플래치│장정문 옮김│소우주│3만원│342쪽│5월 20일 발행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과 거센 도전에 직면한 생태계에 대한 강한 설득력을 가진 시각적 기록을 담았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풍부한 감성을 담은 동물의 초상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얼마나 인간의 횡포에 연약한 존재인지 일깨운다. 그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해 독자의 교감을 끌어내고 관심을 유도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걷어내는 법
굿모닝 해빗
멜 로빈스│강성실 옮김│쌤앤파커스│1만6000원│288쪽│5월 25일 발행

매일 아침 3초의 행동이 당신의 평생을 바꾼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자기비판을 멈추며 마음속 여러 장애물을 치우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자신과 잘 지내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소개한다. 모든 이에게 큰 용기와 울림, 자신감과 실행 에너지를 줄 것이다.


애프터 인플레, 누가 돈을 벌까?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오건영│페이지2북스│1만8800원│404쪽│5월 23일 발행

끝을 모르며 오르는 물가에서 살아남는 자는 누구일까. 최신 인플레이션 현황에 대한 시나리오가 책으로 나왔다. 경제 현상을 네 가지 상황으로 나누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해보고, 투자 포트폴리오에 연계하는 법을 알아본다. 지난 2021년의 투자 환경과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짚어보고, 두 가지 미래 시나리오도 제시한다. 


마에스트로의 삶과 예술
지휘의 발견
존 마우체리│이석호 옮김│에포크│2만원│552쪽│5월 10일 발행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의 지휘자로 활동한 저자가 50여 년에 걸친 자신의 경력을 진솔하게 되돌아보고, 선배 지휘자들과 스승인 번스타인과 카라얀, 스토코프스키, 토스카니니 등의 발자취를 꼼꼼히 기록해 쓴 ‘지휘의 일대기’다. 당대에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었는지, 작곡가는 어떤 음악을 상상하고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알 수 있다.


미국의 미래를 위한 싸움
그냥 지나갈 순 없다(This Will Not Pass)
조너선 마틴, 알렉산더 번즈│시몬앤드슈스터│18.75달러│480쪽│5월 3일 발행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예전처럼 작동할 수 있을까. 두 명의 뉴욕타임스 기자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과정을 취재하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원 복수전부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년 차 양당 내부의 깊은 균열까지 자세히 담았다. 수백 건의 생생한 인터뷰도 함께 볼 수 있다. 취재 당시 메모와 심경 등도 확인할 수 있다.

전효진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