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R1200GS / BMW
BMW R1200GS / BMW

모터사이클, 두 개의 바퀴 위에 올라 바람을 가르며 한적한 길을 달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속도, 자유, 모험과 일탈 등 떠오르는 단어들조차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은 근거리 운송 등의 영업용과 레저용으로 분명하게 나뉜다. 대부분의 모터사이클 제조·수입사가 속한 한국이륜자동차산업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연간 시장 규모는 약 11만대다. 2016년을 기준으로 자동차 운전면허로도 탈 수 있고 배달 등 업무용 수요가 대부분인 125cc 이하가 전체 판매의 86%인 9만3805대다.

재미있는 것은 점유율의 변화다. 전체 판매량이 비슷한 숫자를 유지하는 데 반해 2종 소형 면허가 있어야 하는 125cc 초과 바이크는 2015년 11.7%에서 2016년 13.3%로 늘어났다. 레저용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협회에 속하지 않은, 많은 수입 모터사이클 회사들의 판매량까지 더하면 실제 레저·개인용은 더 많을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국내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은 일본 혼다와 미국 할리데이비슨 그리고 독일 BMW가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BMW 모토라드(Motorrad·모터사이클의 독일어)는 2017년에도 12% 넘게 판매가 늘었는데 이런 인기의 한가운데 있는 바이크가 R1200GS다.


포장·비포장 어디든 안정적 주행감

GS라는 이름은 독일어 ‘겔렌데 슈트라세(Gelände·Straße)’의 앞 글자를 땄다. 전자가 비포장도로를 뜻하고 후자는 거리를 가리킨다. 말 그대로 노면에 상관없이 어디든 달릴 수 있다는 의미로 듀얼 퍼포즈(dual purpose)라고 불리기도 한다. 1980년에 첫 모델인 R80G/S가 나와 어드벤처 바이크라는, 세계 여행에 가장 적합한 새 장르를 열었다. 아마 모터사이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바이크 좌우에 은색으로 된 패니어 케이스에 캠핑 장비를 잔뜩 싣고 오지를 달리는 사진을 봤을 것이다. 영국의 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동료 배우 찰리 부어만과 함께 떠난 세계 일주 여행 ‘롱 웨이 라운드(Long Way Round)’와 ‘롱 웨이 다운(Long Way Down)’에서 탔던 그 바이크다.

지금의 R1200GS는 이런 38년 GS 역사의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다. 125마력을 내는 배기량 1170cc 2기통 엔진을 얹었다. 이름에 있는 영문자 ‘R’은 이 엔진을 가리키는 것으로 같은 2기통이지만, 수직으로 선 엔진을 얹은 바이크에는 ‘F’가 붙는다. 좌우로 툭 튀어나온 모양에서 보듯 권투 선수가 주먹을 뻗듯 피스톤이 움직이기에 수평대향 엔진이라 불린다. 바이크에서 가장 무거운 부품인 엔진이 낮게 달려 전체 무게 중심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차체를 기울여 코너를 돌고 빨리 일어서야 하는 모터사이클의 특성상 아래쪽이 무거운 오뚝이처럼 움직이도록 돕는다. 물론 엔진이 위아래로 서 있는 다른 바이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묵직하게 눕고 일어선다. 덕분에 달릴 때의 느낌은 경쾌함보다 안정감이 크다. 먼 거리를 달릴 때 마음이 편해지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R1200GS는 무겁다. 20ℓ의 연료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244㎏이다. 여기에 가방 등을 달면 더 무거워진다. 특히 시트의 높이가 850㎜로 일반적인 바이크와 비교하면 높은 쪽에 속한다. 키 170㎝인 성인 남자가 앉았을 때 발레리노가 된 듯 양쪽 발끝만 살짝 땅에 닿는다. 이 때문에 바이크에 앉은 상태로 발로 밀어 움직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정지상태에서 끌거나 밀어 움직일 때 버거웠던 무게는 사라지고 안정감만 남는다. 높아서 불안했던 시트는 화물차 운전석과 맞먹는 높이 덕에 탁 트인 시야를 준다. 웬만한 SUV의 지붕도 눈 아래에 있다. 도로 전체를 내려다보며 달리는 느낌은 말 위에 올라 긴 창을 휘두르던 기병의 그것이다.

바이크는 온몸으로 조종하는 기계다. 오른손으로 스로틀을 감고, 왼손으로 클러치를 잡으며 왼발로는 기어를 바꾼다. 속도를 줄여야 할 때는 다시 오른손으로 스로틀을 돌리고 앞 브레이크 레버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오른발로 뒤 브레이크를 밟는다. 양손과 양발을 바쁘게 쓰다 보면 어느새 코너가 다가온다. 미리 충분히 속도를 줄인 다음 기어를 내리고, 몸을 기울여 코너를 도는 동안 스로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요령이다. 코너 정점을 지나 다시 오른손을 비틀면, 자이로 효과에 의해 바이크는 스스로 몸을 세우며 일어난다. 그렇게 춤을 추듯 몸을 쓰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웬만한 수퍼카보다 나은 가속

이제 뻥 뚫린 길에서 가속감을 느낄 차례다. 흔히 성능을 말할 때 쓰는 무게당 출력을 생각해보자. 600마력을 내는 수퍼카들은 차 무게 100㎏당 엔진 출력이 42마력 정도다. R1200GS는? 같은 무게를 기준으로 55마력이다. 어떤 속도에서도 오른손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빠르게 속도를 높인다. 물론 더 가벼우면서도 200마력이 넘는 수퍼바이크들도 많다. 그럼에도 세계 일주를 위해 R1200GS를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속 200㎞를 넘길 일은 거의 없는 대신 국도를 포함해 시속 80~120㎞ 정도에 이렇게 편하고 즐거울 바이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바퀴가 잠겨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ABS나 주행 상황에 따라 서스펜션의 강도를 바꾸는 전자식 서스펜션, 자세를 자동으로 잡아주는 스태빌리티 컨트롤 등 라이딩을 돕는 안전장비도 충실하다.

말이 인류 역사에 들어온 것은 BC 5000년 부근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종일 걸어야 30㎞를 이동하기도 어려웠던 인류는 말을 타면서 활동 범위가 크게 넓어졌고 광활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여행에 대한 갈망은 아마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을지 모른다.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가 적토마를 탔을 때 완성된 것처럼, 자동차가 아닌 모터사이클로 떠나는 여행은 남다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2종 소형 면허를 따는 것이 이 여정의 시작일 것이다.


▒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컨설턴트


Plus Point

처음 바이크에 입문하는
사람을 위한 G310GS

크고 무거운 바이크가 부담스럽다면 2017년 가을부터 판매를 시작한 BMW G310GS가 있다. 이름대로 310㏄ 단기통 34마력 엔진을 얹은 바이크로 820㎜의 낮은 시트고와 170㎏에 살짝 가벼운 몸무게로 경쾌함을 살렸다. 의자에 앉아 팔만 뻗으면 되는, 쉽게 탈 수 있는 바이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