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사람을 죽인 그녀는 후회도 유감도 없다고 했다. 소설 최후의 장면이라 할 부분에서 우리의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어떤 감정적 동요도 보이지 않고 무심하게 말한다. 섹스나 한탕 하자고 해서 총으로 탕탕 쏴 죽였다고. 담담하게, 그러나 진실을 담아. 스물일곱 살의 평범한 여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대체 어떤 가혹한 일이 있었기에 제 발로 경찰을 찾아가 그를, 그러니까 한 일간지 기자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 걸까.

때는 바야흐로 1974년 2월 24일 일요일. 소설의 시계는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으로 돌아간다.

카타리나 블룸에 대한 소개부터 해야겠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가정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줄 아는 현명한 사람으로,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 주변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부류에 속한다. 소설은 그런 한 여성이 살인을 감행하기까지 5일 동안의 행적을 재구성하는데, 그 보고서의 기반이 되는 것은 경찰의 심문 조서와 검사 및 변호사로부터 얻은 정보를 비롯해 참고인 진술 등이다. 이른바 ‘카타리나 블룸 살인사건’에 대한 보고서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어떻게 한 인간의 명예와 인생을 뿌리째 파괴할 수 있는지, 그 잔인한 폭력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앞서 사용한 카타리나 블룸 살인사건이란 명칭은 이렇게 수정하는 게 적절하겠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 관한 보고서.


카타리나의 죽음 이후 45년

그녀의 삶을 광풍 속으로 몰고 간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2월 20일 수요일. 카타리나 블룸은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낸다. 그리고 그 이튿날 경찰이 그녀 집에 들이닥치고 가택 수색을 벌이는데, 급기야 그녀가 연행되는 사태에까지 이른다. 괴텐은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있는 위험한 사람으로, 그동안 줄곧 언론과 경찰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괴텐이란 남자 사건 연루 혐의로 카타리나가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녀는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먹잇감이 된다.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 중에는 특종을 찾아 헤매는 일간지 기자 퇴트게스도 있다.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왔고 그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러한 평가를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지, 말하자면 그녀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기자의 추측에 따라 ‘살인범의 정부’가 되었다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가 되었다가 ‘음탕한 공산주의자’가 된다. 그녀의 삶은 서서히 질식해 간다.

카타리나 블룸의 목을 조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특종에 눈 먼 기자와 그의 기사를 재생산하는 사람, 그러니까 그들은 누구인가. 이렇게 적어 놓고 망연해지는 까닭은 카타리나 블룸의 인생을 압도한 광기 어린 대중으로부터 나를 떼어 놓을 알리바이가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악플과 악플의 플랫폼을 자처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로 인해 괴로움을 호소하던 여성 연예인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참혹한 엔딩을 앞에 두고 카타리나 블룸의 엔딩을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자신의 삶을 소재 삼아 제멋대로 ‘소설’을 써 대던 기자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던 카타리나 블룸이지만, 그 선택이 자신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45년. 절대 짧지 않은 시간, 우리 사회는 카타리나 블룸을 막다른 선택 앞으로 몰고 간 시간으로부터 한 발짝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비극적인 마지막을 결코 죽음이나 패배의 엔딩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자백의 언어로 끝나는 소설의 엔딩은 줄곧 주인공이 맞서 왔던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녀는 끝까지 진실의 언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이 환호했던 거짓의 언어가 카타리나 블룸의 인생을 훼손했지만 끝까지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그녀가 지켜온 진실의 언어는 살아남았다. 보고서가 그 증거다.

소설에는 부제가 있다.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이 결과는 폭력의 결과이지 다른 무엇, 그러니까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그런 소문의 결과는 아니다. 내 안에 뿌리내리려고 하는 퇴트게스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다시 읽는 마음이 못내 무겁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1917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군에 징집되어 6년 동안 프랑스, 소련, 헝가리 등 여러 전선에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그는 쾰른에 정착해 패전의 폐허 위에서 가난하게 생활하는 한편 공부를 계속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 병사들의 절망적인 삶을 묘사한 ‘기차는 정확했다’를 시작으로 참혹한 참전 경험과 전후 독일의 참상을 주로 그린 작품을 발표했다. 1951년 ‘47그룹 문학상’을 받으면서 문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졌으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로 성공을 거두며 평론가와 독자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소비 사회의 세태에 대한 회의가 담긴 이 작품을 계기로 그전까지 전쟁과 비인간성에 주목하던 뵐 문학의 주제는 불균형한 사회 발전과 물질주의의 폐해로 넓어졌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문제작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비롯해 ‘9시 반의 당구’ ‘어느 광대의 견해’ ‘신변 보호’ 등의 대표작이 있다. 정치적,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데 거침없었던 그는 국제펜클럽 회장이 된 후 박해받고 있는 여러 나라의 작가를 돕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항상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는 약자의 편에 서고자 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더욱 많은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