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함부르크 중심부에 위치한 성 야코비 교회에는 오르간 제작 명장 아르프 슈니트거의 작품이 있다.
독일 함부르크 중심부에 위치한 성 야코비 교회에는 오르간 제작 명장 아르프 슈니트거의 작품이 있다.

음악이 정점을 향해 올라가며 악기의 볼륨 또한 커진다. 커지다 못해 건물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 진동은 고스란히 듣는 이의 마음 깊은 곳으로 전달된다. 음악이 주는 기쁨을 넘어 온몸을 짜릿하게 뒤덮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진다.

필자가 함부르크 성 야코비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었을 때의 느낌이다. 웬만한 3~4층 건물과 맞먹는 크기인 수천 개의 파이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장엄한 소리는 마치 교회 건물을 뒤흔들어 집어삼키는 듯했다. 독일 함부르크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성 야코비 교회에는 ‘세계 최고의 오르간’이라 불리는 슈니트거 오르간이 있다. 슈니트거 오르간은 오르간 제작 명장인 아르프 슈니트거의 이름에서 나왔다. 바이올린 하면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떠오르듯이 오르간 제작에 있어 최고의 장인 중 한 사람이라 불리는 이다.

슈니트거는 1648년에 태어나 17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150대의 오르간을 제작하며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전쟁 중에 파괴되거나 화재로 전소되면서 약 30대의 오르간만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중에서 함부르크 성 야코비 교회에 남아 있는 오르간이 최고의 걸작품으로 꼽힌다. 성 야코비 교회의 오르간은 1693년 제작이 완료됐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북독일을 오르간 음악의 중심지로 이끌었다. 슈니트거에 의해 더욱 세심하게 다듬어진 파이프(공기가 관통하는 통로), 더욱 넓어진 베이스 음역은 다채로운 음악 표현을 가능하게 했고, 많은 음악가와 연주자가 꼭 한 번 찾고 싶어 하는 곳이 됐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도 그중 한 음악가였다.


바흐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
바흐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

1701년 16세였던 바흐는 함부르크 근교 뤼네부르크의 한 수도원학교에 장학생으로 있었다. 당시 바흐가 함부르크에 있던 오르간 연주자 요한 아담 라인켄의 연주를 듣기 위해 10시간을 걸어왔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그 후로도 바흐는 독일 쾨텐 등 다른 지방에 살면서도 성 야코비 교회의 슈니트거 오르간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1720년 11월, 바흐는 성 야코비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를 뽑는다는 전보를 접하고 서둘러 함부르크로 갔다. 하지만 교회에서 4000마르크(현재 가치로 약 2만유로)에 해당하는 과도한 기부금을 요구해 아쉽게도 발길을 돌렸다고 전해진다. 현재도 많은 함부르크 사람은 이 일화를 이야기하며 아쉬워한다. 만약 바흐가 당시 함부르크에 머물렀다면 음악사가 바뀔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아들 카를 필립 에마뉘엘 바흐는 성 야코비 교회를 포함한 함부르크 주요 교회의 음악을 관장하는 ‘칸토어(Kantor·교회음악감독)’가 되면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뤘다.

매주 목요일 오후 4시 30분, 성 야코비 교회에서는 ‘30분간의 오르간 연주’라는 이름의 연주회가 무료로 열린다. 바흐를 비롯해 텔레만, 슈벨링크, 북스테후데 등 북독일 오르간 음악인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몇 년 전 이 연주 시리즈가 시작될 때만 해도 관객은 10명에 불과했다. 현재는 교회가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리에 열린다.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필자도 종종 찾아가 바흐가 들었던 악기 소리를 들으며 그와 교감하곤 한다. 또 개인적으로 친한 후배가 이 교회 칸토어의 조수로 일하는 덕분에 후배가 연주 준비로 연습하는 밤에 찾아가 슈니트거 오르간의 건반을 눌러보는 특전 아닌 특전을 누리기도 했다. 짙게 어둠이 내린 교회 건물 안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파이프 오르간 건반을 눌렀을 때, 거기서 뿜어나오는 거대한 음이 교회를 가득 채울 때 느껴지는 전율은 어떠한 말로 감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한 음 두 음 누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환상적인 악기 소리에 빠져든다. 모차르트가 ‘오르간은 악기 중의 왕이다’라고 말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아르프 슈니트거 서거 300주년을 맞아 현재 함부르크 성 야코비 교회를 비롯해 함부르크에는 그를 기념하는 수많은 연주가 열리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도 필자가 추천한 음반을 들으며 슈니트거 오르간의 감동을 느꼈으면 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아르프 슈니트거 오르간
오르간|루돌프 켈버

성 야코비 교회의 슈니트거 오르간으로 녹음한 바흐 및 북독일 작곡가의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비록 바흐 본인은 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꿈을 실현하진 못했지만, 당시 함부르크에서 그의 즉흥 연주를 들은 오르간 연주자 요한 라인켄은 “사라진 줄만 알았던 오르간 즉흥 연주의 전통이 아직 살아있음을 깨달았다”라고 극찬했다. 북독일 지방은 당시 종교 개혁의 영향이 많이 미쳤던 지역답게 삶의 풍요와 기쁨을 노래하는 음악보다는 신에게 던지는 삶의 근원에 관한 진지한 물음이 담겨 있는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