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지음|민음사
2만5000원|788쪽

김수영(1921~68년) 시인의 전집 개정판이 나왔다. 1981년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각각 한자리에 모아 첫선을 보인 이 전집은 2013년 수정판을 낸 데 이어 이번에 미완성 유고들까지 수집해 결정본이나 다름없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문학전집은 흔히 전문 연구자들이나 읽는 자료집으로 여겨져 왔지만 김수영 전집은 각각 시 5만부, 산문 3만부 넘게 팔리며 전례 없이 대중적 성공도 거뒀다. 김수영은 시 ‘거대한 뿌리’를 쓴 시인이자 실제로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시의 ‘거대한 뿌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수영의 시가 오늘의 한국 시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김수영은 일상어와 비속어를 파격적으로 시에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보여준 시인이다. 오늘날 한국 시에선 전혀 놀랍지 않은 시작(詩作)의 방법이다. 김수영 문학에 입문하는 방법은 그의 산문집부터 읽는 것이다. 서점엔 산문 선집이 없으므로, 이번에 나온 산문 전집의 개정판을 읽을 수밖에 없다.


가장 세속적인 방법으로 성스러운 의미 부여

김수영의 산문은 흔히 시인의 신변잡기로 불리는 산문집과는 다르다. 한국전쟁과 4·19, 5·16으로 이어진 현대사의 체험기이자, 그 무렵 한국 시의 현황과 논쟁을 날카롭게 풀이한 비평적 산문이기도 하다. 6·25 때 서울에 살던 김수영은 인민군 의용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해 귀가했지만 어쩔 수 없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지금껏 그의 시에서 포로수용소 생활이 잠깐 언급되는 데 그쳤을 뿐 그 시기를 상세하게 다룬 산문은 드물었다. 이번 전집은 새로 발굴된 그의 산문 ‘내가 겪은 포로생활’을 첫머리에 실었다. 

김수영은 이렇게 썼다.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더라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이 포로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것. 포로 생활의 고통이 나열된 가운데 눈길을 끄는 단어는 ‘성서(聖書)’와 ‘설움’이다. 김수영은 포로수용소에서 ‘성서’를 되풀이해서 읽었다. “너무 서러워서 뼈를 어이는 설움이란 이러한 것일까! 아무것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느낌이 심하여질수록 나는 진심을 다하여 성서를 읽었다”라는 것.

독자는 혹독한 현실 속에서 종교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개인의 비참한 심리 상태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이 글은 그 이후에 전개될 그의 삶과 문학에 종교성이 배어들게 된 계기를 이해하는 길을 열어준다. 김수영의 문학을 소시민의 일상을 토대로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참여 문학의 기수 역할을 했다고 보지만, 김수영의 문학에 담긴 초월 지향성은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김수영 전집의 개정판을 편집한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은 “흔히 김수영의 대표시 ‘풀’을 참여시로 생각하지만, 풀의 움직임을 통해 존재에 대한 초월적이고 영성적 느낌도 준다는 점에서 김수영의 시에는 종교적 측면도 있다”고 풀이했다. 그의 산문집도 마찬가지로 읽을 수 있다. 현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지식인의 초상을 흔히 김수영 산문의 핵심이라고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시인이 의도적 자기 비하를 통해 위선과 탐욕을 꾸짖는 글도 적지 않다. 그러한 삶의 태도는 가장 세속적 방법으로 가장 성스러운 의미를 깨닫기 위한 역설의 언어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김수영이 종교의 전도사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쩌면 가장 비종교적인 문학의 언어를 통해 종교의 경지에 이른 문학을 지향했는지도 모른다.

김수영이 1966년에 쓴 산문을 읽어보자. “그러나 아직도 나는 떠있다. 가라앉아 있지 않다. 문학에 시에 진정으로 절망하고 있지 않다. 진정으로 절망해야겠다는 것조차가 벌써 야심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들은 발가벗어야 한다. 부단히 발가벗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