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사진 오른쪽) 시인과 어머니 이의순 여사가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이정록(사진 오른쪽) 시인과 어머니 이의순 여사가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동심언어사전
이정록 지음|문학동네
1만6500원|428쪽

사전은 언어의 집이고,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한다. 인간은 언어의 틀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하면서 살아간다고도 한다. 물론 진리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다고 해서 언어의 불완전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철학자는 그래서 다른 철학자의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언어에 대한 언어, 메타언어를 사용한다. 시인은 기존 언어를 해체하면서 언어를 해방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난해한 실험시만 그런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장난이 두터운 언어로 고정관념의 벽을 허문다.

이정록 시인이 ‘동심언어사전’이란 이색 시집을 냈다. 동심의 눈으로 우리말을 새롭게 풀이한 시집이다. 그는 “시와 사전의 형식을 담아 316편을 묶었다”며 “북한말을 포함해서 순우리말로 된 복합어가 주를 이룬다”고 밝혔다. 시 ‘구슬땀’처럼 전형적인 동시의 언어로 우리말을 새롭게 풀이했다. “땀 흘려 일할 때/ 몸은 보석 상자가 되지/ 구슬구슬 송알송알/ 구슬이 쏟아지지”라고 꽤 시각적으로 노래한 것. 땀·몸·일, 보석·구슬·송알로 묶인 말의 대비 효과도 숨어 있다. 


입안의 엄니, 어금니…기발한 발상 인상적

이 시집은 어린아이의 말투를 차용해 펼친 순수한 언어의 향연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슴’과 결합된 복합어 중 의학용어로 ‘가슴우리’가 있다. 시인은 이렇게 풀이한다. “가슴을 둘러싸고 있는 뼈대이다/ 가슴우리는 허파와 심장을 지키는/ 복장뼈와 등뼈와 갈비뼈와 갈비연골을 말한다/ 가슴에는 평생 길들여지지 않는 마음이 산다. 마음이 뛰쳐나갈까봐/ 짐승처럼 우리에 가둔 게 아니다/ 내가 아니라 늘 우리를 생각하는 따뜻한 가슴 둥우리라는 말이다”

흔히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우리’가 시인의 마음에선 ‘우리를 생각하는 따뜻한 가슴 둥우리’로 바뀐다. 시인은 기존 언어에 새 해석의 틀을 제시하고 새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진부하지 않은 언어로 일상적 진실을 표현한다. 이정록 시인은 노모를 향한 효심을 기발한 발상으로 드러내 더 진솔한 느낌을 전해준다. 시 ‘어금니’가 그렇다.

“어금니는 엄니다/ 맛 중의 맛, 씹는 맛까지 알려준다/ 이 중의 이, 가장 일을 많이 한다/ 집안의 엄니처럼 입안의 엄니다/ 일하기 좋아해 쉬 망가진다/ 일복으로 황금을 선물 받는다/ 엄니는 금니가 많다”

시인은 언어를 활달하게 사용하는 사람이다. 시 ‘물수제비’가 그러하다. “물낯을 통, 통, 통, 통, 튕기는/ 작은 돌은 수제비처럼 납작하지/ 물낯에 꽃봉오리를 치네/ 제비가 냇물 목욕하며 날 때처럼/ 단숨에 그린 발바닥 꽃이여”라는 시행을 통해 언어의 율동감과 탄력을 보여준다.

동심으로 쓴 이 시집에는 언어유희가 풍성하다. 시 ‘송이눈’은 우리말 ‘송이’와 연관된 말장난이다. ‘함박꽃송이만큼/ 아름다운 송이눈이 온다/ 밤송이만큼 큰 주먹눈이 온다/ 송이송이 눈꽃이 핀다’라며 이어진 ‘송이’의 말장난은 송이눈이 어느 낚시꾼이 끓인 ‘송이매운탕’에 내리는 장면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