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 가장 매끄러운 모습인 벨라. 사진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 가장 매끄러운 모습인 벨라. 사진 랜드로버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의 인기가 높다. 세계적으로 볼 때 중국과 미국 등에서 픽업트럭 등을 포함한 SUV 차종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이는 국내도 마찬가지다. 국산 차 판매만을 보더라도 2017년 상반기와 하반기를 비교하면 승용차·SUV·미니밴 판매율이 62.2, 30.9, 6.9%에서 56.6, 37.2, 6.1%로 바뀌었다. 하반기 들어 SUV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승용차의 판매가 줄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양상은 수입차에서도 비슷하다.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던 벤츠는 2016년 대비 22%가 늘어난 총 6만8861대를 팔았는데 이 중 1만2127대가 SUV 모델들로 약 18%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5만9624대를 판 BMW는 SUV 모델인 X시리즈가 전년 대비 25.4% 성장한 9613대를 차지해 전체 판매를 이끌었다.


낮지만 넓어서 크고 당당해 보여

이런 시장 성장세 속에서 랜드로버는 1만740대를 팔아 처음으로 렉서스·도요타·포드 등과 함께 1만 대 클럽에 가입했다. 대중적인 4도어 세단과 SUV를 함께 파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SUV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브랜드이기에 국내 자동차 시장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성공의 한가운데에 2017년 9월 공식 판매를 시작한 레인지로버 벨라가 있다. 랜드로버 브랜드 중 럭셔리 모델의 서브 브랜드라 할 수 있는 레인지로버 라인업에서 세 번째, 데뷔순으로 따지면 네 번째인 중형 SUV다. 차 길이는 싼타페(현대차)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차폭은 훨씬 넓다. 하지만 높이는 싼타페보다 낮다. 차 모서리는 둥글지만 이렇게 낮고 넓은 디자인 덕분에 차가 훨씬 크고 당당해 보인다.

겉모습은 가장 최신의 랜드로버 디자인의 흐름을 그대로 담았다. 길게 뻗은 선들을 단순하면서 우아하게 휘어지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나온 레인지로버 라인업 중에서 라인이 가장 매끄럽다. 시승차는 좀 더 넓고 공격적인 범퍼와 구리색 악센트가 곳곳에 들어간 R-다이내믹 모델이라 더 화려하다.

특히 문을 여는 도어 핸들을 플러시 타입으로 만들었다. 리모컨 키의 버튼을 눌렀을 때 부드럽게 튀어나와 최신 자동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 주행 중에는 차체 안쪽으로 감춰져 공기 저항을 줄인다. 여기에 뒤 유리 위쪽에 큰 스포일러 등 공기 역학적인 장비를 많이 갖춰 공기저항 계수(Cd)가 0.32에 불과하다. 이는 몇 년 전까지 승용차에서나 볼 수 있던 숫자다.

실내는 고급과 첨단이라는 두 단어가 곳곳에서 뚝뚝 떨어진다. 운전대 너머 계기판은 물론 중앙의 센터패시아와 그 아래까지 모두 고해상도 전자식 모니터가 있다. 센터패시아를 터치 프로 디스플레이라고 부르는데, 두 개의 10인치 모니터 중 위쪽은 오디오와 스마트폰·내비게이션 등 인포테인먼트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아래쪽은 공조장치와 시트·주행성능을 바꿀 수 있는 기능으로 나뉘어 있다. 그래픽이 뛰어나고 다양한 기능을 품어 화려한 맛은 있으나 직관적이지는 않다. 대신 아래 화면 좌우에 있는 두 개의 로터리 방식 스위치가 각각의 기능을 조절할 때마다 다른 역할을 한다. 공조장치를 조절할 때는 온도를, 시트 조절에서는 열선·통풍 온도를 맞출 수 있다. 지형 반응 시스템은 다양한 기능을 통해 다이내믹과 에코·컴포트 같은 포장도로에서의 주행은 물론 눈·흙, 진흙·숲길, 모랫길 등 비포장도로에서도 최적의 주행성능을 발휘한다.

손이 닿는 모든 부분을 부드러운 가죽으로 덮었다. 영국 브랜드를 내세우고자 국기인 유니언 잭이 시트와 도어 스피커 커버에 새겨져 있다. 운전대 열선은 물론 앞 시트에는 안마 기능까지 있어 피로를 풀 수도 있다. 2열 시트의 엉덩이 부분은 스위치를 누르면 앞뒤로 움직이므로 더 편한 자세로 쉴 수 있다.

건장한 어른 4명이 타도 부족할 것 없는 공간이고, 파노라마 선루프는 크게 열려 개방감을 더한다. 트렁크는 골프백 4개 정도는 거뜬하게 실을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좌우 벽면이 잘 정리돼 있다.


레인지로버 벨라의 내부 디자인. 사진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벨라의 내부 디자인. 사진 랜드로버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주행 돋보여

달리기엔 묘한 맛이 있다. 독일 차의 단단함에 영국 차 특유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굽은 국도의 언덕을 올라갈 때, 꺾인 길에 맞춰 운전대를 돌리면 좌우 기울어짐이 거의 없다. 과속 방지턱에서는 충격을 걸러내 부드럽게 넘어간다. 차고 조절은 물론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빠르게 조절하는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다.

주행 모드 변경에 따라 컴포트와 다이내믹의 차이가 큰 것은 랜드로버 브랜드에서 나온 차 중에서 새로운 변화다. 온로드에서의 주행성을 좀 더 신경 썼다는 의미다. 21인치의 큰 휠에 끼워진 타이어는 사계절용인데, 고성능을 위해 여름용을 쓰지 않은 것은 비포장도로까지 고민한 랜드로버의 선택일 것이다.

엔진 출력은 넉넉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V6 3.0L 트윈 터보차저 엔진은 300마력의 힘을 아낌없이 도로에 쏟아낸다. 최고시속 241k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6.5초다.

그럼에도 공인 복합 연비는 1ℓ당 12.8km로 국산 2.0L 중형 디젤 SUV보다 좋다. 디젤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소음이 잘 억제돼 있지만 연비를 높이기 위해 정차 시 자동으로 엔진 시동을 끄는 스톱 스타트가 작동할 때 진동이 생각보다 큰 것은 단점이다.

벨라는 사각지대 감지, 차선 유지 보조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첨단 운전자보조기능(ADAS)이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 직렬 4기통 2.0L 디젤 엔진을 얹은 D240은 9850만원부터 시작하고, V6 3.0L 디젤 엔진을 얹은 D300은 1억1530만원, V6 3.0L 380마력 수퍼차저 가솔린 엔진을 얹은 P380 모델은 1억1610만원부터 시작한다. 모델마다 S, SE, HSE 등 등급이 나뉘고 사양이 달라진다.


▒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컨설턴트


Plus Point

뿌리 깊은 이름, 벨라

레인지로버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벨라의 이름은 유서가 깊다. 1970년 첫 레인지로버 모델이 나왔는데, 이전까지 랜드로버 차는 2.3L 4기통 가솔린·디젤 엔진뿐이었다. 좀 더 고급스러운 SUV를 개발하기 위해 8기통 엔진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만든 첫 프로토 타입의 이름이 벨라였다. VELAR라는 영문은 ‘V Eight(8) LAnd Rover’에서 유래한 것으로, ‘8기통 엔진을 얹은 랜드로버’라는 뜻이다. 실제 차를 만들어 도로 테스트를 할 때, 레인지로버라는 이름 대신 보닛 끝에 벨라를 붙이고 다녔다. 뭔가 여성스러운 이름이지만 막상 알고 보면 꽤나 고성능(?)을 상징하는 이름이 벨라이기에 현재 모델에도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