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Red Ink’ 속 한 남자와 거북이. 남자는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거북이는 모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사진 김진영
사진집 ‘Red Ink’ 속 한 남자와 거북이. 남자는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거북이는 모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사진 김진영

소셜미디어에서 ‘North Korea’를 검색해보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북한을 방문해 찍은 다양한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북한 여행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언급이 곧잘 등장한다.

북한은 특히 저널리스트에 대해 엄격하다. 저널리스트는 정부가 지정한 가이드, 운전자와 항상 함께 다녀야 하고 식사도 함께 해야 하며 정해진 동선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때문에 외신에 보도되는 북한 사진에선 빈곤과 같은 북한의 부정적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접하는 북한의 사진은 대부분 북한의 지침을 통과한 사진들이다.

2017년 평양을 방문한 벨기에 사진가 막스 핀커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흘간의 일정 동안 그 역시 미리 짜여진 동선대로만 북한을 찍고 돌아와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북한 사진들로 2018년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에서 수상했고 지난달 ‘레드 잉크(Red Ink)’라는 사진집까지 발간했다.

레드 잉크를 한장 한장 넘기다 보면 DMZ, 박물관, 수족관, 학교, 식당, 호텔 등 몇 가지 장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막스 핀커스에 따르면 북한은 특히 수많은 박물관을 보여주려 했는데, 카메라를 든 자신을 최대한 거리에 못 나가게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을 보는 것은 오늘은 이 박물관, 내일은 저 박물관을 정해진 대로 다녀야 했던 막스 핀커스의 경험과 유사한 것일지 모른다.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들은 대체로 어떤 대상을 찍은 것인지, 즉 사진의 지시대상(referent)이 분명해보인다. 사진이론에서 사진의 지시대상 혹은 지시체란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교복을 입은 사람이 담긴 사진의 지시대상은 학생이고 군복을 입은 사람이 담긴 사진의 지시대상은 군인이다. 그런데 사진의 지시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알아봄’이 어긋난 사진이 있었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자 왼쪽에는 돋보기를 들고 유리 조각 같은 것을 들여다 보는 남자의 사진이, 오른쪽에는 박물관에 박제돼 있는 듯한 거북이의 사진이 배치돼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 사진들을 ‘제대로’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다만 남자가 뭘 하는 중인지가 궁금해 막스에게 직접 물었더니 뜻밖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왼쪽의 남자는 실제 사람이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된 디오라마(실물과 똑같은 축소 모형) 속에 재현돼 있던 가짜 사람이었고, 진짜인 쪽, 그러니까 살아있는 쪽은 오른쪽의 거북이였던 것이다. 이 두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사진의 지시대상을 쉽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흔드는 사진이자, 어쩌면 이 사진집에는 이 두 사진 외에도 내가 잘못 알아본 사진들이 더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진이었다.

박제된 인간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살아 있는 거북이가 모형처럼 보이는 이 같은 교란은 막스 핀커스가 택한 기술적 차원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그는 북한에서의 작업에서 한 가지 일관된 전략을 세웠는데, 그것은 스튜디오에서 모델이나 제품을 두고 찍을 때 사용하는 큰 광량의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플래시가 터지면서 찍힌 진짜와 가짜는 차이가 모호해지고 유사한 외형을 갖게 된다.


사진집 ‘Red Ink’. 사진 김진영
사진집 ‘Red Ink’. 사진 김진영

진실과 거짓 차이 없애는 플래시

플래시는 한 가지 더 큰 효과가 있다. 그것은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힌 사진이 그러하듯, 이 사진들이 모두 연출된 무대 위 장면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플래시로 인해 사진 속 북한 사람들의 등 뒤를 따라다니는 짙은 그림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이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것은 바로 인위성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실제 대상에 최대한 근접해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포착하고자 한다. 하지만 북한에서처럼 오로지 표면만을 보도록 전제돼어 있는 상황에서라면, 다큐멘터리 사진은 종래와 다른 방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막스 핀커스는 묻는다. 그는 말한다. “나는 배후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과감한 인공 조명을 사용해 국가 선전과 광고에 미학을 적용했다.” 막스 핀커스의 작업은 현실을 담아낼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레드 잉크는 북한에 관한 작업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사진 자체에 관한 질문이자 대답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담아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현실에 다가설 수 없다면, 바로 그 불가능성을 기록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책의 뒷날개에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글이 짧게 수록돼 있는데 막스 핀커스는 여기에서 제목 ‘붉은 잉크’를 가져와 붙였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구동독의 오래된 농담이 있다. 한 노동자가 시베리아에 파견돼 일자리를 얻었는데, 그는 자신이 보내는 모든 우편물을 검열관이 읽을 것임을 알고는 친구에게 말했다. “암호를 정해 두자. 만일 내가 파란 잉크로 편지를 써 보낸다면, 그 내용은 사실이야. 만일 붉은 잉크라면 거짓일테고.” 한 달 후, 그의 친구는 푸른 잉크로 쓰인 첫 번째 편지를 받았다. 여기는 모든 것이 굉장해. 가게들이 가득 차 있고, 음식은 풍부하고, 아파트는 크고 적당히 따뜻해. (중략) 다만 얻을 수 없는 단 하나는 바로 붉은 잉크야.’

만약 이 편지에서 붉은 잉크가 없다는 언급이 없다면, 노동자는 푸른 잉크로 쓰여진 내용대로 시베리아에서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붉은 잉크가 없다는 서술은 편지의 내용을 다음의 해석으로 이끈다. 푸른 잉크로 쓰여진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쓰여진 거짓일지 모른다는 것. 암호 자체에 대한 언급을 암호화된 메시지 안에 기입함으로써, 노동자는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실을 알릴 수 있게 된다.

막스 핀커스의 상황은 이와 유사하다. 북한 정부의 감시하에 사진을 찍어야 하는 그에게는 무엇이 거짓인지 드러낼 붉은 잉크가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았다. 노동자가 푸른 잉크로 붉은 잉크가 없음을 말한 것처럼, 막스 핀커스는 플래시를 터트려 사진을 찍음으로써 사진 속에 메시지를 기입한 것이다. 당신이 보는 이 사진들은 북한의 진실보다 거짓에 가깝거나 혹은 진실과 거짓 그 사이 어딘가일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북한에 관한 ‘진실’이라고 말이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