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는 겸허와 끝없는 궁금함으로, 조심조심 서성이는 눈길로, 더듬어가는 손짓으로 당신의 매뉴얼을 읽고자 했다.
한없는 겸허와 끝없는 궁금함으로, 조심조심 서성이는 눈길로, 더듬어가는 손짓으로 당신의 매뉴얼을 읽고자 했다.

숨기고 싶은 흑역사 중에 모 가수를 좋아했던 일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고 나름 심각했다. 새해 첫날 꿈에 나오는 남자와 장차 결혼하게 된다는 허무맹랑한 글을 모 스포츠 신문에서 접하고 전날부터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그를 생각하기도 했다. 꿈에 그와 닮은 남자가 나오기는 했는데, 정확히 그 사람이라는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를 좋아해서 한 일은 다른 친구들처럼 팬레터를 보내거나 하는 일은 아니었다. 초라한 내 존재를 드러내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나는 한창 빠져있던 연필 드로잉으로 그의 얼굴을 그리고 또 그렸다. 자꾸 낯설어지는 그의 얼굴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얼굴에 어떻게든 익숙해지고 싶었다. 자꾸 보고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니, 그를 보지 않고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민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이 강렬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턱없이 부족한 경험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사랑에 관한 수많은 책을, 오직 그를 생각하며 읽었다. 수많은 매혹적인 이야기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어느새 그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를 더 이상 떠올리지 않게 되었고 중학교 3학년 생활을 시작했다.

버스에서 만난 남학생에게 호감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이야기는 시시하게 끝이 났다. 실질적인 연애를 시작한 건 대학 입학 이후였고 그 후 몇 차례의 연애를 거쳤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의 봄, 지중해 연안에서 마주친 남자와 사랑에 빠져 3개월 만에 결혼했다.

운전을 시작한 것은, 남들보다 다소 늦은 서른이 되기 직전이었다. 아이를 임신하고서야 운전 면허를 땄다. 차를 몰기 전에 새 차의 두꺼운 매뉴얼을 정독하는 내 모습을 두고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친구는 웃음을 터뜨렸다. 누군가에게는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디서든 비슷한 습관을 반복했다.

연애든 운전이든 매뉴얼이 필요했다. 만일 사람마다 각자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궁금한 모든 이의 매뉴얼을 정독했을 게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아마도 그 사람의 매뉴얼이 닳고 또 닳을 때까지 읽기를 거듭했을 게다. 안타깝게도 사람에게는 매뉴얼이 없고 나는 대신 그들이 쓴 글을 읽었다. 혼자만의 서툴지만 성실한 글, 정직한 글을.

첫사랑을 만나고 데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일기장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나를 만나기 전까지의 일기장을 가지고 왔다. 덜컹거리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불안과 부끄러움과 뿌듯함에 어쩔 줄 모르는 남자를 옆에 두고 그를 읽었다.

때로 웃음을 터뜨리고 그를 놀리고 그러다 안아 주면서. 당신은 그랬구나, 그때 나는 이랬는데, 우리는 이렇게 어긋나다 드디어 만났구나, 더 일찍이 아니라서 슬프지만 이제라도 만나서 참 다행이야. 만일 그에게 그만큼의 수북한 일기장 꾸러미가 없었더라면 그토록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질 수 없었을 게다.


은밀하고 매혹적인 당신의 글들

한 사람을 읽는 일은 나를 어김없이 사로잡았다. 단, 그 글이 은밀하고 매혹적인 경우에만 한해서. 읽을거리를 주는 남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서툴지만 아름답고 강렬한 글을 쓸 수 있는 남자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만약 그 글의 송신인이 공공연히 나를 수신자로 삼지 않으나 내게는 명백해 보이는 경우, 그 은밀함은 짜릿하기도 했다. 학과의 공동 노트에 올라온, 나만이 풀 수 있는 암호 같은 글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첫사랑 이후에 한바탕 빠져들었던 남자는, 곳곳에 메모를 남겨두는 사람이었다. 그의 집 가득한 책 귀퉁이마다 적혀있던 글들을 따라 읽으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곳곳에 그에 관한 혹은 그가 쓴 읽을거리가 넘쳤다. 그의 글들을 반복해서 읽었고 나지막이 탄성을 내지르고는 했다. 그의 생각이, 문장이, 활자가 페이지를 메우는 광경마저 아름다워 한숨을 쉬곤 했다.

그와의 연애는 배움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는 나에게 한 도시의 핏줄처럼 나있는 산책로를 무수히 가르쳤다. 그는 종종 헤어진 뒤에도 나의 뒤를 밟았다. 거리의 한복판, 돌연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속삭이거나 버스를 탄 나를 뒤늦게 따라잡기도 했다. 헤어진 뒤에도 서로를 떠나는 게 아쉬워, 내가 한쪽 인도를 걸을 때 그는 맞은편 인도를 따라 걷는 일도 있었다.

그는 종종 나의 깊은 감정의 골을 모조리 헤아리고 싶다고 말했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머리칼처럼 느낄 수 있기를, 일일이 셀 수는 없지만 손가락으로 쓰다듬듯 더듬을 수 있기를 꿈꾸었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을 빼고 할 수 있는 고백은 모조리 했다. 그럼에도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는 이야기마저 하지 못했다. 뒷걸음치다 빠져버린 사랑이 그때는 부끄러웠다.

그의 곁에서 잠들고 눈을 뜨는 날들이 반복됐음에도, 은밀히 흔적을 밟는 일에 중독이 되어, 따라나선 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밤길은 어느덧 끝이 나고 달빛에 빛나던 조약돌도 어둠의 그늘 속 존재가 지워졌다. 눈앞에 보이는 흔적이 한꺼번에 사라졌음을 알았을 때, 더 이상 나갈 곳이 보이지 않아 무너질 듯 멈춰 있을 때, 어리둥절한 시간이 지나고 날이 밝아 있었다. 밤은 부드러웠으나 머물지 않았고 나는 걸었으나 닿을 수 없었다.

“밤은 부드러워라. 때마침 달의 여왕은 옥좌에 올라있고 별의 아가씨들은 그녀를 둘러쌌구나. 그러나 이곳엔 빛이 없어라. 다만 어스름이 있을 뿐. 신록의 짙음과 이끼 낀 길을 따라 부는 바람과 함께.” - 존 키이츠 ‘나이팅게일에게 부치는 송가’ 중

다정한 영혼은 조금씩 불안을 품고 있다. 물 위를 흔들흔들 떠다니듯 다정한 물결 같은 부드러움은 불안을 안고 있다. 불안을 알지 못하면 다정함에 이를 수 없다. 도무지 닿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언젠가는 헤아릴 수 있으리라는 바람으로 꽉 찬, 출렁이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상대를 향해 나있는 길의 지도를 우리는 찾고자 했다.

한없는 겸허와 끝없는 궁금함으로, 조심조심 서성이는 눈길로, 더듬어가는 손짓으로 당신의 매뉴얼을 읽고자 했다. 내가 덜 상처받고 늦기 전에 빠져나갈 출구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닌, 당신이란 밤, 당신이란 우주, 당신이란 세계가 작동하는 환희에 좀 더 가까워지고 싶던 나날이었다.

두껍고 부드러운 어둠과 어스름 밤빛으로 길을 내던 그날들은 지나갔다. 이제는 안다. 그 모든 어둠이 얼마나 포근했는지, 그 무수한 밤의 빛들이 그 덕분에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길을 내려 다가가는 모든 어둠의 다정함이 어우러져 가능했음을.


▒ 이서희
서울대 법대를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가 영화학교 ESEC 졸업, 파리3대학 영화과 석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