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홍은주 옮김|문학동네
342쪽|1만4000원

무라카미 하루키가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일이다. 산문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무라카미는 “고양이를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꽤 많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이십 년 넘게 산 고양이는 한 마리뿐이었다”면서 장수 고양이를 소개했다.

무심코 읽으면 20년 넘게 키운 고양이도 있었다는 얘기 같지만, 다시 읽어 보니 ‘이십 년 넘게 산’ 고양이에 대한 추억이었다. “이 고양이는 올해 2월 드디어 스물한 살이 되어 기록을 경신 중이지만 지금은 우리 집에서 기르지 않는다”라는 것. 무라카미가 소설가가 되기 전,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재즈 카페를 운영한 젊은 시절에 키운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다.

“약 9년 전 일본을 떠나며 당분간 고양이를 못 기를 사정이라. 당시 고단샤 출판부장이던 도쿠시마 댁에 맡겼다. 실은 ‘장편을 하나 써드릴 테니까 부디 이 아이 좀 부탁합니다’ 하고 떠안기다시피 했더랬다. 그래도 그때 ‘고양이와 교환’해서 쓴 장편이 결과적으로 내 책 중에 제일 많이 팔린 ‘노르웨이의 숲’이니, 녀석을 ‘복덩이 고양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 고양이 이름은 ‘뮤즈’라고 한다. 시의 여신을 가리키는 이름이니, 작가의 애완동물에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젊은 무라카미는 카페 영업을 끝낸 뒤 고양이 ‘뮤즈’를 무릎에 앉혀놓고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소설을 써나갔다고 한다. 고양이가 애써 채워놓은 원고지를 짓밟아 놓은 적도 있다.

아무튼 작가 무라카미의 탄생을 지켜본 고양이다. 게다가 소설 ‘노르웨이의 숲’ 창작에도 에둘러 기여를 한 셈이니, 산문집의 제목이 될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이 책에 고양이만 있는 건 아니다. 마라톤, 여행, 맥주, 온천 등등 무라카미의 소소한 일상이 담겼다.

아무튼 무라카미는 인기 작가가 됐지만, 고양이를 되찾아 기르지 않았다. 그는 때때로 고양이를 맡긴 집에 찾아갔다고 한다. “마치 사연이 있어 헤어졌던 옛 연인과 우연히 재회한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지는 평화로운 2월 오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고양이는 옛 연인은커녕 옛 주인의 얼굴을 잊어 먹어버렸다. “주인 얼굴 따위는 곧바로 잊어버리는 게 고양이고, 뭐 그게 고양이의 장점이다”라면서 글을 마쳤으니 말이다. 책 뒤에 실린 글을 보니, 고양이 뮤즈는 장수를 누린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무라카미가 생후 6개월이 지난 새끼 고양이 뮤즈를 처음 만났을 때 고작 26세였고, 둘은 우리 기쁜 젊은 날을 함께 보낸 사이다. 작가가 영원히 풀지 못한 고양이의 비밀은 이러했다.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고양이니 인간이니 하는 구분을 넘어선 마음의 교류였다. (중략) 물론 한 가족으로 사이좋게 같이 살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것이 한 겹 끼어 있었다. 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 ‘나는 고양이, 당신들은 인간’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특히 이 고양이는 머리가 좋은 만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면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