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아트리오(Atrio)’ 내부. 사진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아트리오(Atrio)’ 내부. 사진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집, 고향, 엄마를 떠오르게 하는 음식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에게나 있다.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콩 수프(bean soup)’가 그런 음식이다. 파지올리(fagioli)라고 부르는 흰강낭콩을 고기 완자, 셀러리, 파스타 등과 함께 토마토 야채 육수에 푹 끓인 콩 수프는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흔히 먹는 이탈리아 가정식이다. 흰강낭콩 대신 체치(ceci)라고 부르는 병아리콩을 넣기도 한다. 수프라고는 하지만 스튜처럼 진한 국물이 한국의 찌개와 비슷해 우리 입에도 잘 맞는다. 하지만 너무 소박한 가정식이라서 그런지 국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파는 곳을 찾기 힘들다.

이 이탈리아식 콩 수프를 얼마 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서울호텔 ‘아트리오(Atrio)’에서 발견했다. 그것도 파지올리와 체치 콩 수프 두 가지나 있다. 체치 콩 수프는 고정 메뉴로 들어가 있고, 파지올리 콩 수프는 11월 말까지 한정 판매 중이다. ‘트라토리아(trattoria)’를 표방하는 식당답다. 트라토리아는 레스토랑보다 소박한 분위기에서 가정식에 가까운 편안한 음식을 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외식 업장을 말한다.

아트리오는 높은 층고와 통유리창 덕분에 밝고 탁 트인 데다 모던한 인테리어 덕분에 고급 레스토랑처럼 보이지만, 음식은 트라토리아 스타일에 충실하다. 콘래드 총주방장 다비데 카르델리니가 이탈리아인이다 보니 타협하지 않고 본토 맛을 지켜내는 듯하다.

‘펜넬 오렌지 송어 샐러드’도 국내에서 찾기 힘든 이탈리아 가정식 중 하나다. 양파를 옆으로 살짝 누른 듯 둥글넓적한 펜넬 뿌리를 가늘게 썰어서 오렌지와 함께 올리브오일에 버무리기만 하면 되는 샐러드다. 요리하기 간단하면서도 펜넬의 아삭아삭한 식감과 감초·팔각 등 달큼한 향신료 냄새가 새콤달콤한 오렌지와 잘 어울린다.


아트리오의 콩 수프. 사진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아트리오의 콩 수프. 사진 김성윤 조선일보 기자
아트리오의 양갈비구이. 사진 콘래드서울호텔
아트리오의 양갈비구이. 사진 콘래드서울호텔

아트리오에서는 훈제 송어 몇 점을 올려서 낸다. 펜넬과 오렌지만으로 팔려니 너무 소박해서일까. 개인적으로는 송어를 올리지 않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 샐러드를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파스타 중에서는 ‘카펠라치’와 ‘단호박 뇨키’가 눈에 띈다. 작은 정사각형 모양 파스타에 와인에 졸인 소고기와 건포도를 넣어 삼각형 모양 모자처럼 빚은 카펠라치 파스타에 완두콩과 크림소스를 뿌려 낸다. 묵직한 소고기에 건포도 단맛이 더해져 한국의 갈비찜과 비슷한 맛이다. 고소한 크림소스, 풋풋한 완두콩과 묘한 맛의 조화를 이룬다. 단호박과 감자를 으깨 섞어 손가락 마디 크기로 잘라서 데치고 크림소스를 끼얹은 뇨키도 이탈리아 가정이나 트라토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찾기 힘든 파스타다. 피자는 테두리 크러스트가 유난히 통통하지만, 가운데는 얇다. 요즘 이탈리아에서는 이러한 식으로 피자를 만드는 게 트렌드다. 크러스트는 쫄깃하고 가운데는 바삭한 두 가지 식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메인요리 중에서는 특별히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건 없다. 호텔 관계자는 “양갈비구이가 잘 나간다”고 했다. 호주에서 냉장 운송한 어린 양고기는 누린내 없이 연하다. 한우 안심 스테이크 등 소고기도 한국 손님들에게 인기 높다. 메인에 곁들여 주문할 수 있는 엔다이브 샐러드, 오븐 감자 구이, 구운 계절 채소, 볶은 브로콜리 등은 전형적인 트라토리아 사이드디시다.

디저트 중에서는 티라미수를 추천한다. 한국에서 워낙 인기가 높아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티라미수지만, 이곳의 티라미수는 특히 원형에 충실하다. 이탈리아말로 사보이아르디(Savoiardi), 영어로 레이디핑거(Ladyfinger)라 부르는 손가락 모양의 케이크처럼 폭신한 과자를 사용한다. 움푹한 팬에 커피에 적신 사보이아르디를 깔고 달걀노른자, 마스카르포네 치즈로 덮고 코코아 가루를 뿌려야 ‘진짜’ 티라미수인데, 사보이아르디보다 구하기 편한 스펀지케이크를 대신 사용해 접시에 우뚝 설 수 있도록 만든 변형된 티라미수가 국내에는 더 흔하다. 한국 손님이 그다지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 쉽지 않겠지만, 이탈리아 본토의 맛을 꿋꿋이 지켜내기를 응원한다.


아트리오(Atrio) ★★

주소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0 콘래드서울호텔 2층, (02)6137-7000

분위기 밝고 쾌적하고 세련됐다. 비즈니스 파트너건 연인이건 누구를 모시건 반길 듯하다.

서비스 특급호텔답게 스태프가 잘 훈련됐으나 인력이 부족한지 바쁜 점심시간에는 음식이 더디게 나오고 직원을 부르기도 힘들다.

추천 메뉴 모둠 애피타이저 3만7000원, 펜넬 오렌지 송어 샐러드 1만9000원, 체치 콩 수프 1만5000원, 마리나라 피자 2만4000원, 마르게리타 피자 2만6000원,  버섯 리소토 2만7000원, 카펠라치 파스타 2만9000원, 단호박 뇨키 2만5000원, 봉골레 스파게티 2만9000원, 와규 소고기 스테이크 4만5000원(호주산 200g), 양갈비구이 3만9000원(호주산 230g), 한우 안심 스테이크 5만9000원(150g), 광어구이 3만3000원, 티라미수, 메링가타 알 리모네, 판나코타 등 디저트 각 1만2000원.

음료 스파클링 와인이나 탄산수에 아페롤· 캄파리 등 리큐르를 섞은 스프리츠(Spritz)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이지만, 어쩐 일인지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스프리츠도 아트리오에서 1만5000원에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산 위주로 구성된 와인 리스트는 스파클링 6종, 화이트 6종, 레드 11종으로 단출한 편이다. 잔으로 파는 글래스와인은 스파클링 2종, 화이트 2종, 로제 1종, 레드 2종, 스위트 1종이 1만6000~2만7000원. 맥주는 수입산 7종과 국내산 2종이 있다.

영업시간 점심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저녁 오후 6시~10시 30분. 연중무휴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 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좋음

★ 괜찮은 식당
★★ 뛰어난 식당
★★★ 흠잡을 곳 없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