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클라우스가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 4번홀(130야드)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뒤 갤러리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 AP뉴시스
잭 니클라우스가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마스터스 파3 콘테스트 4번홀(130야드)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뒤 갤러리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 AP뉴시스

골프에서 처음 친 공이 홀에 들어가는 홀인원은 대단한 행운으로 통한다. 그만큼 확률이 낮다. 파3홀에서 투어프로들은 3000분의 1, 일반 골퍼들은 1만2000분의 1 확률로 알려져 있다. ‘홀인원 하면 3년간 행운이 따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진귀한 대접을 받는다. 

역대 최대 규모(34개 대회, 총상금 319억원)로 열리는 2022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두 대회 연속 홀인원이 터져 축제 분위기를 더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제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개막전 롯데렌터카 여자오픈 2라운드(4월 8일)에서 인주연(25)이 14번홀(파3·147야드)에서 8번 아이언으로 홀인원을 잡았다. 인주연은 3년 연속 홀인원이란 진기록도 세웠다. 2017~2019년 3년 연속 홀인원을 기록했던 조윤지(31)에 이어 KLPGA 사상 두 번째다. 시즌 두 번째 대회로 올해 신설된 메디힐·한국일보 챔피언십에서는 4월 17일 대회가 막을 내릴 때까지 나흘간 대회장인 경기도 여주시의 페럼클럽(파72)에서 한 대회 최다 홀인원 타이기록인 5개의 ‘축포’가 터졌다. 한진선(25)이 1라운드 3번홀, 김재희(21)가 1라운드 16번홀, 강예린(28)이 2라운드 3번홀, 김리안(23)이 4라운드 8번홀, 권서연(21)이 4라운드 8번홀에서 각각 홀인원을 기록했다. 김리안은 이번 홀인원으로 KLPGA 통산 최다 홀인원(4차례)의 주인공이 됐다. 2009년 제주 서귀포시 더 클래식 골프장(파72)에서 열린 넵스 마스터피스 대회에서 5개의 홀인원이 나왔고, 13년 만의 타이기록이다. 

이쯤 되면 홀인원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법하다. 그리고 3년 연속 홀인원을 하는 선수가 나오는 것을 보면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선수가 홀인원을 할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닌가 하는 궁금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특정한 골프장에서 홀인원이 나올 가능성이 큰 건 아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 천국인 홀인원 세계로 빠져보자.

김재희. 사진 KLPGA
김재희. 사진 KLPGA
서하경. 사진 KLPGA
서하경. 사진 KLPGA

홀인원 후 이듬해 PGA투어 우승한 최경주

몇 년 전 골프계를 떠들썩하게 한 ‘홀인원 실험’이 있었다. 유럽투어가 프로골퍼의 홀인원 확률은 2500분의 1이라는 주장을 하며 유명 프로골퍼를 내세워 직접 실험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2017년 10월 에도아르도 몰리나리(이탈리아)가 첫 번째 주자로 나섰다. 그는 500번 샷을 했지만 애만 태우다 실패했다. 2018년 11월 브랜든 스톤(남아공) 역시 500번의 기회가 주어졌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세 번째 주자로 나선 앤디 설리번(잉글랜드)이 결국 런던 골프클럽 헤리티지 코스의 171야드로 조성된 11번홀(파3)에서 230번째 샷 만에 성공했다. 앞선 두 사람의 도전까지 합하면 1230번의 샷 끝에 홀인원을 성공한 셈이다. 로봇의 세계에선 더욱 싱거운 결말이 나왔다. 2016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피닉스오픈 프로암 때 골프 로봇 엘드릭(LDRIC)은 애리조나주 TPC 스코츠데일의 16번홀(파3·170야드)에서 5번째 샷 만에 홀인원에 성공했다.

파3홀에서 티샷은 대부분 아이언으로 한다. 아이언 샷이 뛰어난 선수가 홀인원 확률도 높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 않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역사상 아이언 샷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공의 높이와 좌우로 휘는 정도를 달리하는 9가지 구질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원하는 곳에 공을 떨어뜨리는 능력이 월등하다. 그런데 공식 대회 우즈의 홀인원 기록은 겨우 3차례다. 82승으로 PGA투어 통산 최다 우승 타이기록을 가진 그의 기록이 이렇다면 홀인원과 골프 실력의 함수관계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연습 라운드와 친선 라운드에서 나온 홀인원까지 모두 따지면 우즈는 18차례 홀인원을 기록했다. 우승컵과 엄청난 상금이 걸린 대회일수록 선수들은 먼저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핀을 직접 공략하다 타수를 잃을 수 있는 곳에서는 먼저 파를 지키기 쉬운 곳을 조준한다. 이렇게 플레이하면 홀인원 확률은 뚝 떨어지게 된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인 최다승(25승)을 기록한 박세리는 딱 한 번 공식 대회 홀인원을 했고, 한국인 두 번째로 우승이 많은 21승의 박인비는 LPGA투어에서는 아직 홀인원이 없다. 

PGA투어 홀인원 최다 기록은 로버트 앨런비(호주)와 할 서튼(미국)이 나란히 기록한 10차례다.

홀인원하기 좋은 홀과 그렇지 않은 홀은 입지 조건이 확연히 다르다. 매년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코스 17번홀(파3·137야드)처럼 그린이 거북 등처럼 솟아 있고 바람을 예측하기 힘든 곳은 홀을 직접 공략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린에 공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파3홀로 꼽히는 이 홀은 사방이 연못으로 둘러싸인 아일랜드 홀이다. 길이가 137야드에 불과해 대개 웨지나 쇼트아이언으로 공략하는데도 매년 프로골퍼와 주말골퍼의 공 12만 개가 물에 빠진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이 코스에서 열리기 시작한 1982년 이래 40차례 대회에서 17번홀 홀인원은 고작 10번에 불과하다.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아멘 코너’ 한복판에 있는 12번홀(파3·155야드)은 땅콩을 옆으로 뉘어놓은 형태다. 그린 앞뒤 폭이 좁은 데다 그린 앞은 실개천, 그린 뒤는 벙커와 덤불로 무장했다. 오거스타 내셔널 12번홀도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수시로 바뀐다. 올해 86회 대회를 치르기까지 마스터스 12번홀에서 나온 홀인원은 33차례였다. 

홀인원이 많이 나오는 홀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거리가 짧고 위에서 홀을 내려다보며 공략할 수 있고, 그린 가운데가 오목하거나 그린 뒤가 서서히 높아지는 경사지인 곳, 그린이 앞뒤로 길쭉한 모양인 곳이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곳도 홀인원 확률을 높인다. 

파3홀에서 단숨에 2타를 줄여주는 홀인원은 그 자체로 큰 이득이다. 게다가 파3홀에 자동차 등 대박 경품을 거는 대회가 늘고 있다. 2015년 KLPGA투어 BMW 레이디스챔피언십 4라운드 12번홀(파3·177야드)에서 5번 아이언으로 홀인원 했던 서하경은 부상으로 2억원 상당의 스포츠카 ‘BMW i8’의 주인이 됐다. 웬만한 대회 우승 상금의 곱절이다. 

올해 메디힐·한국일보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홀인원을 한 김재희는 1억2000만원 상당의 마세라티 기블리 GT 하이브리드 차량을 경품으로 받았다. 그의 소감이 걸작이었다. “사실 뒤땅을 쳤는데 홀인원으로 연결됐다”고 했다. 경품이 걸리지 않은 홀에서 홀인원 한 골퍼는 박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홀인원을 하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첫승을 거두거나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이 많아 3년 행운이 따른다는 속설이 과장만은 아니다.

김지현은 2016년 5월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첫 홀인원을 하고는 3년 동안 5차례 우승했다. ‘탱크’ 최경주는 2001년 5월 미국 PGA투어 컴팩클래식에서 홀인원을 하고 1년 뒤 같은 대회에서 한국인 첫 PGA투어 우승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