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테드 창의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 김상훈 옮김 | 엘리
1만4500원 | 448쪽

요즘 전 세계 과학소설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국계 미국 작가 테드 창의 단편 소설집이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테드 창의 소설을 ‘영혼(靈魂)이 담긴 SF’라고 했다. 최근 개봉된 미국 영화 ‘컨택트’는 이 책에 실린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긴 것이다.

테드 창은 미국 브라운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1990년 SF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껏 중·단편 15편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내로라하는 SF 문학상을 휩쓸었다. 그의 소설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릴 정도로 과학성을 평가받고 있다.

영화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도착)’이지만, 수입사가 외계인과 지구인의 ‘컨택트’로 바꿨다고 한다. 원제 ‘도착’은 외계인의 지구 방문을 뜻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물론 원작 소설의 제목과도 다르지만, 그것은 원작자의 주제 의식을 나름대로 해석한 결과다. 원작 소설은 솔직히 머리를 좀 아프게 한다. 우주론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와 운명론의 조화를 추구한다. 미래의 행복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낱낱이 이어진 현재를 거듭된 행복으로 채우려는 삶의 태도를 제시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도 새 생명이 도착하고, 동시에 깨달음이 도착하기도 한다.


외계인 언어 배워 인간의 사고 넘어서

단편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영화화하면서 세부적으로 적지 않게 변형됐다. 하지만 언어학자가 외계인을 만나서 그 언어를 배워 소통한다는 기본 설정은 변함이 없다. 테드 창은 외계인의 언어가 지구인의 언어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체계를 지녔다고 상상하면서 인간 사고의 틀을 뒤흔들려 했다. 지구인의 언어는 어순에 따라 순차적이고, 인과론적이고,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다. 이 소설에서 외계인의 언어는 소리 언어와 문자 언어가 달랐고, 어순이 없고, 상형문자도 아니고, 한 문자가 스스로 약간씩 변형되면서 접두사나 접미사를 달고 꾸물거린다. 소설의 언어학자는 외계인의 언어를 익히면서 지구인이 생각하지 못했던 물질관과 시간관까지 배우게 된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외계인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지구인이 기존 사고의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는 ‘사고 실험(思考 實驗)’이 소설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지구인의 언어는 인과론에 따라 물질과 사건의 진행 과정을 순차적으로 이해하게 하지만, 이 소설에서 외계인의 언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바라보게 한다. 외계인은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는 것이다. 미래도 내다본다는 얘기다.

그런데 과연 당신이 미래의 불행을 미리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운명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고대 그리스 비극은 운명을 거스르려고 했다가, 오히려 그 덫에 걸린 인간의 몰락을 주로 다뤘다. 불행한 운명도 자유의지로 선택해 살아가는 게 현명한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결국 죽어야 하는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SF와 인문학의 지적(知的) 조화를 보여주는 7편의 다른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