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의 추상미술 작품 ‘건초더미’. <사진 : 구글아트앤드컬처>
클로드 모네의 추상미술 작품 ‘건초더미’. <사진 : 구글아트앤드컬처>

햄릿 : 저기 거의 낙타 모양의 구름이 보이는가?
폴리니우스 : 정말 틀림없이 낙타 모양인데요.
햄릿 : 내 생각엔 족제비 같은데.
폴리니우스 : 족제비 등 같군요.
햄릿 : 또는 고래 등 같기도 하고.
폴리니우스 : 정말 고래 같이 보입니다.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추상(抽象)미술은 낙타인지, 족제비인지, 고래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세계를 형상화한 작품을 말한다. 주로 색채, 질감, 선 등 추상적 요소로만 작품을 표현한다. 왜 예술가들은 스스로 설명하기 어렵고 관객이 이해하기는 더욱 난해한 추상미술을 시작했을까.

지난해 11월 16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가 8140만달러(약 920억원)에 팔렸다. 모네의 작품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모네는 이 작품에서 건초더미라는 소재가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빛(색채)을 강조했다.


모네 작품 보고 추상에 눈뜬 칸딘스키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는 이 작품 앞에서 화가가 될 결심을 했고 추상에 눈을 떴다. 칸딘스키는 당시 30세로, 모스크바대학의 법대 교수였다. 그는 이듬해인 1896년 교수직을 버리고 독일 뮌헨으로 가서 화가가 됐다.

예술은 인간의 유희(遊戲)로부터 나왔다. 인간은 귀를 즐겁게 하려고 음악을 하고 눈을 즐겁게 하려고 미술을 한다. 태초 이래 매우 오랫동안, 정말 지루하게도, 인간은 자연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음악으로 치면 새 소리,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 천둥소리 등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자연의 소리만을 흉내 내는 음악을 만들면서 놀았다는 얘기가 된다. 얼마나 단조로운 일인가. 자연의 모방과 재현만으로 음악을 했다면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은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은 왜 음악 같을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서 추상미술의 한 갈래인 칸딘스키의 미술은 출발한다. 그는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저서에서 “색은 영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색은 건반, 눈은 현을 때리는 해머, 영혼은 여러 개의 현이 달린 피아노다.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을 전율케 한다”고 했다.

20세기 초 많은 화가들이 추상미술로 눈을 돌린 것은 과학 문명의 발전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문명사적인 발견은 진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비가시적인 세계, ‘반야심경’의 무한계)나, 의식 밖의 세계(‘반야심경’의 무의식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촉발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은 인간이 인지하는 시공간은 허상일 뿐이라는 깨달음을 주고, 우주는 우리의 상상이 미칠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 거대한 존재라는 좌절을 불러왔다. 여러 물리학자들에 의해 발전돼온 양자역학은 세상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내놓아 고전물리학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증명했다. 아니, 세상의 그 무엇도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빌헬름 뢴트겐은 1895년 ‘뢴트겐선(X선)’이라 불리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를 발견하여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인간은 큰 것은 커서, 작은 것은 작아서 못 본다. 투시력이 없어서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겨우 20세기 들어서다.

1899년 ‘꿈의 해석’을 출간하고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무의식’이라고 주장했다. 이때까지는 의식이 전부인 줄 알았다. 독일의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정신에 대한 신체의 우위, 이성에 대한 감성의 우위를 주장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인(동물적인) 존재라고 했다.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을 같은 차원에 놓음으로써 공공의 적이 됐다.

이와 같은 발견들과 사고의 전환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이후의 철학,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믿었는데, 우리가 ‘아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으며, 잘못 아는 것은 힘이 아니라 족쇄임을 깨달은 것이다. 현대철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사진 : 위키피디아>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사진 : 위키피디아>

무의식 끌어내기 위해 자동기술법 동원

화가들은 모이면 상대성이론과 4차원의 세계, 양자와 우주를 얘기했다. 무의식을 논하고 과학 문명을 얘기했다. 그들이 믿어온 진실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얘기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당시 유행하던 유사 종교인 신지학(神智學·theosophy)에 깊이 빠져들었다. 신지학은 신의 본질은 학문이나 이성이 아니라 신비한 체험이나 계시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무리를 지어 이러한 깨달음을 예술에 반영하는 길을 모색했다.

칸딘스키를 비롯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화가들은 무의식을 끌어내기 위해 자유연상법, 자동기술법을 작품에 활용했다. 자동기술법은 모든 습관적 기법이나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 기법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호안 미로를 거쳐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 앵포르멜(비정형) 화가 장 뒤뷔페에게까지 이어진다.

폴록과 더불어 신지학의 신봉자였던 피터르 몬드리안이 창안한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는 우주와 인간의 합일, 개별 요소들의 평등, 내면과 외면의 통일 같은 신지학의 주장을 따랐다.

러시아의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추상미술을 극단의 형태로 몰고 갔다. ‘검은 사각형’이라는 그의 작품은 흰색 바탕에 까만색의 사각형만 그려 놓았다. 그는 합리주의라는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무(無)화시켰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별로 대단치 않은 동물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허구)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도 여기서 나왔다. 미술에서의 이러한 능력이 겨우 20세기 와서야 발현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