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삶과 소설의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담았다. <사진 : 조선일보 DB>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삶과 소설의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담았다. <사진 : 조선일보 DB>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1만4000원 | 336쪽

요즘 일본에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이 거세다. 그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가 초판만 130만부 찍으며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한다. ‘하루키스트’로 불리는 열성 독자들이 서점 앞에 줄서며 발매를 기다렸을 정도다. 스마트폰이나 게임기의 신제품 출시 때나 일어날 현상이 소설에서도 벌어진 셈이다. 국내에도 적지 않은 ‘하루키스트’들이 퍼져 있기 때문에 여러 출판사들이 저작권 계약 경쟁에 들어가면서 선인세가 20억원까지 뛸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 작가로 손꼽힌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맞히는 도박 사이트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체코의 카프카 문학상이나 덴마크의 안데르센 문학상 등은 이미 받았다. 하지만 그의 문학은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기껏해야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달콤한 타협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에선 비평가들이 ‘무라카미 월드’라 부르는 소설 세계를 놓고 지금껏 여러 차례 찬반 논쟁을 거쳤다고 한다. 무라카미는 공개적으로 대꾸하지 않고 있다가 2015년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출간했다. 한국어판은 이듬해 나왔다. 무라카미는 작가 지망생을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을 통해 소설가로서의 삶과 소설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중 ‘오리지널리티’를 다룬 대목에 ‘무라카미 월드’ 제조 비법의 일부가 들어있다.


마이너스를 지향하는 글쓰기

무라카미는 ‘예술 작품에서 오리지널한 창조성’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뇌신경외과 의사 올리버 색스의 글을 먼저 인용했다. 색스는 문학과 의학을 융합한 글쟁이였다. “창조성이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 기존의 견해를 타파하고 상상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날갯짓하면서 마음속으로 완전한 세계를 수없이 다시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항상 비판적인 내적 시선으로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

그러나 무라카미는 이처럼 심오한 언어로 창조성을 설명하는 것은 자기 방식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는 우선 출발점으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라는 것.

그는 자신을 과장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독자를 가르치려고 할 필요도 없었고, 그저 글쓰기의 즐거움만 느끼며 소설을 썼다. 현학적인 용어나 화려한 미사여구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먼저 영어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외국어로 글을 쓰다 보면 무리한 표현을 찾으려 하지 않고 절로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을 짓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일본어로 옮기면서 살을 붙여 소설을 꾸며갔다. 그러다 보니 ‘숭숭 바람 잘 통하는 심플한 문체’를 구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무라카미는 비틀스의 음악을 창조성의 모델로 삼았다. 비틀스에 대한 미국 신문 기사를 인용하면서 창조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They produced a sound that was fresh, energetic and unmistakably their own(그들이 창조해낸 사운드는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들 자신의 것이었다).”

무라카미는 창조성을 언급하면서 먼저 뇌신경외과 의사의 거창한 문장을 인용했지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는 단순 명쾌하게 비틀스의 음악을 설명한 단문을 제시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쓸 때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를 지향했다. 그의 관념과 상상 또한 그랬다. ‘무라카미 월드’의 성공 비결은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정신에서 비롯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