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낸 장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찬반 논란이 크지만, 더위를 잊게 하는 ‘페이지 터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 서점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 <사진 : 연합뉴스>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낸 장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찬반 논란이 크지만, 더위를 잊게 하는 ‘페이지 터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 서점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 <사진 : 연합뉴스>

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전 2권 각 1만6300원 |1권 568쪽·2권 600쪽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 만에 낸 장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의 한국어판이 최근 5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지난 2월 일본에서 나온 원서가 초판 130만부 중 지금껏 60만~70만부가량 팔린 데 그쳐 평소 작가의 인기에 비해 판매가 더디다고 하는데, 두 나라의 독서 인구를 비교해 볼 때 한국에서의 판매 속도가 놀라운 수준이라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열혈 독자를 자처하는 ‘하루키스트’들이 국내에 얼마나 많이 포진해있는지 새삼스레 확인하게 됐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 일본 평론가들은 “만약 당신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으려고 한다면, 이 소설을 샘플로 권한다. 무라카미의 모든 요소가 들어있다”라거나 “인기 가수의 히트곡만 모은 앨범 같다”라고 평했다. 어찌 보면 호평 같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애독자들에겐 진부하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아무튼 “재밌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하루키스트’를 사로잡는 소설의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


상상의 테마파크 ‘하루키 월드’ 찾은 독자들

‘기사단장 죽이기’는 30대 중반의 초상화 화가 ‘나’의 이야기다. 느닷없이 아내로부터 이혼을 통보받는다. 그는 친구의 아버지가 시골 산꼭대기에 세운 작업실에서 지낸다. 친구 아버지는 일본화의 대가로 유명했지만 노쇠해 치매 상태에서 말년을 보내고 있다.

이 소설은 그 산중의 집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 사건의 연속이다. ‘나’는 집 근처에서 암혈(暗穴) 같은 구덩이를 발견하고, 밤마다 누군가 그 속에서 흔들어대는 방울 소리를 듣는다. 무라카미의 소설에서 구멍과 우물은 현실과 환상을 잇는 통로로 등장해 ‘하루키 월드’라 불리는 상상의 테마파크를 개장한다.

첫째, 이 소설은 전통 기담(奇談) 형식을 취한 공포 영화를 떠올리게 하면서 시작하더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구멍 모티브에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 등 다양한 서사의 상징을 활용한다. 둘째, 기묘한 인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수수께끼를 던지는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다. 셋째, 남자가 몽환적 경험을 통해 소년기의 상실을 치유하고 성숙해가는 성장 소설의 형식을 취한다. 넷째,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세밀하고 장황하게 묘사돼 소비의 기호학을 떠올리게 한다. 자동차·패션·요리·섹스·음악에 걸쳐 세련된 취향을 반영한 남성 잡지처럼 편집된 것.

이 소설의 상권은 ‘현현하는 이데아’, 하권은 ‘전이하는 메타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관념과 은유라는 추상적 문제를 수수께끼 제시하듯이 다룸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작가의 솜씨는 퀴즈쇼의 유능한 진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퀴즈쇼엔 정답이 있지만, 이 소설의 퍼즐 중 일부는 답이 애매모호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선 찬반 논란이 심한 가운데 판매가 출판사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았다는 풀이도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반응인데, 더위를 잊게 하는 ‘페이지 터너’라는 데는 이견이 없기 때문에 폭염 특수(特需)를 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