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에는 새벽 2시가 돼야 약간 어두워지다가 새벽 3시가 되면 다시 해가 떠오르는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사진 : 위키피디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에는 새벽 2시가 돼야 약간 어두워지다가 새벽 3시가 되면 다시 해가 떠오르는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사진 : 위키피디아>

3년 전인 2014년 7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에서 열릴 협연 무대를 하루 앞둔 밤, 나는 긴장감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포근할 법한 호텔 침대도 그날은 유독 불편했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무겁게 닫힌 커튼을 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 2시가 넘었지만 백야(白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하늘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이른 새벽의 밝음은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저 먼 북쪽 지평선으로부터 하늘을 신비롭게 감싸 안는 빛은 마치 지금 내가 현실을 초월한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생애 대부분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러시아의 대작곡가 차이콥스키도 나와 같은 하늘을 봤을까 생각하며 그가 1877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4번 바단조 작품번호 36번’ 중 3악장을 떠올렸다.


예술가들 모여들며 ‘아름다운 도시’ 명성

모든 현악기가 활이 아닌 줄을 튕기는 피치카토 주법, 싱커페이션(당김음)과 헤미올라(두 마디를 셋으로 나눈 리듬) 등 박자를 흔드는 작곡기법 그리고 현실과 환영 사이를 방황하는 듯한 음악적 감성은 북쪽에서 밝혀주는 빛을 보고 당혹스러웠던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약 3세기 전만 해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서쪽 끝 발트해에 접한, 그저 물이 고여있는 습지에 불과했다. 그런데 러시아 제국의 황제인 표트르 1세가 서유럽과 진취적인 교역을 위해 이곳에 신도시 건설을 명령했고, 수많은 백성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황무지는 곧 러시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건축물이 즐비한 유럽의 국제도시가 됐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전경. <사진 : 위키피디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전경. <사진 : 위키피디아>

음악가들 ‘러시아 색채 찾기’ 노력

하지만 이 도시를 더 아름답게 밝혀준 이들은 바로 예술가들이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림스키 코르사코프, 글린카, 스트라빈스키, 차이콥스키 등 이름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러시아 음악가들이 이 도시에서 성장했으며, 지금도 세계적인 발레 단체로 유명한 마린스키 발레단을 비롯해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등의 대문호들도 이 도시를 거쳤다.

비록 서유럽의 도시를 모델로 삼아 건설된 도시지만, 이곳에 살던 예술가들은 러시아만의 자주적인 색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19세기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전 유럽을 휩쓸던 러시아 출신 안톤 루빈시테인은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하며 서유럽 음악에 뒤처져 있던 러시아 음악의 활로를 모색한다. 그리고 같은 해 젊은 차이콥스키는 음악가로서 꿈을 키우기 위해 루빈시테인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서유럽의 음악으로부터 러시아 음악의 자주성을 확보해내는 것은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는 음악인들의 큰 숙제였다. 무소륵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러시아 민속 음악과 전설을 음악에 가감 없이 반영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서유럽 음악의 토대 위에 러시아의 상상력을 올리며 절충점을 모색한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비록 러시아에서는 그의 음악이 러시아가 배제된 서유럽 정취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비판이 있지만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당시 19세기 서유럽에서는 러시아의 감성을 세련되게 잘 전달하는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러시아 민요 선법을 베토벤, 브람스가 이룩해낸 서유럽의 전통적 작곡 구조에 적용하고,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아한 감성이 독특한 음악 세계를 이루어 냈다. 그의 이런 예술적 미학은 서유럽과 만나고자 탄생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상과도 잘 맞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Plus Point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어울리는 추천 음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바단조 작품번호 36번 중 3악장 스케르초
지휘ㅣ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오케스트라ㅣ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케르초(Scherzo)’는 농담, 해학, 희롱을 의미하는 단어로, 보통 교향곡의 3악장에 쓰인다. 그 단어 자체가 악곡 하나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한다. 피치카토가 반복되는 빠른 음악이 인상 깊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피아노ㅣ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무소륵스키가 1874년 완성한 곡이다. 시각적 요소를 소리로 묘사한 점이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인상주의 사조와도 맞닿아 있다. 철저히 민족주의에 입각해 러시아의 전통을 예술적 경지로 올려놨다는 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