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강은 독일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사진 : 위키피디아>
라인강은 독일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사진 : 위키피디아>

“신성한 라인강. 그 물결에 비친 거대하고도 성스러운 쾰른 대성당. 그곳엔 내 혼란스러운 인생도 다정하게 비춰주는 귀한 그림 한점이 있지. 성모마리아 주위에 떠다니는 꽃과 천사들, 그 눈동자, 그 입술, 그 얼굴, 내가 사랑하는 이와 똑같아.”

독일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1840년 작곡한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제6번 ‘라인, 그 신성한 강이여’의 가사 중 일부다. 슈만은 독일 낭만주의 문학의 대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라인강의 거친 물결에 투영된 사랑하는 이를 향한 자신의 가슴 아픈 연민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음절마다 드러나는 작곡가의 예민한 감정 변화가 짧은 곡에 농축돼 있어 순식간에 청자의 감정을 라인강 물결 한가운데로 빠뜨리는 듯한 예술적 몰입을 선사한다.

라인강은 독일 낭만주의 정신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슈만뿐 아니라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19세기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독일인에게 라인강은 아버지 같은 존재

라인강은 스위스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거쳐 가장 긴 구간을 독일에서 머문 후 네덜란드로 흐른다. 그 길이가 무려 1200㎞가 넘는다. 라인강은 예로부터 독일인에게는 게르만 민족을 고대 로마제국으로부터 보호해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기사문학, 영웅 서사시, 폐허가 된 고성(古城), 로렐라이의 전설, 쾰른 대성당은 이 강을 독일 문화의 정신적 원천으로 만들었다. 이 훌륭한 낭만적 재료들은 당연히 여러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괴테·아이헨도르프·하이네 등 걸출한 문학인은 물론 멘델스존·슈만·리스트·바그너 같은 음악가들을 통해 라인강은 끊임없이 작품으로 재생산됐다. 라인강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이 중 슈만이 자신의 삶을 투영한 라인강은 특히나 낭만적이다. 슈만은 오랫동안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그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슈만과 클라라는 클라라의 아버지에게 법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840년 결혼하며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사랑의 순간은 슈만에게 행복하고 낭만적인 영감으로 돌아왔다. 사랑이 준 영감은 그를 라인강으로 이끌어 같은 해 ‘시인의 사랑’이라는 명곡을 만들어냈다.  ‘시인의 사랑’은 독일 가곡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걸작이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낭만적인 상상력은 아름다움을 넘어 슈만의 삶 전반을 파괴할 정도로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자신의 모든 사랑과 노래를 관에 담아 바다에 수장한다는 ‘시인의 사랑’ 마지막 곡 ‘옛날의 불길한 노래’ 가사처럼 결국 슈만은 말년에 자신의 아픈 몸을 라인강에 내던졌다. 이 어찌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라인강을 향한 슈만의 애정은 ‘시인의 사랑’을 작곡한 10년 뒤인 1850년 그의 교향곡 제3번 ‘라인’을 통해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드레스덴에 거주했던 슈만은 당시 독일 서부 라인강 유역에 자리한 뒤셀도르프로 이주했다. 독일의 정신과도 같은 거대한 라인강의 정취 그리고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쾰른 대성당의 위엄은 라인강을 향한 그의 존경과 애정을 더 고취시켰다.


라인강 유역에 있는 독일 쾰른 대성당. <사진 : 위키피디아>
라인강 유역에 있는 독일 쾰른 대성당. <사진 : 위키피디아>

예술적 영감 준 라인강에 몸 던진 슈만

슈만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종종 세련되지 못한 음색과 밸런스로 비판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슈만의 자유분방하고 낭만적 기질은 세련된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된 감정이 소리를 진동시키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소리만 추구하는 것은 그의 사상에도 맞지 않는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현대적 음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서 더 정통 독일 음악의 정신을 순수하게 표현해낸다. 총 5악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시종일관 온화하면서도 힘찬 기운이 악곡 전체에 감돈다. 특히 폭넓은 음정의 자신감 넘치는 제1악장 메인테마는 넓고 힘차게 흐르는 거대한 라인강을 연상시킨다.

1851년 열린 이 작품의 초연회는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중간 쏟아낸 관객의 박수 소리로 연주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또 관객의 간곡한 요청에 곧 두 번째 연주가 열릴 정도로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여러분들에게 이 곡을 들으며 라인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음껏 즐겨보시라 권하고 싶다. 이 바람에는 분명 라인강을 향한 슈만의 끝없는 낭만적 애정이 담겨있을 것이니.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라인강과 어울리는 추천 음반

슈만
교향곡 제3번 내림 마장조 Op. 97 ‘라인’

지휘ㅣ볼프강 사발리시
오케스트라ㅣ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독일의 대지휘자 사발리시는 대가의 노련한 감각으로 과장 없이 정통 독일 음악의 정신을 순수하게 표현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슈만 특유의 낭만적인 감성을 균형감 있게 빚어낸 음반으로 평가된다.


슈만
시인의 사랑 Op. 48

바리톤ㅣ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피아노ㅣ크리스토프 에셴바흐

디스카우의 가사 해석에 나타나는 예민한 표현력과 상상력은 특히 독일 가곡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가사, 화음의 변화에 매 순간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표현은 듣는 이가 슈만의 감정 한복판에 놓여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