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킹스턴 시가지의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자메이카 킹스턴 시가지의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우사인 볼트와 블루마운틴 커피로 유명한 자메이카가 레게의 본고장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레게는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대부분의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쳤을 만큼 존재감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는 1993년 김건모가 레게풍 노래인 ‘핑계’를 부르면서 레게가 알려졌다. 뒤이어 룰라, 닥터레게가 90년대 중·후반 레게 열풍을 일으켰다.


자메이카 인구 약 300만명

자메이카의 어원 자이마카(Xaymaca)는 ‘나무와 물의 땅’을 의미한다. 콜럼버스가 1494년 자메이카를 발견하기 전 원주민 타이노와 아라와크족이 붙인 이름이다. 자메이카는 쿠바에서 150㎞ 떨어진 남쪽에 위치한 달걀모양의 섬이다.

섬에는 아름다운 바다와 자메이카 커피 브랜드명 블루마운틴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산맥이 있다.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은 자메이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좁고 긴 팔리세이도스 반도에 에워싸인 항구 도시다.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동시에 레게의 전설 밥 말리를 기리는 박물관 등 명소가 가득해 이제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지만 18세기 노예무역이 활발했던 아픈 역사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메이카는 카리브해에서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나라지만 인구는 약 300만 명에 불과하다. 인근 섬들처럼 자메이카도 얼룩진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섬의 첫 정복자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군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인해 원주민들은 대거 사망했다. 스페인군은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데려왔다.

카리브해 진출을 엿보던 영국은 1655년 자메이카를 점령했다. 영국군은 이곳에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건설했다. 17세기 유럽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던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농장주들은 노예들을 한층 더 혹사했다. 노예들은 농장주들의 무자비한 탄압을 피해 도주했다. 탈출한 노예들이 산악지대에 모여 ‘마룬’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흑인 노예들은 백인에 대한 저항의식을 고취하려는 목적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해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다. 1930년대에 이 종교는 아프리카로 귀환하고자 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래스터패리어니즘으로 발전된다. 레게에는 이 메시지가 담겨 있다.

1960년대는 자메이카와 레게, 밥 말리가 삼위일체로 세상을 향해 울부짖은 시대다. 자메이카는 1962년 영국에서 독립했고, 밥 말리는 1963년 ‘밥 말리와 웨일러스’라는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선보인 음악이 시간이 지나면서 레게로 정착됐다.

레게는 카리브해의 여타 라틴음악과 다르다. 타악기 사용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타악기 연주를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스페인 음악에 차용할 정도로 흥미를 보였다. 쿠바의 살사, 도미니카 공화국의 메렝게와 바차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칼립소, 콜롬비아의 바예나토와 쿰비아에는 타악기 소리가 담겨 있다.

반면 자메이카를 통치했던 영국은 타악기 연주를 금지했다. 요란한 아프리카 리듬이 노예들을 흥분시켜 반란을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불꽃같이 즉흥적인 노래보다 반복적인 리듬의 노래를 권장했다. 기독교의 차분한 찬송가 분위기까지 가미했다.


킹스턴에 위치한 밥 말리 박물관. 건물 앞에 밥 말리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 자메이카 관광청>
킹스턴에 위치한 밥 말리 박물관. 건물 앞에 밥 말리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 자메이카 관광청>

미군이 전파한 재즈가 레게음악 기원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군이 전파한 재즈를 자메이카식으로 변형한 스카가 탄생했다. 스카는 조금 더 느린 형태의 록 스테디로 변하다가 1960년대 레게로 정착했다. 레게는 엇박자를 탄다. 우리에게 익숙한, 규칙적인 ‘강약강약’ 박자를 탈피한다. 3번째 박자에 악센트를 넣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 재치 있는 부조화는 요리 향신료처럼 감칠맛을 준다. 중독되면 계속 듣게 된다.

레게는 해변가에 어울리는 느릿한 여름휴가용 노래가 아니다. 오히려 레게는 숭고하다. 레게에는 불공평한 사회적 계급을 타파하려는 투쟁적 요소가 있다.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싶은 래스터패리언들의 자유와 평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레게 정신을 세상에 표출한 혁명가가 바로 밥 말리다. 그는 영국계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계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밥 말리는 1973년 발표한 앨범 ‘캐치 어 파이어(Catch A Fire)’의 첫 번째 곡 ‘콘크리트 정글(concrete Jungle)’에 성장기 때 느꼈던 감정을 담았다.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자란 그는 지독한 가난과 절망감을 아프게 표현했다.

그는 독립 후에도 자메이카에 남아 있던 사회, 정치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선동적인 정치행보와 날선 비판 때문에 그를 과격한 진보주의자로 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따뜻한 소망을 지닌 사상가였다. 1977년의 앨범 ‘엑소더스(Exodus)’에 담긴 곡 ‘원 러브(One Love)’에서 그는 제목처럼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기를 염원했다. “하나의 사랑, 하나의 마음, 모두 하나가 되면 좋아질 거야.” 이 작은 목소리에 강력한 힘이 들어 있다.

‘자메이카가 밥 말리고 밥 말리가 자메이카다.’ 이 명제는 아직도 유효하다. 36년의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대부분의 곡에서 조국 자메이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그의 대표곡 ‘여인이여 울지말아요(No Woman, No Cry)’를 들어보자.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모든 게 잘될 거예요. 나의 작은 누이여, 눈물을 떨어뜨리지 말아요.” 오늘은 밥 말리가 그립다.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경희대 피아노 전공실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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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게(reggae) 1960년대 말 자메이카에서 생겨난 음악을 말한다. 자메이카어로 “최근 유행하는”이라는 뜻이다. 레게 음악은 자메이카의 토속 음악과 블루스, 재즈, 리듬 앤드 블루스 등과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