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이 쓴 ‘방문객’은 교보문고 광화문글판에도 소개돼 큰 사랑을 받았다. <사진 : 조선일보 DB>


정현종 지음 | 문학판
1만4000원 |164쪽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TV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가 인기라고 한다. 청춘 멜로 드라마인데, 주인공이 읽은 시집 한 권이 주목받고 있다.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 ‘섬’이다. 2009년에 나온 시집인데, 여기에 실린 시 ‘방문객’이 전파를 탄 뒤 입소문이 퍼지자 출판사가 급히 4000부를 더 찍기로 했다. 드라마 제작진이 간접 광고비를 받지 않고 스스로 소개했다고 한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1939년생으로, 1965년 등단 이후 형이상학적 주제를 평이한 언어로 다뤄왔다. 시 ‘방문객’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만남의 소중한 인연을 어마어마한 우주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기에 타인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만나겠다는, 시인의 평소 인간관을 진솔하게 노래한다. 그 환대의 방식은 위안이기도 하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국민 애송시로 꼽혀

누구나 살면서 마음이 부서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므로 그것을 보듬어주는 마음으로 타인을 만나겠다는 것이고, 그 만남이 바람처럼 부드럽게 이루어지도록 시인도 바람처럼 자유롭고 경쾌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이라고 소박하게 드러낸다.

정현종 시인은 ‘바람의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젊은 날부터 바람을 즐겨 노래해왔다. “가지에 부는 바람의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시 ‘사물의 꿈’)라거나 “모래의 살에 부는 바람이 될 때까지”(시 ‘그대는 별인가’)라고 노래했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자 나무가 생의 전율을 느낀다는 것이나, 바람이 모래의 풍화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 현상을 노래한 것은 사람 간의 소중한 만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소통은 정현종 시인의 대표작 ‘섬’의 주제이기도 하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단 두 줄짜리 시는 어느덧 한국인의 애송시로 꼽히고 있다. 섬은 흔히 고독의 비유로 쓰이지만 정현종의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래서 시인은 ‘그 섬에 가고 싶다’고 소망했고, 그 섬처럼 사람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시 ‘방문객’을 쓴 것이다.

시인은 아침을 맞는 심정을 “그 파동으로/ 모든 날빛을 물들이니/ 마음이여/ 동트는 그곳이여”라고 노래한 적도 있다. ‘동트는 그곳’ 같은 시인의 마음은 세상의 나무들을 가리켜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굴고 둥굴어 탄력의 샘!”이라고 예찬했다. 수직으로 솟는 나무의 힘은 수액에서 나오기에 나무는 샘솟는 물의 형상이고, 그 역동성은 탄력이 좋은 둥근 공을 떠올리게 한다는 참신한 비유의 연속인 것.

정현종의 대표작만 모은 시집 ‘섬’은 시인의 육필과 그림도 함께 실었기에 시각적 즐거움도 안겨준다. 소장할 가치가 있는 시집이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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