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공연장 베를리너 발트뷔네. 매년 50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사진 : 위키피디아>
야외 공연장 베를리너 발트뷔네. 매년 50만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사진 : 위키피디아>

‘Berlin ist Berlin(베를린은 베를린이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가 이곳 현지 음악계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현재 유럽의 많은 음악가 및 관련 종사자들이 왜 베를린으로 이주하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특히 음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 도시의 위상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단편적 예다.

베를린은 12세기 문헌에 처음 언급된 이후 한때 프로이센 왕국의 찬란한 수도로 번영했다. 이후 히틀러의 나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 4개국의 분할 통치 그리고 동서 분단까지 수많은 굴곡의 변천사의 중심이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 이후 1991년 다시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됐고,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부흥 정책에 힘입어 도시는 급성장했고 문화 또한 번영할 수 있었다.


클래식 공연 1년 365일 열려

이러한 역사적 상징성 못지않게 베를린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 단체와 공연장이 즐비하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라고 불리는 베를리너 필하모니커가 있고, 그 오케스트라가 상주해 있는 베를리너 필하모니 홀은 수많은 클래식 음악 팬들의 성지와도 같다.

그 밖에 베를리너 콘체르트 하우스, 콘체르트 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도이체 오퍼, 최근 개관한 피에르 불레즈 홀 등도 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이곳에서 한 달을 머물러도 모두 다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공연이 1년 365일 열린다.

필자가 생각하는 베를린의 매력은 바로 다양한 인종이 몰리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이민자들이 건너와 정착했고, 다양한 이념과 종교가 공존하던 장소였기에 계층, 인종에 상관없이 한데 어울리며 콘서트를 즐기는 풍경이 필자의 눈에 참으로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대로 화려한 공연장과 유명 공연 단체들도 있지만, 베를린은 펍·창고·길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다채롭게 열린다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클래식 음악 팬들의 성지인 베를리너 필하모니 홀. <사진 : 위키피디아>
클래식 음악 팬들의 성지인 베를리너 필하모니 홀. <사진 : 위키피디아>

한손에 맥주 들고 진지하게 음악 감상

필자도 얼마 전 재미있는 연주를 했다. 베를린 ‘클라비어 살롱 크리스토포리(Klavier salon Christophori)’라는 곳에서의 독주회에서다. 베를린 시내 공업 단지에 있는 한 창고를 소유한 개인이 소규모 음악회를 열면서 유명해진 곳으로, 지금은 젊은 관객들의 호기심을 사로잡는 장소 중 한곳으로 꼽힌다. 그래피티가 가득한 동네에서 말쑥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을 비롯해 청바지에 반팔 차림 또는 문신과 피어싱이 가득한 이들부터 크로스 드레서(이성의 옷을 입는 사람)까지 여러 베를리너들이 한데 모여, 한손에 맥주를 들고 그들의 방식대로 진지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고전시대 작품이든 실험적인 현대작품이든 마음을 열고 소통하려는 그들의 열린 자세가 연주자의 입장에서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러한 도시에 다국적 출신의 여러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 아닐까. 결국 필자가 서두에 말한 ‘베를린은 베를린이다’라는 문구를 이곳이 단지 독일 수도로서의 위상만이 아닌, 도시 구석구석에서 여러 사람들과 여러 형태로 만나는 예술을 다양하게 포용하는 도시로서의 매력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베를린의 선율

루트비히 판 베토벤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베를리너 필하모니커
지휘|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54년부터 34년이라는 긴 기간 베를린너 필하모니커를 이끈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1961~62년에 LP로 녹음한 교향곡을 2011년 리마스터링을 통해 CD로 담은 명반이다.


카를 필립 에마뉘엘 바흐
베를린 교향곡

베를린의 바흐라고도 불리는 카를 필립 에마뉘엘 바흐의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프로이센의 수도였던 당시 베를린에서 궁정 음악가로 활동하며 작곡한 교향곡 모음집이다. 대음악가로 칭송되는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영향이 반영됐고, 본인이 추구하던 18세기 중후반 북독일에서 유행하던 감정과다 양식(Empfinsamer Stil)도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