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이방인’에서 이야기 솜씨를 뽐낸 정한아. <사진 : 정한아>

친밀한 이방인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1만3000원 | 256쪽

조선일보사가 운영하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매달 한 차례씩 모여 신간 소설 10여 권을 놓고 독회를 연다. 역대 수상 작가와 평론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여섯 명이 우수 후보작을 매달 골라낸다. 심사위원들은 가을에 본심을 열어 후보작들을 4권으로 압축한 뒤 다시 최종심을 갖는 수순을 밟는다. 심사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후보작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토대로 부드러운 덕담과 날카로운 비판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직설적인 언급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1월에 열린 동인문학상 심사독회에서 심사위원들이 한결같이 ‘정말 재미있다’고 보기 드물게 선뜻 꼽은 소설이 등장했다. 정한아의 장편 소설 ‘친밀한 이방인’이 바로 그 화제의 작품이다. 지난해 가을에 나온 이 소설을 두고 벌써 영화와 드라마 제작을 추진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정한아는 2005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아 학생 때 이미 두각을 나타낸 뒤 2007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통해 본격적으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날의 수상경력을 보면 요즘 한국 소설의 중심으로 활동하는 김영하와 김애란의 뒤를 잇고 있다.


가짜 인생 살아온 어느 여성의 일생 추적

‘친밀한 이방인’은 정한아의 이야기 솜씨가 눈부시게 발휘된 소설이다. 학력 위조를 비롯해 온갖 거짓말로 가짜 인생을 살아온 어느 여성의 행적을 추적하는 여성 작가의 이야기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전개된다. 소설 제목은 삶의 정체성이 지닌 아이러니를 암시하고 있다. ‘나’는 가장 친밀한 것이지만, 그 ‘나’의 삶이 주체적 결단이 아니라 주변의 요구에 따라 충실하게 연기된 무대 위의 인생이었다면,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이방인이 될 수도 있다. 이 소설에서 신분을 위조하고 세탁하기를 거듭하는 여자의 삶도 처음엔 작은 거짓말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 뒤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상황의 논리에 따라 점진적으로 사태가 커진 것이었다. 동시에 그녀를 추적하는 여성 작가도 점점 더 깊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낯설어하면서 의식적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열망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이 소설은 그 두 명의 삶이 평행하다가 막판에 부닥뜨리지만 이내 엇갈리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동시에 가짜 인생을 사는 인물의 행적을 증언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발언이 녹취록의 형식으로 겹치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추적을 당하는 여자의 가짜 인생은 가짜 여대생 노릇에서부터 시작한다. 틈틈이 비정규직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만, 그때그때 삶의 전기가 찾아와 신분과 경력을 위조하게 되면서 심지어 성별도 남자로 위조하게 된다.

변신을 거듭하는 과정이 너무 가팔라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속도감 덕분에 무리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물론 ‘마지막 반전이 터무니없어서 사기를 당한 느낌이 드는 독자도 있을 것’이라거나 ‘너무 꽉 짜여있어서 독자의 상상력이 들어갈 틈이 없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뤘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양상을 반영하기도 한다. 사기에 쉽게 휘둘리는 세태, 가족의 해체 현상, 여성의 독립적 삶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늘의 풍속도를 제시하기도 한다. 기존의 관습을 모두 허물고 싶어하는 전복적(顚覆的) 소설이기 때문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소설은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 폐허가 된 길목에서.’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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