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의 ‘파파라치’ 콘셉트 캠페인. / 발렌시아가

안성 휴게소에 가면 소떡소떡(소시지와 떡가래를 번갈아가며 끼운 꼬치)은 꼭 먹어야 한다. 휴게소의 세종대왕이라는 금강휴게소의 도리뱅뱅(빙어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운 뒤 접시에 동그랗게 담은 요리)은 또 얼마나 맛있을까.

이 음식들은 MBC 관찰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개그우먼 이영자가 자신의 ‘먹데이터(먹거리와 데이터의 합성어)’를 토대로 소개한 것이다. 이영자는 휴게소 미식 로드를 개척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방송 이후 고속도로 휴게소 매출 역시 평균 2배, 최대 5배까지 올랐다고 한다.

관찰 예능은 이경규가 몰래 카메라를 들고 연예인을 골탕 먹이던 과거,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인기를 끌어온 방송가의 장수 콘텐츠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이제는 관찰의 대상이 되는 유명인들이 스스로 본인의 사생활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예인의 친구, 가족은 물론 이제는 매니저까지 나서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준다.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된 2000년대 이후, ‘전지적 스마트폰 시점’이 등장하면서부터 달라진 예능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 속 망원경으로 맞은편 집을 훔쳐보는 주인공. / 유튜브

‘공항 패션’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탄생했다. 스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는 패션계는 이제 단순히 옷을 협찬하는 수준을 넘어 현물이나 현금 등의 대가도 지불한다. 요즘 연예인들이 공항을 오갈 때마다 검색대를 통과하듯 사진을 찍는 이유다.

단 이때의 포즈는 반드시 자연스러워야 한다. 마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연히 찍힌 듯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공항 패션의 핵심이다. 스타일리스트가 입혀 준 무대 의상보다 연예인이 실제로 입었던 옷, 좋아하는 옷이 더 잘 팔리는 건 당연하다. 어차피 짜고 치는 판이라는 것을 팬들도 모를 리 없지만, 결국 그들은 주머니를 열게 된다.

이번 시즌 발렌시아가의 캠페인 광고는 황색 신문의 연예 뉴스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파파라치 콘셉트다. 발렌시아가의 파리 매장이 있는 몽테뉴 거리와 생토노레 거리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에서 모델들은 파파라치를 피해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듯한 모습이다.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거나 발렌시아가 로고가 선명한 가방을 들어 얼굴을 가린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델도 있다. 이들 옆으로는 검은색 슈트 차림의 보디가드도 보인다. 물론 이건 연출된 사진일 뿐이고, 모든 게 연기다.

“찍지 말라”고 외치지만 한편으로는 찍혀야만 사는 게 연예인의 숙명이다. 파파라치 컷이 존재한다는 건 본인이 유명인이라는 증거다. 그래서 대다수의 SNS 인플루언서(영향력 있는 개인)들은 사진가를 따로 고용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다. 일부러 파파라치 컷을 연출하는 것이다. 그래야 좀 있어 보인다나.

사진가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요즘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웨딩 사진이나 여행 사진 상품도 그런 콘셉트가 유행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을 잠식한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24시간 내내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생활을 타인에게 노출한다. 공항 패션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 따위 관심 없다는 듯한 쿨한 태도다. ‘스마트폰 카메라’라는 제3의 눈이 만들어낸 일종의 노출증이다.

찍히는 사람이 있으면 이를 보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노출증과 짝을 이루는 관음증에도 이 같은 이중 심리가 작동한다.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은 그런 마음. 금기를 깨는 쾌감. 훔쳐보는 건 그래서 더 짜릿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노출증과 관음증은 시작된다. 관음증은 보여지고 싶은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욕망이다.


존 콜리어의 ‘레이디 고디바’. / 위키미디어

금기를 깨는 쾌감, 노출증과 관음증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이창’에는 그러한 인간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리를 다쳐 집에만 머물던 주인공은 망원경을 통해 맞은편 집을 훔쳐보다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히치콕은 집 안의 창문 자체를 카메라의 프레임처럼 이용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주인공의 삶을 훔쳐보게 되는 셈이다.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장치다. 게다가 여주인공이 그레이스 켈리다. 관객 입장에선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하는 ‘피핑 톰(Peeping Tom)’은 11세기 초, 영국의 아름다운 백작 부인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농민들이 힘들어하는 걸 본 고디바는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부탁했다. 백작은 고디바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도는 것. 고디바는 그렇게 했다. 백작 부인의 용기에 감동한 주민들은 고디바가 수치스럽지 않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창문을 가렸다. 단 한 사람, 문틈으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재단사 피핑 톰만 빼고 말이다. 그는 결국 신의 벌을 받아 장님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화는 후세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으니, 알몸으로 말을 탄 고디바의 모습은 조각과 회화 작품으로 널리널리 퍼져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벨기에 초콜릿 ‘고디바’의 이름도 바로 여기서 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보여주고 또 보기 바쁘다. 누군가의 일상이 SNS에 업로드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수천만개의 눈이 있다. 보여 주면서도 아닌 척, 보고 있으면서도 못 본 척 하기에 SNS만큼 유용한 수단도 없다. 덕분에 우리는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 번 본 사람은 잊어도 한 번 먹은 음식은 못 잊는다” 몰래 보는 것도 그렇다. 달콤한 고디바 초콜릿처럼.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