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함부르크 시내 전경. 뾰족한 첨탑의 교회가 즐비한 이곳은 종교적인 음악도 자주 울려퍼진다.

독일 북부 엘베강 하구 어귀에 자리 잡은 함부르크. 이곳에서 지낸 지 벌써 6년째다. 칠흑같이 어둡고 긴 북독일의 겨울은 아직도 적응하기 힘들지만 물 위에 비치는 회색 구름, 거센 항구의 바람은 어느샌가 필자의 음악에도 스며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한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환경은 끊임없이 그 사람의 마음과 교감하며 영감을 만들어 내고 음악으로 피어난다.

함부르크로 오기 전 필자가 약 10년의 시간을 보낸 유럽 중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간직한 북독일의 정서는 이곳에서 탄생한 음악에서도 느껴진다.

지금 함부르크는 독일 백만장자의 도시, 유럽 2대 항구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18세기 이전만 해도 북유럽 음악의 중심지였다. 당시 함부르크는 시장 도시들의 연맹인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맹주로서, 또 독일 ‘30년 전쟁(1618~48년·독일에서 발생한 신교와 구교의 전쟁)’의 피해를 거치며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도 번영하게 됐다.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을 필두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요한 마테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그의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등이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다. 사실 처음 이사올 때만 해도 이곳 출신의 음악가는 낭만주의 시대 브람스·멘델스존의 존재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가며 함부르크 음악의 뿌리는 위에 언급한 작곡가들이 살았던 바로크에 있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함부르크에는 뾰족한 첨탑이 인상적인 교회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바흐·하스·텔레만 등의 종교 음악은 일요일이면 온 도시에 울려퍼진다. 함부르크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성 야코비 교회의 오르간으로도 유명하다. 오르간 제작 명장인 아르프 슈니트거의 작품으로 3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파이프 오르간은 오르간 자체의 장엄한 소리와 교회 공간 울림의 환상적인 조합으로도 유명하다. 성 야코비 교회에서의 오르간 연주는 독일의 많은 오르가니스트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성 야코비 교회에 있는 슈니트거의 오르간. / 위키피디아

300년 넘은 오르간의 전율

이는 3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또한 이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기 위해 한 시간을 걸어 이곳에 왔다고 전해진다. 바흐가 이곳 오르가니스트가 되길 소망했으나 조건이 맞지 않아 라이프치히(독일 동부 도시)로 내려간 일화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매주 목요일 30분간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리는 성 야코비 교회의 연주회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온몸에 전해 주는 전율을 느낄 때면 당시 ‘엘베강의 진주’라 불렸던 함부르크의 영화를 잠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궁정음악, 세속음악이 꽃폈던 프랑스의 파리나 이탈리아 반도의 베네치아와는 달리 함부르크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영향을 받아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또 필자 개인적으로 이곳 북독일 특유의 자연환경 때문인지 음악 속에서 회색빛의 하늘, 조용한 바람 소리, 어두움 속의 고독 등이 느껴지기도 한다.

독자들에게 함부르크의 음악을 파리의 장 필리프 라모, 베네치아의 안토니오 비발디의 음악과 비교 감상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세 지역 음악에서 오는 확연한 음악적인 차이를 느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Keyword

루터의 종교개혁 1517년 10월 독일 성직자 마르틴 루터(Luther· 1483~1546)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된 것이 종교개혁의 출발. 반박문은 교황청의 면죄부는 신학적 근거가 없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루터는 개혁이 아닌 신학 토론을 해보자는 취지로 반박문을 붙인 것이었는데 때마침 인쇄술이 발달하며 논쟁이 커지고 다양한 개신교 교파 탄생으로 이어졌다. 장로교·감리교·침례교 등이 속한 개신교는 한국에서 신자가 가장 많은 종교이기도 하다. 이후 ‘개혁의 대상’이었던 가톨릭에서도 자성이 일어나며 쇄신운동을 지속하게 됐다.

Plus Point

옛 함부르크의 명반들
매주 일요일 종교 음악 울려퍼지는 도시

안드레아 슈타이어
함부르크 1734

17~18세기 바로크 시대의 함부르크에서 쓰인 하프시코드(피아노 이전의 건반 악기)를 위한 곡을 모아놓은 진귀한 음반이다.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북독일 음악의 양식을 말해 주고 있는 음반이라 할 수 있다. 헨델·북스테후데·마테존·텔레만 등 당시 함부르크에서 활동했던 작곡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요한 마테존
유능한 비르투오소

요한 마테존은 헨델과 동시대에 살았던 함부르크 출신의 작곡가다. 현재는 헨델의 명성에 가려져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시 함부르크 음악계에서 헨델과 동등하게 경쟁했던 작곡가다. 스스로 외교관으로 활동할 만큼 해외 사정에 밝았던 그는 음악 또한 여러 지역의 양식,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국제적인 양식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종교적인 양식보다 세속적이고 우아한 갈란트 양식이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