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초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조선일보 DB

보수의 정신
러셀 커크|이재학 옮김|지식노마드
3만6000원|856쪽

개인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겼던 정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1806~73년)은 보수주의자들을 ‘바보들의 무리’로 묘사했다. 또 다른 영국의 역사학자는 “보수주의자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거나, 아니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충분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보수의 정신’이 미국에서 첫 출간된 1953년은 자유주의가 시대 정신이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미시간주립대 역사학 강사 러셀 커크(1918~94년)는 보수의 의미를 바로잡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200여 년간 영국과 미국의 사상가들이 지켜온 보수주의 원칙을 무려 17만5000단어로 정리했다. 시대적 배경 탓에 이 책은 발간과 동시에 뉴욕 지성계에서 퇴출됐다. 훗날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이 책으로 미국의 보수적 부활이 가능하다”고 평가하면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에서는 최근 번역 출간됐고, 일본에서도 번역 작업이 진행 중이다.


관습·법률 지켜야 건강한 사회

책은 사회 발전을 위한 개혁이 사회 그 자체를 태워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부터 획일화된 평범함이라는 민주주의의 모순을 읽어낸 알렉시 드 토크빌, 법 앞에서의 규범적 자유를 옹호한 존 애덤스 등 자유주의가 초래할 위험과 폐해를 통찰한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을 깊이 있게 담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사상을 통해 보수주의를 인류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전통의 계승이자 ‘영원한 것들’을 지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한 것일까.

‘보수주의의 뿌리’를 만든 버크는 18세기 말 인류의 전통과 기존 정치 권력의 파괴를 외치는 급진주의 사상들과 싸웠다. 그는 영국의 헌정 체제가 모든 영국 사람을 보호하며 자유·법 앞의 평등,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영국인에게 보장해주려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혐오한다고 말한다. 추상적이고 엄격한 일련의 정치적 독단이 이데올로기이며, 이는 신봉자들에게 지상의 낙원을 약속하는 ‘정치적 종교’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자들에게는 관습, 일반적 합의, 법률과 규범이 건강한 사회 질서의 근원이 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우리나라 보수주의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新)보수주의’라고 문패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보수주의가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그를 위해 일관된 가치로 작동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노동 과잉 시대가 온다
노동의 미래
라이언 아벤트|안진환 옮김|민음사
2만원|360쪽

현재 우버나 구글이 실험 중인 운전자 없는 차량이 대중화되면 경제·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만 놓고 봤을 때, 운송업 종사자는 택시기사 50만 명, 화물트럭 운전기사 150만 명 등을 포함해 총 500만 명에 달한다. 이 모든 일자리가 자율주행차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운전자 없는 차량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부모나 방과 후 활동지로 데려가는 보모의 역할을 겸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30년간 10억 명 이상 늘어난 글로벌 인구는 다음 30년 동안 또 10억 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래 고용 기회가 ‘자동화’와 ‘노동력 과잉’ 때문에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 분명한 것이다. 앞으로 핵심 과제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불필요해져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먹고살 제도를 수립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선진국이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회적 자본이 빈약한 나라의 국민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빈곤 퇴치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책은 예측서가 아니라 현재의 변화상을 다루는 분석서로, 정책적 보완 방법으로 마무리된다.


미국인들이 일하는 법
나는야 호기심 많은 관찰자
임정욱|더난출판사
1만5500원|296쪽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다음커뮤니케이션 글로벌센터장, 미국 라이코스 대표 등을 역임한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스타트업 지원 기관) 센터장이 출간한 미국 기업 문화 체험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오버 커뮤니케이션(over communication)’과 ‘질문하는 문화’다. 지나친 의사소통이란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오버 커뮤니케이션은 별것 아닌 작은 이벤트라도 열어 경영자와 직원이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회사가 변화를 겪는 와중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이 더 절실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경영진이 지금 회사가 돌아가는 상황이 어떤지,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면 중간관리자 이하 직원들은 제멋대로 추측하고 그 결과 회사의 앞날을 점점 불안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질문이 넘쳐 나는 미국 문화를 소개하면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다고 강조한 대목도 흥미롭다.

저자가 300쪽 가까이 풀어내는 체험기는 마치 소셜미디어에서 친구들에게 풀어내듯 쉽고 재밌게 읽힌다.


성과를 구체적으로 보고하라
어떻게 여성이 일어설 수 있을까
샐리 헬게슨·마셸 골드스미스|아셰트
28달러|256쪽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엘런은 매우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다른 직원들과 활발히 교류했다. 많은 동료들이 엘런에게 이메일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녀는 해결사을 자청했다. 스스로를 ‘연결자(connector)’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덕에 회사에서 근무하는 3년간 엘런은 놀라운 사내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엘런의 상사는 연례 인사 고과에서 ‘엘런은 좀 더 적극적으로 동료들과 협업할 필요가 있다’ ‘부서 업무에 더 기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엘런의 최대 강점을 두고 보완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한 것이었다.

리더십 전문가인 저자는 엘런의 문제를 여성들의 보고하지 않는 성향이 작용한 결과로 분석한다. 여성들은 알아서 할 일을 하고 성과를 내면 상사가 ‘스스로’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사로서는 엘런의 책상에 꼭 붙어 있을 수도 없고 이메일을 뒤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모든 동료 직원들과 미팅해 엘런의 성과를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여성들이 자기 성과 말하기를 게을리하는 데서 비롯되며 일종의 ‘업무 태만’이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