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유니폼이 ‘너무 우스꽝스럽다’고 불만을 토로한 ‘어벤져스’의 닥터 스트레인지. / 마블

슈퍼맨이 다시 빨간색 팬티를 착용했다. 올해로 탄생 80주년을 맞는 슈퍼맨을 기념하기 위해  DC코믹스가 4월 18일 발간한 ‘액션 코믹스’ 1000호에서 슈퍼맨은 예의 그 늠름한 자태를 드러냈다. 슈퍼맨이 파란색 쫄바지 위에 다시 빨간 팬티를 덧입은 건 약 7년 만이다. 슈퍼맨의 팬티 따위가 무슨 대수일까 싶지만, 1930년대 대공황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타났던 최초의 영웅 캐릭터가 무슨 옷을 입는지는 팬들 사이에서 꽤 중요한 이슈다.

하늘을 나는 건 만화 속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난데없이 슈퍼맨 얘기를 꺼낸 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논란과 함께 문제가 되고 있는 진에어의 승무원 유니폼 때문이다. 오는 7월 취항 10주년을 앞두고 유니폼의 변화를 예고했던 진에어는 이번에도 꽉 끼는 청바지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진에어 측은 일단 승무원들의 신규 유니폼 사이즈 측정을 중단했다. 진에어 유니폼 디자인을 맡은 ‘레주렉션’의 이주영 디자이너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편의성과 실용성에 주안점을 두면서 우리 고유의 멋을 접목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아직 새 디자인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의 업무는 상당한 육체노동을 요구한다. 머리 위 수납장으로 트렁크를 들어올리고, 쪼그려 앉아 음식을 준비하는가 하면 좁은 통로 사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서비스를 한다. 비상시엔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있다. 그렇다 보니 승무원복은 겉보기엔 평범한 옷처럼 보여도 옷감 소재부터 절개선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최첨단 기능성 유니폼을 착용한 영화 속 영웅들의 경우는 어떨까. 마블의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출연진들은 개봉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본인들의 의상에 대한 불평을 쏟아냈다.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처음 코스튬을 착용했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때 제가 서른아홉인가 그랬을 거예요. 거울을 보니 웃음만 나오더군요.” 마블에서 오래 일한 코스튬 디자이너는 수퍼 히어로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우스꽝스러운 망토 차림의 그를 위로했다고 한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스칼렛 위치로 활약하는 엘리자베스 올슨은 자신의 지나친 노출이 못마땅하다고 했다. “코르셋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슴은 좀 더 가려줬으면 해요. 주위를 둘러보면 혼자만 가슴골을 노출하고 있어 웃기더군요.”

의상 디자이너들도 히어로들의 코스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아카데미 의상상을 3번이나 수상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제임스 애치슨은 어떻게 하면 지나친 왜곡 없이 스파이더맨을 더욱 화려하게 부각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 그는 소재의 신축성을 강화시키고 거미줄의 패턴을 금색으로 바꾸는 등 세심한 튜닝 작업을 시도했다. 스파이더맨 마스크의 턱과 허리 부분을 보다 유연하게 조절하고 촬영 장소에 따라 빛이 달라지더라도 옷의 입체감과 색감이 변하지 않도록 특수염색 과정을 거친 소재를 덧대었다.

슈퍼맨의 빨간 팬티를 벗겨버린 ‘맨 오브 스틸’의 의상 디자이너 마이클 윌킨스는 슈퍼맨의 고향별인 크립톤 시민들의 복장과 슈퍼맨의 의상을 연결했다. 크립톤 사람들은 중세 시대의 기사처럼 쇠사슬 갑옷 같은 스킨 슈트를 입는다. 슈퍼맨의 오톨도톨한 슈트 질감과 동일한 것이다. 또 슈퍼맨에게 ‘S’가 트레이드마크인 것처럼 각자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자를 가슴에 새긴다. 슈퍼맨은 여기에 금속성의 윤기를 더해 ‘강철의 사나이’다운 위용을 살렸다.


호세 페르난데스가 디자인한 스페이스X의 우주복. / 스페이스X

만화 속 영웅 복장 현실화한 일론 머스크

현실세계에서 만화 속 영웅 복장의 현실화가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모터스’의 창업자이자 민간 우주여행 프로젝트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가 지난해 선보인 새 우주복이 바로 그런 경우다. 우주복 디자인 입찰에 참여한 전문업체들의 디자인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억만장자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캡틴 아메리카’ 등 SF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한 호세 페르난데스를 영입해 멋진 우주복을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디자인에 맞춰 기능을 찾아가는 리버스 엔지니어링 방식으로 제작된 이 우주복은 결과적으로 ‘인터스텔라’에서 우주인들이 선실에서 입던 여압복(與壓服) 비슷한 모양으로 완성됐다. 일론 머스크의 말에 따르면 진공 압력 테스트도 통과해 실제로 우주에서 입고 생활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한다. 한 벌 제작하는 데 최대 5억달러(약 5408억원)가 든다고 하니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비싼 유니폼이 아닐까 싶다.

보통 사람들 속에 섞여 평범하게 살아가던 만화 속 영웅들은 악당이 나타나는 순간 특유의 옷으로 갈아입고 멋지게 등장한다. 이 유니폼은 전투의 기능을 갖춘 작업복인 동시에 본인의 신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유니폼(Uniform)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장소나 목적을 위해 일정한 형태나 장식, 기능을 갖춘 옷’이다. 라틴어로 ‘하나’를 의미하는 우누스(Unus)와 ‘형태’라는 뜻의 포르마(Forma)의 합성어다. 커리어 웨어(Career wear)로 불리기도 한다. 규모에 상관없이 특정 집단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이 유니폼은 군복, 죄수복처럼 국가에 의해 강제되기도 하고, 운동복과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임의로 정해지기도 한다. 이 옷들은 저마다 장소와 목적에 따른 기능을 갖고 있다.

진에어의 청바지 유니폼. / 진에어

항공사 승무원들의 유니폼은 그 경계의 어디쯤에 속하는 것일까. 개인의 자율성을 속박하는 죄수복은 분명 아닐 것이다. 최소한 하늘 위에서만큼은 그들이 슈퍼맨이고 원더우먼이다. 흥미롭게도 원더우먼의 캐릭터를 창조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윌리엄 몰튼 마스턴 박사는 거짓말 탐지기를 고안한 인물이기도 하다. 물컵 사건으로 한순간에 전 국민의 빌런(마블 영화 속 악당을 일컫는 말)으로 등극한 그분이 지상과는 기압부터 다른 하늘 위에서 청바지 차림으로 48시간쯤 근무해본다면 소감이 어떨까. 거짓말 탐지기까지는 굳이 필요없었으면 좋겠다. 참, 청바지는 죄가 없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