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전설 깃든 고마나루 솔숲. / 이우석

‘공주를 찾아 떠나다.’ 무슨 판타지 소설 속 영웅 이야기가 아니다.

완연한 봄을 맞은 충남 공주(公州) 이야기다. 공주는 원래 ‘곰주’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옛 지명은 고마나루, 곰나루, 웅진(熊津) 등 모두 공주(princess)가 아닌 ‘곰’과 연관됐다. 하지만 웅녀(熊女) 역시 환웅의 비로, 단군을 낳았으니 아예 엉뚱한 이야기는 아니다.

‘곰의 전설이 서린 나루’가 공주의 근원이다(다만 이중환은 ‘택리지’에 이 지역 북쪽 작은 산의 모양이 ‘공(公)’ 자와 같아 이름이 유래됐다고 ‘퍽 실망스럽게’ 기록한 바 있다).

곰이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친근한 동물인가. 건국신화에도 등장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일본에도 곰과 연관된 지명(구마모토·熊本)이 있다.

얼마든지 다른 테마로 떠날 수 있는 것이 여행의 장점이다. 이번엔 ‘곰’과 ‘봄’을 주제로 잡았다. 꽤 만족스러웠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봄에는 마곡사의 신록, 가을에는 갑사의 단풍이 좋다)’란 말이 있다. 그만큼 공주의 신록은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서울에서 공주를 가려면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는데, 밤으로 유명한 정안을 지나면 벌써 포근한 기운이 대지를 감싼다. 모두 헤아려봤자 국내에 몇 개 되지 않는 옛 도읍지의 평온한 느낌이 든다.

과연 도읍지였던 곳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공주는 좋은 산과 강, 들판이 함께 있다. 영산 계룡이 버티고 선 산 아래 비단 금강이 유유히 훑고 지난다. 웅진백제, 고마나루를 중심으로 시작한 공주가 현대에도 중부권의 중심지 역할을 한 까닭도 바로 이런 천혜의 지형 덕이다.

고마나루 솔숲을 찾았다. 금강변과 연미산, 무령왕릉 서쪽의 낮은 구릉지대를 다 포함해 모두 고마나루라 부르지만 지금 ‘4대강 정비’로 건설된 공주보 아래쪽 고마나루 솔숲은 그 신화만큼 신비로운 풍경을 자랑한다. 솔숲에는 곰 조각들이 많이 서 있고 곰 사당도 있다.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그 역사와 전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 분위기가 아주 몽환적으로 변한다.

‘고마’. 곰을 뜻하는 우리 고어다. 감(아래아)·검·금·개마·고마 등도 모두 곰에서 유래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곰을 구마(くま)라 읽는다. 발음이 매우 비슷하다. 웅진이 문주왕(475년)부터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16년(538년)까지 5대 64년간 백제의 수도였음을 떠올리면 이상할 것도 없다. 일본은 스스로 백제가 그들의 문화·역사적 원류라 여기고 있다.

이곳에 ‘고마센터’가 있다. 공연 및 전시를 하는 공간이다. 고도 공주의 문화적 심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주에는 도심에 버티고 지켜선 공산성과 산성시장 등 도심권 관광지를 비롯해 곳곳에 많은 경승(景勝)이 있다. 공주라는 캔버스에는 지금 아름다운 봄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가파르지만 오르고 나면 금강이 그리는 구불구불한 사행문(蛇行紋)이 펼쳐지는 창벽(청벽), 닭 볏 같은 계룡산 산그림자가 그대로 비친다는 송곡저수지 등을 둘러보면 좋다.

특히 신원사 가는 길 옆 노르스름하게 물들어 가는 보리밭은 만춘의 전원 속 서정성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공주 태화산 마곡사는 봄의 절정을 맞았다. 춘마곡의 여린 신록은 따가운 만춘의 볕을 세상 어떤 조명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거친 빛의 반은 연둣빛으로 투과하고 반은 반짝이며 튕겨낸다. 백범이 잠시 출가했던 마곡사는 조계종 6교구(충남)의 본사다. 설법을 들으러 온 신도들이 마치 마(麻)밭처럼 골짜기(谷)를 가득 메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곡의 신록을 제대로 보려면 조금 걸어야 한다. 뒤편 솔숲 사이로 난 작은 길에는 눈부시도록 푸른 잎사귀들이 돋아났다. 이리저리 굽은 노송이 중첩된 산길을 걷다 보면 콧속으로 청량한 봄의 향기가 스미고, 풀 돋아난 땅을 디딘 발바닥은 폭신폭신 절로 춤을 춘다. 봄은 짧지만 이처럼 많은 감각을 뒤흔들고 사라진다.

남쪽 계룡산은 좀 더 무르익은 봄이 기다린다. 신원사와 갑사, 동학사까지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이른 봄 벚(櫻)과 매(梅)를 뽐내던 늙은 절집은 이젠 청춘의 푸른 잎으로 덮여 가고 있다.

갑사는 대숙전 아래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좋고, 동학사는 벌써 졸졸 흐르는 계곡의 서늘한 기운을 자랑하고 있다.

유머러스한 석장리 선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그치지 않는다. 선사시대 생활 상상도에서는 숨은 그림처럼 태권V를 찾을 수 있고, 나가는 길에는 ‘또 오세유’라 쓰여 있다.

고마나루 돌쌈밥의 웰빙식단. / 이우석


깨알 같은 재미 가득 ‘공주 골목길 투어’

공주 시내 투어도 깨알 같은 재미가 가득하다. 특히 중동 골목길 투어는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가다가 길이 막히고 거기서 모퉁이를 몇 번 돌면 다시 제자리로 오는 그런 골목이 아직 남아 있다. 공주시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골목길을 되살리는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공장 기숙사는 갤러리로, 차 한 대 들어갈 수 없는 길은 쪽마당으로 변신해 곳곳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택이 아닌 50~60년된 중고(?) 한옥이 늘어선 골목을 돌아다니다 낡은 한옥에서 맛보는 차 한잔은 여행의 자잘한 재미를 더한다.

밤이 찾아오면 잔잔한 물결 위로 불을 밝힌 공산성이 빛난다. 클래식한 외양의 금강교 위로 펼쳐지는 ‘백제의 달밤’은 숨가쁘게 지나치는 계절의 변화 속, 2018년 봄을 기억에 선명히 새겨놓는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5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먹거리
공산성 바로 앞에 위치한 고마나루돌쌈밥은 맛 좋은 집이 많은 공주에서도 워낙 맛집으로 입소문을 탄 곳. 전국적인 유명세의 맛집으로 과연 명불허전이라 맛 좋고 푸짐한 밥상을 거나하게 차려낸다. 주물럭꽃쌈밥은 매콤하게 양념한 돼지주물럭 불고기를 돌판에 구워 다양한 산채와 채소에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생선과 장아찌, 젓갈 등 한상 가득 차려나온 반찬 어느 하나 젓가락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건강에 좋은 쌈채소를 곁들이니 그야말로 웰빙식단이다. 돌솥으로 갓 지어낸 밥도 제대로 기본을 지켰다는 느낌. 소불고기꽃쌈밥과 편육꽃쌈밥, 오리주물럭쌈정식, 꽃비빔밥, 돌솥밥 등 가격과 재료별로 다양한 메뉴가 있다. (041)857-9999

반포면 마암리 ‘갑사 가는 길’은 장어구이를 잘하는 집이다. 고소한 참게매운탕과 다양한 반찬으로도 이름났다. 투실투실한 장어를 초벌해 철판에 낸다. 분위기는 중년층이 좋아하는 카페처럼 푸근하다. 가게 상호처럼 갑사 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했다. (041)853-1300

둘러 볼 만한 곳
국립공주박물관과 무령왕릉은 자녀들에게 살아 있는 학교 구실을 한다. 석장리박물관(041)899-0088. 종합안내 공주관광안내소(041)856-3151

숙소
공주한옥마을은 시원한 한옥 툇마루에 앉아 두런두런 여행의 즐거움을 나누기 좋은 곳. 2~6인실, 단체실 등 다양한 객실이 있다. 공주한옥마을 홈페이지에서 공주사이버시민으로 가입하면 약 30% 할인받을 수 있다. (041)840-8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