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하숙(Hasook)
영업 시간  매일 18:30~02:00
대표 메뉴  한옥집에서 즐기는 맥주와 칵테일

경유1│서강노가리
영업 시간  매일 18:00~02:00
대표 메뉴  연탄불에 구워먹는 2000원짜리 노가리

경유2│OB베어 공덕점
영업 시간  매일 17:00~01:00
대표 메뉴  통마늘은행똥집볶음과 함께하는 시원한 생맥주

도착│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Mysterlee brewing company)
영업 시간  매일 11:30~24:00
대표 메뉴  자스민·고수백차·육보차 등 여러 차를 가미한 벨기에식 수제맥주

오월 하순인데도 낮 최고기온이 29도다. 예년 기온을 훌쩍 웃도는 때아닌 무더위가 당혹스럽다. 겨우 몇 걸음에 양쪽 겨드랑이가 축축해지고 목덜미는 끈적거린다. 예년 수치를 훌쩍 넘어 곤란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체중이다. 눈 밑 주름살에는 안티에이징 크림이라도 바르지 뱃살 주름에는 약도 없다. 부랴부랴 저녁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무려 한 달째다. 헉헉.

저녁밥도 걸렀다. 쫄쫄이 레깅스를 배꼽까지 끌어올리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맨 뒤 비장하게 집을 나선다. 두 팔은 90도로 굽히고, 앞뒤로 힘차게 휘저으며 전진한다. 턱은 당기고 시선은 15m 전방에 둬야 한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한다. 후-하-후-하! 산울림 소극장을 지나 홍대 책거리에 들어선다.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연남동 숲길 공원에서부터 밀려 들어온 ‘치맥인구’로 불야성을 이룬다. 녹음의 향이 아닌 치킨 냄새가 콧속을 진하게 습격한다. 잠시 나간 넋을 붙잡고 길을 건넌다.

서강대역에 당도한다. 경의선 숲길의 신수~대흥~염리의 마디가 시작된다. 서울에서 가장 ‘긴’ 공원이 된 이 숲길은 당초에 경의선이 지나가는 철로였다. 사실상 버려진 철길이다. 화물열차 정도만 간간이 다닐 뿐, 비어있는 철길은 이미 1990년대에 그 쓰임을 다했다. 그야말로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즐비했던 동네가 경의선 숲길 개장과 함께 상전벽해를 이루고 있다. 가장 먼저 선보인 연남동 숲길 공원, 이른바 ‘연트럴파크’를 시작으로 가좌역~효창공원역까지 이르는 숲길 공원이 펼쳐진다.

서강대역을 지나면 곧바로 푸른 나무와 풀이 무성한 자갈 깔린 철로 공원이 나타난다. 열차 대신 사람들이 오간다. 오래된 단층 건물들 사이로 둥글게 구불거리는 한옥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추녀 끝엔 네온사인이 붉게 반짝이고, 리드미컬하고 진보적인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HASOOK’. 딱 한 잔만 하고 갈까? 살을 찌우는 건 안주지, 술이 아니니까.

집을 나선 지 20분도 되지 않아 제 발로 주점으로 걸어 들어간다. 실제 서강대 앞에서 30여 년간 하숙을 쳤던 한옥집을 바(Bar)로 개조했다. 서강대와 공원을 바라보는 두 개의 입구를 통해 학생부터 이곳 주민들까지 모두 끌어모은다. 20년간 비보잉을 해온 구본엽씨와 바텐더 박서희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생맥주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주류 리스트와 여러 장르의 음악이 조화롭게 뒤섞이는 공간에 두 사장들의 이력이 드러난다. 역할에 맞게 각각 칵테일을 만들거나 음악을 선곡한다. 연식이 오래된 서까래와 기둥 등 고재들에 두 사람의 축적된 경험과 취향이 스며들어 있다.

1년 전 개업 시점까지만 해도 이 길은 노년층만 기웃거리고 학생들은 싸구려 대폿집으로 몰려갔다. 그러다 최근 홍대부터 연남동 구간의 숲길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곳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부쩍 늘었다. 수요에 맞게 카페와 주점이 하나둘씩 늘어 이제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빨간 벽돌에 붉은 빛을 밝히는 네온 레터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좋을때다’. 그래, 맥주 마시기 좋을 때다. 한 잔 더 주세요!
 

벨기에 맥주에 茶 우린 ‘미스터리’ 맥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무리가 될 수 있다. 다이어트도 중요하지만 요요가 오지 않도록 이렇게 한두 잔의 맥주로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이 좋다. 안주를 먹지 않는 것은 대단한 절제력이다. 훌륭해! 가게를 나와 걷기를 재개한다. 밀려드는 젊고 여리여리한 여자들이 주는 묘한 자괴감에 빠르게 발을 굴러본다. 핫둘 핫둘! 그래, 앞만 보고 가자. ‘서강노가리’. 간판을 읽다 멜라민 접시 위 명태 새끼들이 떠오른다. 제자리뛰기를 하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의 음식들. 사진 김하늘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의 음식들. 사진 김하늘

철길을 이정표 삼아 공덕역에 다다랐다. 새로 지은 고층빌딩과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도심 속 간이숲, 지나온 구간과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만 남았다. 하프코스라도 완주한 것 같은 성취감이 솟구친다. 등허리를 곧추세우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팔을 휘저으며 걷는다. 틈틈이 효과적으로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함이다. ‘미스터리 브루잉 컴퍼니’. 거대한 유혹의 불빛을 밝힌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가게 입구를 지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곳은 맥주 양조장과 펍을 겸한 브루펍(Brewpup)이다. 직접 제조한 여러 가지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며 취향의 지도를 그리는 재미가 있다. 메뉴판을 받아 들고 열 가지가 넘는 맥주를 고른다. 이 과정은 마치 자아 정체성을 찾는 것과 같다. 심사숙고함이 따른다. 하지만 갈증과 허기 앞에선 취향이건 자아건 없다. 여섯 가지 맥주를 소량씩 맛볼 수 있는 샘플러 메뉴를 시킨다. 마침 마포지역의 두레차, 약초원 등과 협업해 만든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맥주 스타일인 ‘세종’에 다양한 차를 우려 만든, 그야말로 ‘미스터리’한 맥주다.

바 ‘하숙’의 전경. 사진 김하늘
바 ‘하숙’의 전경. 사진 김하늘

이곳은 각양각색 맥주와 짝지을 만한 음식 또한 풍부하다. 통삼겹 스테이크를 권하는 종업원의 제안을 대차게 거절했다. 다이어트 중인 내게 너무나 가혹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대신 세 가지 버섯과 두 알의 수란이 올라가는 영양 만점인 풍기 피자를 골랐다. 차를 우린 맥주와 함께 먹으면 피부 미용까지 걱정 없다. 평소 같으면 저녁도 먹고 야식도 먹었을 것을, 둘 중 하나만 한 것에 몹시 뿌듯함을 느낀다. 갓 구운 피자에 수란을 톡 터뜨려 펼쳐 바르고 피자 한 입, 맥주 한 입을 심오하게 맛본다. 다크초콜릿과 함께 숙성했다는 초콜릿 포터 두 가지와 고수백차, 육보차, 의홍 홍차, 오미자차 등과 함께 우린 세종 네 가지를 모두 맛봐도 그 매력이 탄탄해 뒤섞이지 않는다. 쌉싸름했다가 향긋하게 스며들고 시원함 끝에 단맛이 맴돈다. 밤 열 시 반 이후엔 배부른 ‘맥덕’들을 위한 나쵸와 치즈, 올리브와 크래커 등 간단한 스낵도 판매한다. 술을 모두 비우니 어깨 끝이 노곤하다. 돌아갈 길이 천리 만리다. 한 달이나 걷고 달렸는데 체중은 줄지 않는다. 미스터리다. 그래도 나는 달린다. 후-하-후-하!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