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보엠’ 공연 모습.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라보엠’ 공연 모습.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이하 메트)은 세계 오페라 공연장의 무게중심이다. 일류 명성의 성악가 중에도 메트에 정기적으로 오르는 주역과 그렇지 않은 가수의 대우는 확연히 구별된다. 메트의 트렌드가 곧 세계 주류 오페라의 흐름이다.

정상의 예술가와 매니지먼트는 메트의 캐스팅을 따내기 위해 경쟁하지만, 메트 경영진은 늘 수익 증대와 비용 절감에 대해 고민한다. 2006년 조셉 볼프에 이어 소니클래시컬 대표 출신의 피터 겔브가 메트 행정감독에 취임했을 때 벌어진 상황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메트 이사진은 신임 단장에게 노년층 위주의 관객층 다변화를 요구했다. 겔브가 내놓은 대안은 참신했다. 뉴욕에 오르는 오페라를 집 근처 극장에서 고화질 실시간 중계나 지연 상영(지역별 시차에 따라 실황을 몇시간 뒤 상영하는 것)으로 즐기는 ‘메트 라이브 인 HD(이하 메트 라이브)’가 비장의 카드였다. 2006년 12월 30일 미국 전역의 극장에서 2006~2007 시즌 메트 개막작 ‘마술 피리’를 개시한 이래, 레퍼토리를 바꿔가며 열 두 시즌째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세계 60여개국으로 퍼진 메트 라이브는 국내에선 메가박스가 상영하고 있다.

겔브는 2000년대 중반, 인공위성을 통한 데이터 전송과 브로드밴드 기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메트 라이브라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유통시켰다. 경영인 출신다운 통찰력과 추진력의 산물이었다.

소니 레이블 소속으로 첼리스트 요요 마와 팝가수 바비 맥퍼린을 함께 무대에 올리거나, 동서양의 음악을 넘나드는 ‘실크로드 앙상블’ 프로젝트처럼 클래식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업적인 실험을 주도해 호평받은 것도 겔브였다.

메트 라이브가 시작되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 효과를 집중 조명했다. 2008년부터는 메트에 직접 가는 관객보다 영화관에서 메트 공연을 본 인구가 더 많아졌다. 2013~2014 회계연도 기준, 세계에서 벌어들인 메트 라이브의 박스오피스 수입은 5000만달러(약 542억7000만원)를 넘어섰다.

메트 라이브가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2010년대 초반 오페라는 물론, 발레와 연극을 스크린에 상영하는 ‘라이브 시네마 이벤트(Live Cinema Event)’도 활황을 이뤘다. 유럽 메이저 오페라극장들이 HD 상영을 앞다퉈 도입했고 영국 내셔널 시어터는 ‘엔티 라이브(NT Live)’를 통해 전 세계 2000여개 상영관에 헬렌 미렌, 베네딕트 컴버배치,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최신작을 공급했다. 국내에선 국립극장을 통해 엔티 라이브를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의 우수공연 영상화 사업인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에 영감을 준 것도 메트 라이브다.

그러나 21세기 클래식계 최고의 혁신 사례로 꼽히던 메트 라이브도 2010년대 중반 들어 위기에 봉착했다. 메트 라이브의 상업적 성공에도 메트는 2014년을 정점으로 꾸준한 하향세를 걷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경영학자들은 메트 침체의 원인으로 메트 라이브의 부흥을 꼽는다. 염가로 영화관에서 오페라를 즐긴 계층이 메트를 방문해 고가 티켓을 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윌리엄 보멀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영화관에서 오페라를 즐기는 관객이 늘어도, 실제 오페라 제작의 생산성에는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페라 영상 송출 사업은 연간 1800만달러를 벌어들여 메트 전체 수입의 12%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지만, 오프라인 오페라 극장의 박스오피스 수입이 줄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메트(3800개 좌석, 200개 입석, 시즌 평균 220여회 오페라 공연)의 유료 관객 점유율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평균 90% 선을 유지했으나, 2015~2016시즌에는 75%, 2016~2017시즌에는 67%로 급락했다. 2017~2018시즌의 흥행 전망 역시 오랫동안 메트 음악감독을 맡은 지휘자 제임스 러바인의 성추문 스캔들로 비관적이다. 최근 들어 겔브가 비용 절감을 위해 행정 인력을 대폭 줄이면서 조직은 황폐해졌다.

여기에 세계 최고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앞으로 메트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메트 라이브 성공의 부작용은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우프만은 “메트 라이브로 오페라를 본 관객이 메트를 찾지 않는 것뿐 아니라, 이전에는 메트의 중저가 티켓을 구입했던 관객들마저 영화관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며 겔브의 운영 방식을 비난했다. 무디스는 올해 메트의 채권 신용 등급을 Baa1에서 Baa2로 한 등급 내렸다. 메트가 흔들리자 유럽의 다른 오페라하우스들도 영상 송출이 조직의 지속 가능에 합당한지 고민 중이다. 전체적으로 오페라 영상 송출 사업은 2010년대 후반 들어 한풀 꺾였다.

피터 겔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피터 겔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의 접목 시도

2020년대를 바라보면서 겔브는 캐나다 지휘자 야닉 네제 세갱을 메트의 신임 예술감독에 영입했지만 네제 세갱을 강력히 지원하던 후원자가 별세하면서 펀드 모금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인사·교육 부서의 인력 감축이나 후원자용 디너 테이블의 가격 인상 같은 단기 처방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공연예술과 첨단기술의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시험 도입한 기술에 관객이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구글글라스나 가상현실 관람기기(VR)는 오페라 관람에 응용하는 데 실패했다. 기기를 이용한 이후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관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영미권 예술경영학계는 원본 예술작품의 무분별한 복제와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예술계에서는 암표를 없애고 음원 무단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블록체인 기술 접목을 고민 중이다.

오랜 예술의 역사가 증명하듯 위기는 또 다른 양식의 예술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회다. 창조 산업의 중심지 런던을 비롯한 세계 주요 도시의 여러 실험적인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청각 이외에 후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오페라 제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어쩌면 메트에 앞서 런던 코벤트가든에서 오페라의 새로운 트렌드가 시작될지 모른다.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