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라 작가가 개발한 창작요리.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안아라 작가가 개발한 창작요리.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신선한 줄무늬 농어를 준비한다. 소금과 후춧가루, 레몬, 타임 등으로 간을 한 뒤, 버터를 발라 석쇠에 굽는다.’ 뉴욕 출신의 팝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파란 생선’을 요리하는 법이다. 석쇠 자국 같은 줄무늬를 배경으로 한 그림 속에서 소금물의 윤기를 머금은 생선은 싱싱한 파란빛을 띠고 있다. 한 점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소유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먹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예술을 맛보고 싶다면 여기 예술가들의 레시피에 주목해보자.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입맛을 잃은 당신을 위해 준비한 명작 시식 코너! 두둥~.


작품 속에 드러난 예술가의 음식 사랑

모든 미식가가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예술가 중엔 유난히 미식가가 많다. 요리에 대한 예술가들의 애정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딸기 케이크, 반 고흐의 독특한 양파 조림, 프리다 칼로의 빨간 통돔 요리, 미국 가정식 요리를 정물화로 남긴 톰 웨슬만의 웨지 감자와 채소 구이를 곁들인 스테이크…. 예술가들의 음식 사랑은 작품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세기 천재 화가 피카소는 소문난 식도락가였다. ‘미식가’라고 명명한 작품도 있다. 단발머리 소녀가 식탁에 선 채로 수프를 먹는 그림인데, 얼마나 맛있는지 숟가락으로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다. 피카소는 이 허브 수프에 서양 무의 붉은 뿌리를 소금과 함께 곁들였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산골마을에서 먹고 느꼈던 야생의 식재료에서 그 독특한 색감과 조형 감각을 익혔다. ‘피카소의 맛있는 식탁’이라는 책을 보면 그가 해산물 중에서도 대구 요리를 가장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대구 요리는 피카소의 고향 카탈루냐 사람들이 특히 사랑하는 음식이다. ‘뱀장어 마틀로트’는 피카소보다 쉰 살 가까이 어렸던 그의 마지막 아내 재클린 로크가 즐겨 만들던 요리로, 피카소는 이 작품으로 그녀의 음식솜씨를 기렸다. 마틀로트는 적포도주와 양파를 사용한 프랑스식 생선 스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피카소’라는 이름의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 있으니, 피카소를 사랑하는 예술 애호가라면 한 번 찾아가보길.

달리는 음식과 사람을 즐겨 섞어 그렸다. 자기 어깨 위에 놓인 양갈비 고기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여자 친구의 모습을 담은 ‘양갈비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갈라’가 대표적이다. 나중에는 구운 베이컨 조각과 자신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탐욕스러운 식욕과 죽음의 상관관계는 그의 작품을 이루는 주요 모티브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다른 생명의 죽음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또 어떤가. 궁중 요리사 경력을 지닌 그는 친구 보티첼리와 함께 ‘세 마리 개구리 깃발 식당’이라는 요상한 이름의 술집 겸 식당을 개업한 적이 있다. 비록 접시 위에 달랑 네 조각의 당근과 앤초비 한 마리만을 올리는 파격을 시도함으로서 15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외면당했지만, 사실 그는 시대를 앞서간 웰빙 요리사였다. 다빈치의 요리 비법과 요리 관련 발명품에 관한 메모가 적힌 소책자 ‘엘 코덱스 로마노프(El Codex Romanoff)’에 따르면 스파게티를 개발한 것도 바로 그였다. 이를 ‘먹을 수 있는 끈’이라 명명한 다빈치는 내친김에 국수가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삼지창 모양의 포크까지 발명했다. ‘최후의 만찬’은 그의 요리 열정을 집대성한 인류 음식사의 걸작이다. 풋참외꽃으로 치장한 검둥오리 넓적다리, 장어 요리, 잘게 썬 당근을 곁들인 삶은 달걀과 빵 등 그는 무려 2년여의 공을 들여 이 음식들을 한상 가득 차려냈다.

토탈미술관에서 운영한 ‘모바일 키친 오픈 레서피’. 사진 토탈미술관
토탈미술관에서 운영한 ‘모바일 키친 오픈 레서피’. 사진 토탈미술관

현대의 국내외 미술가들 중에도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 꽤 된다. 토탈미술관은 푸드 콘텐츠 기획 회사 심플프로젝트와 함께 ‘모바일 키친; 오픈 레서피’ 프로젝트를 운영한 바 있다. 미술가와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로부터 각자의 사연이 담긴 레시피와 그림을 전달받아 실제 요리로 완성한 이 식사의 하이라이트는 재료의 원가가 적힌 특별한 영수증이다. 여기엔 레시피에 대한 가치, 노동의 가치 등의 항목이 공란으로 남아 손님이 직접 전체 가격을 책정하며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게끔 유도한다. 다음은 그 레시피의 일부다. 한번 조리 과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각각의 값어치를 생각해보자.

스페인 출신의 작가 안토니 문타다스의 토르티야다. 토르티야는 피카소도 즐겨먹었다는 스페인식 오믈렛이다. 재료는 간단하다. 감자 4개, 양파 6개, 달걀 11개, 올리브 오일만 있다면 준비 끝이다. ① 감자와 양파를 썰어 팬 위에 둔다. ② 팬에 올리브 오일을 뿌린 후 감자와 양파를 익힌다. ③ 달걀을 풀어준다. ④ 2번에서 익힌 감자와 양파를 3번의 달걀에 섞어 팬에 붓는다. ⑤ 중불에서 익힌 후 팬을 뒤집어 토르티야를 접시에 담는다. ‘집밥 백선생’도 울고 갈 만큼 간단하지 않은가? 1000원짜리 김밥과 원가 자체는 별반 차이도 없다. 하지만 이 레시피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 문타다스라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이 음식의 가치엔 문타다스가 직접 그린 재료 스케치도 포함된다.

국내 작가의 레시피도 흥미롭다. 정승 작가는 파리 유학 시절의 추억이 담긴 매콤한 아리사(Harissa) 소스를 만들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만능 소스를 알게 됐다는 그는 느끼한 음식에 지쳐 식사 때마다 이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고 한다. 그때 생긴 별명이 ‘승소스’다. 작가는 이 소스가 육류와 생선, 구운 채소 요리는 물론 크림 파스타에도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미술관에서 공개되는 창작 요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에서는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국경 없는 식탁’이라는 창작 요리 작품이 공개됐다. 인도네시아 작가 엘리아 누비스타와 한국 작가 안아라는 각자 자신의 삶이 담긴 음식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창작 요리를 개발했다. 누비스타는 안아라의 한국식 카레에서 영감을 받아 비정통 카레를 만들었고, 안아라는 그가 소개한 소토 반자르(Soto Banjar)라는 인도네시아 수프를 ‘국적불명의 닭수프’로 탈바꿈시켰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작가들의 영상을 통해 요리법을 감상하며 추억이 깃든 자기만의 요리를 ‘국경 없는 식탁’의 레시피 카드와 교환할 수 있다. 관람객의 이야기는 두 작가에게 전달되어 새로운 창작 요리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역사가인 마시모 몬타나리는 ‘음식은 문화다’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중세의 언어로 말하면 한 가족에 속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평소 눈여겨보던 예술가와 한 가족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정기적으로 ‘예술가의 런치 박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코리 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내에 ‘인 시투(In Situ)’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해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를 하나씩 구현하고 있다. 즐겨먹던 요리가 작품이 되고, 그 요리는 또 다른 작품이 돼 시대를 넘어 전달된다. 예술적인 요리가 있는 것처럼 맛있는 예술도 있다. 뭔가 색다른 것이 당긴다면 군침 도는 예술품으로 가득한 미술관으로 달려가 보자. 예술가들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해봐도 좋다. 살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는 제로니까.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