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철도를 따라 강변을 달리는 강촌레일바이크. 사진 이우석
옛 철도를 따라 강변을 달리는 강촌레일바이크. 사진 이우석

서울 시민들은 복도 많다. 신도시를 벗어나 조금만 차를 몰아도 강원도 못잖은 풍광이 펼쳐지니 말이다. 최근엔 길이 더 좋아졌다.


#길

가평을 통해 춘천, 화천까지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낭만적이지만 특히 여름엔 시원해서 더욱 사랑스럽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사물 주제에 이토록 마음을 뺏는 낭만적인 것이 또 있을까. 북한강을 따라가는 경춘가도는 언제 달려도 즐겁다.

경춘선 철로, 경춘가도, 때론 서울~양양 고속도로. 같은 길을 달리고 있지만 이유와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학교 MT, 교회 수련회, 회사 야유회, 동아리 단합대회, 연인 데이트 등 각기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운전을 하면 강물을 스치듯 구불구불 한 ‘와인딩 로드’를 달리는 재미가 있고 기차를 타게 되면 창밖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1989년부터 추억과 낭만의 상징이 되어버린 노래 ‘춘천 가는 기차’. 스물한 살의 청년 김현철은 이 노래에서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라며 지난 오월의 사랑 추억을 되새겼다.

비록 예전의 역 풍경도, 디젤기관차의 덜컹거림도 없지만 그래도 좋다. 서울 사람 대부분에게 숨어있던 빛바랜 추억을 당장 소환해낸다.

터널을 지나는 객차에선 내 추억이 슬그머니 살아난다. 마주 보는 나무의자를 당겨앉아 딩가딩가 기타를 치던 석준이, 정말 백과사전만큼 두꺼운 ‘최신 포크송 백과’를 죄다 불러 젖히던 상원이. 손뼉이 닿을 듯 말 듯 손뼉을 치며 아는 소절만 따라부르던 윤경이와 호정이가 앉아 있다.

역에 닿았다. 절벽에 덩그러니 붙어있던 그 강촌역은 아니다. 소주 박스를 지고 계단을 내려오던 선발대도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아직 이르다. 강변을 따라 달리던 옛 철로를 이용한 강촌레일바이크로 그 기분을 고스란히 되살려볼 수 있다.

전국 어디나 레일바이크는 많지만 여긴 좀 더 특별하다. ‘모두의 낭만’이 서린 철길이기 때문이다. 그 철로 위를 달리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

2인승과 4인승이 있는데 철로는 거의 평지(사실은 살짝 내리막길)다. 둘이 열심히 젓는다면 힘들지 않다. 북한강을 아래에 두고 달리는 코스다. 풍광이 멋지다. 레일바이크를 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통과하는 터널마다 테마를 두고 비눗방울, 물보라 등으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클럽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도 있다. 레일바이크가 달리는 철로는 ‘이동’이 아니라 ‘레저’였다.

차를 타고 간다면, 꼭 일찍 도착해서 처리해야 할 바쁜 일이 없다면, 고속도로보다는 물을 따라 굽이치는 호반 드라이브를 권한다. 세상에서 가장 심심한 풍경을 꿰며 공중으로 달리는 일직선 콘크리트 고속도로보다 좋다. 차창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에 섞인 물 내음이 들어온다.


#강

금강산에서 내려와 서울을 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강. 양평 두물머리까지를 따로 일러 북한강이라 한다. 여름 봉래산이 내린 차가운 물은 화천, 춘천, 가평을 거쳐 양평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비로소 만난다.

북한강은 곳곳에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는 남한강과는 달리 서정적으로 흐른다. 왠지 더 차갑고 더 바삐 흐를 듯한 물. 산을 휘감고 호수 아래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북한강이다.

1985년 ‘북한강에서’를 발표한 정태춘은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한다’고 노래했다.

강은 그냥 바라볼 때도 좋지만 여름엔 직접 그 물을 만져 보는 것도 즐겁다. 북한강에선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의암호에서 카누를 타고 산수를 둘러보기 좋다.

의암호는 하중도·중도·상중도 등 3개의 섬을 품고 있는데 카누를 타고 한바퀴 둘러보면 좋다. 총 3개의 코스가 있다. 무인도에 상륙할 수도 있는데 평일에 예약제로 운영한다.

청평호에선 수상스키에 도전해보면 된다. 수상스키가 어렵다면 플라잉피시나 보트를 타는 것도 괜찮다. 뭍에서 물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청평호반의 동화나라 ‘쁘띠프랑스’. 사진 이우석
청평호반의 동화나라 ‘쁘띠프랑스’. 사진 이우석

호수 위를 달리는 배에선 늠름한 언덕들이 보인다. 호숫가 언덕에는 동화 나라가 있다.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아기자기한 건물들. 쁘띠프랑스다. 이름처럼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을 재현해놓았다. 이미 십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어린왕자 테마로 지어 올려 가평팔경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대표 관광지다. 몇몇 건물은 아예 프랑스에서 직접 가져왔다. 원형 그대로 복원해 가평 언덕에 올려다 놓았다.

아이가 오면 자신이 읽던 동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니 펄펄 뛰어다니고, 어른이 오면 마음속에 가둬 놓았던 동심이 살아나니 꽤 젊어진 기분이다.

마리오네트, 오르골 등 다양한 공연도 있고 희귀한 소장품들이 많으니 일일이 챙겨봐야 한다. 프랑스인의 전원적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장(Jean)의 집과 마리(Mari)의 집에도 다채로운 장식과 소품을 자연스러운 형태로 전시 중이다.

지금은 들꽃이 한가득 피어있는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돌아보며 호수와 산의 풍경을 함께 감상하면 좋다.


# 산

북한강에는 물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물은 산을 휘감고 흐른다. 가평엔 삼악산(654m)이 있다. 높지는 않지만 암봉의 생김새가 설악산과 닮았고 웅장하기는 오대산과 닮았다 한다.

등산로는 험한 편이 아니지만 초입에는 등선폭포가 있어 둘러보고 나오기 좋다. 입구부터 좁고 직선적인 협곡이 나오고 그 사이에 아름다운 폭포가 흐른다.

그랜드캐니언을 닮았다. 규모는 작지만 협곡의 기세가 대단하다. 하늘을 가리는 절벽 아래 크고 작은 폭포가 연이어 등장한다. 등선폭포(10m)는 그중에 가장 높은 폭포다. 폭포는 계단처럼 계속 이어지니 아래에서 봐도 근사하고 위에서 내려다봐도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계단은 폭포들을 보기에 딱 좋은 위치로 이어지니 전망대가 서너 개씩 있는 셈이다. 강촌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구곡폭포도 있다. 높이가 상당하다. 비가 온 다음에는 낙수의 위용이 당당해 물보라를 일으킨다. 더위까지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북한강변을 따라가는 여행은 이렇게 물 흐르듯 매끄럽게 둘러볼 수 있어 좋다. 물 속에 또 물이 흐르고 생명력 충만한 여름이 흘러가는 모습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5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