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올 여름 더 사랑받고 있는 평양냉면. 사진 조선일보 DB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올 여름 더 사랑받고 있는 평양냉면. 사진 조선일보 DB

냉면의 품격
이용재 지음|반비
1만2000원|167쪽

냉면의 계절이 시작됐다. 평양냉면이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격상된 시점이라 냉면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유난히 높아졌다. 이런 때 냉면 애호가들을 겨냥해 ‘맛의 원리로 안내하는 동시대 평양냉면 가이드’를 표방한 책이 나왔다. 저자는 원래 미국 유학을 다녀온 건축학도지만, 집짓기보다는 맛보고 글 짓는 일에 더 열심인 듯하다.  

이 책은 지난 6~7년 동안 평양냉면 전문점 리뷰를 쓰면서 쌓아올린 음식 비평의 결실이라고 한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평양냉면 식당 서른한 군데를 분류하고 평가했다. 겉보기엔 식당 가이드북이지만,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서는 글맛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냉면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평양냉면에 대해 말할 때 말할 수 있는 것’에 관한 책인 것. 평양냉면을 묘사하는 언어의 향연이기도 하다.

우선, 평양냉면이란 무엇인가. ‘슴슴함’을 평양냉면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왜 그럴까. “평양냉면의 국물은 맑고 차가워야 하니 진한 고기 국물을 쓸 수 없다. 또한 짠맛으로만 균형을 맞추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감칠맛을 소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짠맛과 감칠맛의 균형이 슴슴함의 핵심이다.”

평양냉면의 제 맛은 메밀 함유량이 높을수록 난다고들 한다. “메밀의 함유량이 높은 면을 높이 평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힘없이 ‘툭툭’ 끊어지는 면이 평양냉면의 핵심 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서른한 군데 식당 가운데 그만큼 부드러운 면을 내놓는 곳은 절반 정도이다.”


서울·경기 평양냉면집 무자비 평가

저자는 이 밖에 국물, 고명과 반찬, 접객과 환경을 식당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우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래옥’ 냉면에 대해선 “냉면, 즉 차가운 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늘함에서 오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똬리를 튼 면에 속속들이 서려있다”고 평했다. 다만 “육향(肉香)이나 묵직함보다 화학조미료에 방점이 찍혀 갈수록 거칠어지는 느낌이 우려된다”고 아쉬워했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세월과 경험으로 쌓은 맛”이란 평을 받았다. “서늘함과 차가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다른 평양냉면 전문점보다 약간 차다 싶은 온도도 깔끔함에 한몫 보탠다”고 평가했다. ‘장충동 평양면옥’에 대해선 “슴슴함의 한가운데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같은 뿌리에서 나온 논현동 평양면옥보다는 뒷맛이 덜 거칠고 깔끔하다”고 했다. ‘을지면옥’은 “의정부 평양면옥에 비해 전체적인 맛이 조금 더 까끌까끌 거칠고 온도도 살짝 더 차갑게 다가오고, 확실히 더 질기다”는 평을 받았다. 반면에 저자는 ‘을밀대’와 ‘필동면옥’에 대해선 “정녕 평양냉면인가”라거나 “평양냉면의 악몽”이란 악평을 퍼부었다. 

저자는 평양냉면의 미래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평양냉면은 단일 메뉴로는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한식”이므로 “공동 수저통과는 작별을 고할 때가 됐다”는 것. 저자의 쓴소리는 이어졌다. 스테인리스 식기에 비싼 음식이 된 냉면을 담아내는 시대와 작별을 고하라고 했다. 좋은 달걀을 쓰지 않을 바에는 아예 냄새 나는 달걀을 올리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했다.